brunch

17화. 오늘 같은 날

모두가 나처럼 비밀이 많을까?

by 김보영

산을 깔고 앉았던 구름이 일어섰다. 갑자기 뚜껑이 확 열린 것 같다. 하늘이 얕은 물웅덩이 속에 비치고, 자전거 바큇살이 빛을 뿌리며 굴러간다.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도 빛이 방울져 있다.


찌르륵 삐잇 삐잇 짹짹


오늘 들리는 소리는 유난히 힘차고 개구쟁이 같았다. 지겹도록 내린 눈 속에서 어떻게 참고 버텼나 모르겠다.


“오늘 같은 날에는 부침개를 부쳐야지요?”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투박하고 네모난 물건을 가져와 평상에 두었다. 그 위에 밑바닥이 둥글넓적하고 손잡이가 달린 판을 올렸다. 조금 뒤 판에 물보다는 끈적한 걸 두르더니 노르스름한 반죽을 한 주걱 부었다. 치이이익 소리가 나며 반죽이 고르게 퍼졌다. 곳곳에 드러난 불그죽죽한 것은 잘게 썬 김치다.


“동네 개랑 고양이들이 환장하겄네. 제일 먼저 달려온 것한테만 한 점 주세.”


아빠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송이와 코코였다. 한 점은커녕 접시째 씹어 먹을 녀석들이다. 그전에 꼭 얼룩이가 왔으면 좋겠다.


반죽이 수컷 개구리의 울음주머니처럼 볼록볼록 부풀더니 노릇하게 익었다. 엄마는 반죽을 날래게 뒤집어 골고루 눌러주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접시에 담았다. 노련한 손놀림을 보고 있자니, 엄마가 딴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매우 조심하며 걷는 데도 자주 발목이 꺾이는 그런 사람 같지 않았다. 내가 아는 그 엄마가 맞는지 유심히 살피는 사이에도 엄마는 벌써 두 번째 부침개를 먼저 것에 착 포갰다.


“부침개는 두 번째 것이 제일 맛나지요. 따끈할 때 얼른 잡숴 봐.”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보영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아름다운 우리말로 씁니다.

17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4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