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이래요.
어른들은 그렇게도 관심이 많다. 나의 입사가 어른들의 자랑이었고 나의 퇴사가 어른들의 수치였나 보다. 요즘애들은 이라는 말이 이제는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다. 요즘애들은 이라는 그런 말에서 단 한 번도 긍정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르다는 이유로 틀린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시대가 바뀌었고 그렇게 살아보았으나 뜨겁게 데고 나서도 과연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흘려들을 수 있다. 하나 누군가 나의 인생을 자꾸만 잘못됐다고만 하는 것 같아 서글픈 나날이다.
잘못된 조직에서 잘못된 지시를 받고 좋지 않은 대우를 받음에도 끈기 있어 다녀야 할 이유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나를 더 비싸고 더 좋은 대우를 받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누군가를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를 위해 내 미래를 위해 지금껏 달려왔던 그 길을 이어받아 직장에 가는 것이다. 그저 내가 단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는 게 어른들의 수치가 될 줄이야.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현실도 영화와 다르다. 버티고 끈기 있게 끝을 보면 해피엔딩? 그런 거 사라진 지 너무 오래되었다. 어른들이 말하던 돈 모아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하고 이 모든 것이 사치가 되었다. 내 입에 먹고 싶은 음식만 한 달 내 가득 채워도 급여는 금방 동이 나는걸.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한 사람들은 오히려 먹고 싶은 것 아끼고 일을 두 개씩이나 하며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며 일을 한다. 무엇인가 지킬게 생긴다는 게 요즘 시대엔 약점이 되는 듯하다.
퇴사 그까짓 거 세상 살며 몇 번이고 할 수 있다. 3개월이 아니라 1개월도 안 다니고 그만둘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퇴사를 하고 어른들은 모두 왜 퇴사를 해 더 버티지 그런 말 뿐이었다. 이제 뭐할래. 그 답은 나 스스로 찾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내게 물어봐도 일어날 힘조차 없는 내게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은 고장 난 자동차를 모는 것도 같다. 언제 퍼질지, 사고가 날지도 모른 채 그저 내달리기만을 위해 도로 위에 뛰어들어야 하는가.
내 영화의 주인공은 나다. 주변 엑스트라의 분량이 많아져 내 분량이 적어지면 안 된다. 엑스트라로 인해 주인공의 삶이 바뀌어도 안된다. 내 주관대로 내가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명분이 필요하다 항상. 그렇지 않다면 주변에서 하는 얘기들은 엑스트라가 내는 자연스러운 소음과 같다. 참고 견딜 수 있어야 어른이라 했다. 하나 어른이 꼭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참고 견디고 버티다 보면 무엇인가 되어 있을 것인가. 그 사이에 놓친 수많은 선택과 집중들 기회들 사이에 그 무엇도 없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