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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oy May 28. 2022

열셋. 선택의 기로에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선택을 한다. 그 사람과 헤어질 것인지 계속 사랑할 것인지. 회사를 다녀야 할지 퇴사를 해야 할지. 그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지속할 수 있는 것에 변수가 생긴다면 대부분 변수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 선택의 기로에서의 변수가 퇴사였고, 선택의 기로에서의 변수가 목포였다. 그 이후 상황은 지금과 같다. 나는 퇴사를 했고 퇴사를 하고는 목포에 내려왔다.


때론 선택이란 것을 내가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환경이 변하고 후회도 내 몫이지만 누군가에 의해 내 선택이 결정되는 날도 있었다. 누군가와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는다거나, 어느 곳에 발령을 받거나, 나 보다 권력을 쥔 사람의 부탁이나 명령이 말이다. 대부분의 이런 상황에 배려는 없다. 자신이 피해를 받는다거나, 자신이 살길을 찾아 나의 불행을 부추긴다. 그 사람도 대략은 알고 있다. 내가 이후 어찌 될지. 하지만 어쩌나 그것은 자신의 일이 아닌데. 이미 그 선택을 넘긴 순간부터는 그 사람의 책임은 없다.


참으로 불행한 삶이다. 내 인생의 10중에 4는 다른 이의 선택에 내가 끌려갔다. 그래서 쉬러 온 목포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에 대한 불평불만을 내뱉을 수 없다. 여기서 나는 배려라는 괴리감에 빠졌다. 퇴사로 도망쳐온 내가 목포에서 일이 하기 싫어 또 도망갈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관계 아래 나의 선택은 없다. 그저 따를 뿐. 믿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나에게 어떤 경험이 되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게 가족의 뜻이라면 따라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 친구 애인 상사 여러 관계에 묶여 나의 선택지가 불분명해질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내 소신을 지켜야 하는가? 그건 사실 잘 모르겠다. 지키기만 한다면 당신 곁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건 소신도 개뿔 있지도 않은 자존심도 아니다. 때론 사람들은 내 소신이 내 자존심을 지킨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나의 의견이 자존심의 문제인가. 결국 그 수많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 못 본 지 오래된 나의 자존심도 나의 불분명하던 소신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희생하며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이 내 덕에 웃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게 나의 희생으로 이룬 것이다. 힘듦을 나누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은 이 시대에 와서 기쁨을 나누지 못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아갔다.


사회의 어른들은 항상 옳은 길로, 옳은 선택을 잘 하라며 조언과 관심을 아끼지 않지만 이건 내 인생이다. 말뿐이고 전혀 지탱조차 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며 나아가는 것이다. 꼭두각시 인형 같은 인생에 나를 조종하려 자신의 차례만 기다리는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며 여럿 나올 것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의 인생을 우리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도, 일도, 우정도 모두 나의 것이다. 나의 선택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계속 내 마음에 내 인생에 남아 선택의 기로에서 함께 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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