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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oy May 27. 2022

열둘. 그리운 그 마음 그대로.

지금껏 내가 그리워했던 것들.

요새는 사람에 치이는 일은 없지만, 일에 치여 살고 있다. 내가 도와드리러 간 일은 나 같은 의자에 앉아만 있는 샌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기술이 필요했고 힘이 필요하다. 오늘은 퇴사가 나에게 미쳤던 영향에 대해 쓰려고 한다. 나는 퇴사하기 전 정말 얼이 빠진 사람처럼 다녔다. 일에 대한 욕망도, 살고자 하는 의미도, 어디론가 향하는 방향성도 없었다. 서있는 시체나 다름없이 그냥 하루를 살고 내일을 두려워했다. 그것이 사회인이 가진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몇 달을 버텼는지 모른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고르고 이 전공에 흥미를 가지고, 과제를 하고, 친구들과 디자인 얘기를 하며 밤을 새우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없었다. 사실 그럴 때가 있었나 자꾸 의심했다. 무엇을 위해 내가 이토록 노력했는지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누구 하나 인정해주는 사람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 선택했으니 끝은 봐야지 라는 말은 내가 그만두기엔 너무 가소로운 붙잡음이었다. 디자인이 아직은 좋다. 디자이너로서 성공을 꿈꾸기도 하고, 직업병처럼 지나다니며 이상한 폰트의 간판은 내심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회사를 그만두면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의 수많은 날의 노력과 고민, 즐거움까지 빼앗긴 듯이 술을 마시면서도 하염없이 푸념했다. 성공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기만을 바랬지만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그래서 나는 무엇인지 모를 그리움에 잡혀 어느 하나 시선 주지 못했다. 내 이 시선이 언젠가 그리움이 될까.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고, 다가서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괴로울 일인지도 모르고.


 괴로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나 보다.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싶었고, 사랑한 만큼 사랑받고 싶었다. 허나 사실 줄 땐 기대하고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받을 땐 준 적도 없는 사람처럼 모른다. 그것이 나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서운하겠지만 세상  누구도 자신의 기억엔 압박과 고통뿐인 것을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행복한 날도 있었다. 행복할 선택도 후회하지 않던 선택도 있었다. 그렇지만 마음에 퍼져버린 무력감은 나를 되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마치 내가 퇴사하던 그날처럼.


퇴사를 하던 그날을 기억한다. 후련함만 남을 줄 알았으나, 허망하고,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회사에 가 짐 정리를 하고, 회사 분들과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고, 그렇게 나오고는 회사에서 역까지의 길이 원래 이렇게 길었을까. 내 이 발자국에 뭐가 남았을까 싶었다. 그렇게 도망가고 싶었고, 그만두고 싶었던 이 회사와의 끝이 이런 기분이라니 아이러니하기만 했다. 이제 나는 뭐지 싶었다. 디자이너인 나, 회사 막내, 등등 그렇게 많던 수식이가 없어짐에 나 자 신또 한 잃어버릴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분명 오랜 뒤에 나에게 많은 그리움을 줄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외로울 때, 행복할 때  어느 때나 그때 그날을 회상하며 쓴웃음을 짓고는 그럴 때도 있었지라고 넘기는 미래의 내가 될 때까지.  자신을 사랑할  아는 그런 사람이   있기를. 타인의 비난은 달게 칭찬은 겸손히 받을 그런 내가 되어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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