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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oy Jun 02. 2022

열여덟. 사랑했던 것들을 기억하는 법

시간이 지날수록 지워지고 흐려지는 당신에게.

목포에 내려와 생각을 참 많이 정리했다. 그랬던 것,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예전엔 그랬던 것들을 기억하고 떠올렸다. 내 인생에서 열여덟의 그 풋풋했던 나이에 만나 내 고교시절의 전부였던 너를 잊어야 했고 스무 살이 넘어했던 어른스럽고 싶던 그때의 서툴렀던 나를 잊어야 했고 어린 시절부터 품 안에 넣고 기르시던 할머니를 잊어야 했다. 잊어야 하는 것들 투성이었다. 잊었고 잊히기도 그저 가슴속에 묻어두며 살기도 했다. 시간이 그렇게 하라고 한 것처럼 살았더랬다.


잊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기억하며 살기엔 내가 무너질까 두려웠다. 밤만 되면 밀려왔던 그 기억들을 내가 품으며 살기엔 너무 작았던 나를 가엾이 여기어 그냥 잊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라는 것에 자연스레 맡기어 흐르게 흘러가게 그저 지켜만 보았나 보다. 사랑하던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아끼던 것들과의 작별에 순간에 나는 잊지 않으리라 평생을 기억하고, 새겨가며 살겠노라고 다짐했었다. 허나 고여있는 기억은 아름답게 기억될 수 없었다.


고요한 방에 고여있는 기억이라 함은 떠올리게 하고 아프게 하고 나를 외롭게 했음을. 그리 사랑하던 것들이었는데, 내가 살고 싶어 계속 계속 잊어가고 지우고 싶었다. 몸을 바쁘게 하고 나 스스로 틈을 주지 않았지만 빈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내 사이에 껴있었다. 그게 그렇게 쓰라렸다. 뜨문뜨문 찾아오던 기억들은 나를 스쳐 지나가지 않고 내 곁에 머물러 잊지 말아 달라 애원을 했나 보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내가 제정신 일리가 없었겠지.


허나 열여덟의 나에게 당신이 주었던 글귀 하나. 스물하나의 나에게 당신이 주었던 음악 한곡, 내 세상 가득이었던 당신이 주었던 말 한마디는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너무 쓰라리게 아팠던 추억도 있었지만 내 사랑 가득했던 시절의 모습조차 내 모습이었음을. 꺼내지 않고 고이 간직하여 내가 외로울 때마다 기분 좋게 떠올릴 수 있게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어줘 고맙다고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울 수 있게 알려주고 길고 길었던 이별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고 말이다.


당신을 가끔은 기억하고 가끔은 힘들고 가끔은 무너져도 당신이 있기에 지난날들을 살아왔기에 나는 오늘은 조금은 웃고 조금만 울고 조금의 행복으로도 만족스러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목포에 내려와 조금씩은 바뀌어 가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도 소소한 흥미로움이다. 그 시간들이 그리고 당신이 있어 이런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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