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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oy Jun 04. 2022

스물.  나의 퇴사가 당신들의 수치였을까요?

요즘 애들은 이래요.

어른들은 그렇게도 관심이 많다. 나의 입사가 어른들의 자랑이었고 나의 퇴사가 어른들의 수치였나 보다. 요즘애들은 이라는 말이 이제는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다. 요즘애들은 이라는 그런 말에서 단 한 번도 긍정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르다는 이유로 틀린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시대가 바뀌었고 그렇게 살아보았으나 뜨겁게 데고 나서도 과연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흘려들을 수 있다. 하나 누군가 나의 인생을 자꾸만 잘못됐다고만 하는 것 같아 서글픈 나날이다.


잘못된 조직에서 잘못된 지시를 받고 좋지 않은 대우를 받음에도 끈기 있어 다녀야 할 이유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나를 더 비싸고 더 좋은 대우를 받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누군가를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를 위해 내 미래를 위해 지금껏 달려왔던 그 길을 이어받아 직장에 가는 것이다. 그저 내가 단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는 게 어른들의 수치가 될 줄이야.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현실도 영화와 다르다. 버티고 끈기 있게 끝을 보면 해피엔딩? 그런 거 사라진 지 너무 오래되었다. 어른들이 말하던 돈 모아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하고 이 모든 것이 사치가 되었다. 내 입에 먹고 싶은 음식만 한 달 내 가득 채워도 급여는 금방 동이 나는걸.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한 사람들은 오히려 먹고 싶은 것 아끼고 일을 두 개씩이나 하며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며 일을 한다. 무엇인가 지킬게 생긴다는 게 요즘 시대엔 약점이 되는 듯하다.


퇴사 그까짓 거 세상 살며 몇 번이고 할 수 있다. 3개월이 아니라 1개월도 안 다니고 그만둘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퇴사를 하고 어른들은 모두 왜 퇴사를 해 더 버티지 그런 말 뿐이었다. 이제 뭐할래. 그 답은 나 스스로 찾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내게 물어봐도 일어날 힘조차 없는 내게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은 고장 난 자동차를 모는 것도 같다. 언제 퍼질지, 사고가 날지도 모른 채 그저 내달리기만을 위해 도로 위에 뛰어들어야 하는가.


내 영화의 주인공은 나다. 주변 엑스트라의 분량이 많아져 내 분량이 적어지면 안 된다. 엑스트라로 인해 주인공의 삶이 바뀌어도 안된다. 내 주관대로 내가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명분이 필요하다 항상. 그렇지 않다면 주변에서 하는 얘기들은 엑스트라가 내는 자연스러운 소음과 같다. 참고 견딜 수 있어야 어른이라 했다. 하나 어른이 꼭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참고 견디고 버티다 보면 무엇인가 되어 있을 것인가. 그 사이에 놓친 수많은 선택과 집중들 기회들 사이에 그 무엇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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