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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oy May 21. 2022

여섯. 빨래가 바람에 마르는 것처럼.

드디어, 브런치 작가 입성

3일 차 아직 이 집 안엔 청소해야 할 것이 많다. 청소를 잘하지도, 즐겨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청소에서 오는 기쁨은 안다. 내덕에 무엇인가 바뀌었다는 것. 불편했던 것이 편해지는 것. 더러웠던 것을 씻겨 내려가듯 그렇게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가끔은 버거웠지만, 참아내고 고민하고 정리하고 버려댔다. 마치 내 마음에서 하지 못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하고 있다. 


청소야 그저 버리고 닦고 치우면 그만이지만, 사람 마음은 그게 안되니까 그래서 너무 버거웠다. 생각이 많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생각을 담기엔 내 마음이 너무 비좁다는 생각 했다. 그 비좁음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생각을 억누르지 못하고 한 번씩 터져냈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외롭고 괴로웠다. 그렇게 마구 날 흔들어 대고 이 지경까지 왔나 보다. 뮤지컬 <빨래>에서 나오는 한 씬처럼 빨래가 바람에 마르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중이다.


우리 시골집에는 거실 창이 크게 나있다. 먼지가 뿌옇게 쌓이고 창문이 뻑뻑하여 잘 안 열리지만 힘을 주고 한 번에 열어보면 탁 트여있는 전경이 펼쳐진다. 그 사이에 평소엔 잘 듣지 않던 재즈풍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 쌓인 책장을 닦고, 커피 한잔을 마시다 보면 이곳이 마치 카페가 된 듯 그렇게 괜스레 분위기 잡고 싶어 지는 장소로 변한다. 그렇게 책을 펴고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소리 내어 읽기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넘기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여 읽기도 하며 내 나름대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려 보니 브런치 작가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내 목표가 하나 이루어졌다. 나에게 글이라는 건 누군가를 바꾸거나,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책은 경청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공감하고 놀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그저 그런 얘기지만 그 공간의 공기, 시간, 냄새가 새롭게 들리듯이 글이 주는 여운이 크진 않아도 잔잔히 오래 남아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감받고 함께 고개 끄덕일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한참을 밖을 바라본다. 바람에 날리는 빨래, 나뭇가지, 지나가는 할머니, 농사일을 위해 짐을 챙기며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나의 여유와 반대로 이런 곳에서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바쁜 다른 사람들로 인해 내 멈춤을 멈추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급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고 후회할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그 괴로움이 내가 살아갈 앞으로의 날을 무너트리지 않을까 하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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