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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4.0] 영어 찐따 같아서 짜증 나나요?

by 너굴이

영어...

대충 주변만 훑어봐도 유학생 치고 영어에 자신 있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후천적 bilingual (aka. 모국어를 먼저 배우고 제2외국어로써 영어를 배운자)에다 성인이 되어 유학을 나온 경우는 100이면 100, 영어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삽니다. '포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수동적 행위 같지만, 사실은 적극적 선택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영어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음식 주문하는 영어가 아니겠지요.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를 학술적 의사소통의 수준에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언어를 부림에 있어 어느 정도 고차원적 수준을 요하는 것이지요. 아, 일상생활에서 쓰는 영어가 더 쉽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슬랭은 말할 것도 없고 이어 동사로 이뤄진 표현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구 쏟아지면 바로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살면서 아카데믹 영어는 이제 어떻게 좀 해볼 수 있으려나 싶으면 일상생활에서의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가 안 들려서 좌절하지요. 농담이 좀 들리나 싶으면 원어민 수준의 고상하면서도 정교하게 떠드는 학술 영어가 잘 안 나오는 것 같아 매번 '0'개 언어를 구사하는 수렁에 빠집니다. 그래서 조금은 내려놓고 살아야 합니다. 1개 언어가 잘 되는 경우보다, 어쩌다 컨디션이 좋아서 2개 언어가 되는 듯하다가 여차하면 0개 언어로 전락하는 나날이 더 많기 때문이지요.






제 썰을 풀어볼까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캐나다에 오기 전까지 계속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지금처럼 영어유치원이 필수로 인식되는 등의 영어를 공격적으로 배우는 사회 풍토가 만연하진 않았으나, 부모의 판단에 따라 영어를 일찍 접하려면 충분히 일찍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영어로 시작한 남의 나라 언어 배우기는 정규교육 과정보다는 훨씬 빠르게 시작한 편입니다.


저는 외국어를 좋아했습니다.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도 집중적으로 배웠고 스페인어도 배웠습니다 (만, 다 까먹었습니다). 언어란 쓰지 않으면 금방 퇴화하고 말기 때문에, 제가 캐나다인 남편을 만나 일본에 살면서 스페인어를 가르치지 않는 이상, 그 모든 것을 다 쥐고 있기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릴 때엔 외국어에 통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1도 모른 채 '5개 국어 마스터하기', 뭐 이렇게 깜찍한 꿈을 일기장에 적곤 했지요. 그렇다고 해서 언어에 아주 대단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그저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하는 속도가 빠른 편이고, 말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조금 민감한 편입니다. 어려서 영어를 처음 배울 때에도 발음기호를 배워서 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들리는 소리를 냄으로써 그 언어를 습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고로 저는 성대모사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남의 말에서 들리는 소리에 민감하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각종 영어교육과 영어시험에 일찍 노출되었지만 재외국민 전형이나 각종 유사한 전형으로 대학을 간 경우는 아닙니다. 그건 정말 영어로만 승부를 걸 정도로 영어를 특출나게 잘해야 가능하고요. 그런 유형으로 비벼보려면 어릴 때 최소 3-5년 정도는 외국에서 살다 와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평범하게 수능치고 논술보고, 그렇게 대학 갔습니다.


대학을 가서도 제가 영어를 잘(?)한다는 환상 속에 사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고 호기롭게 영강을 많이 선택했지만, 그때도 재외국민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과는 상대가 안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어를 '잘' 한다는 기준도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애매합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많이' 들으면 잘하는 것인지, 영강에서 성적이 '좋으면' 영어를 잘하는 것인지, 어느 기준을 들어봐도 이상하잖아요. 성적은 그저 수업 잘 듣고 시험지에 키워드 잘 적으면 점수 잘 받는 것이고요.


시험으로 남은 인생 결정지어 보겠다고 선택한 길에 20대의 일부를 갈아 넣느라 외국어를 놓지 않을 순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시험용 영어'였습니다. 혹은 번역에 불과했지요. 주변을 보니, 시험은 또 시험인지라 아무리 영어권에서 살다왔다 해도 그 시험에서 점수를 잘 받는 것은 별개였습니다. 물론 시험에 필요한 스킬은 따로 습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만, 아무래도 외국에서 노출이 된 적이 있다면 그 스킬을 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체화할 순 있겠지요.


석사 진학을 했더니 모든 리딩이 영어네요 (학부와 달리 석사에서는 '읽기'를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현대 정치학의 원류가 영미권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읽어내느라 정신이 없긴 했지만 국문 텍스트도 많이 있으니 필요할 때마다 의존합니다. 어차피 소수의 수업을 제외하면 대학원 토론이 영어로 진행되진 않았으니까요. 유학을 준비하면서 지랄 같다는 GRE를 치르고 지도교수님과 공저로 영어 논문을 게재하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저에게 영어에 대한 확신을 더해주기에는 많이 모자랐습니다. 그저 각 단계를 허덕이며 넘어가는 정도에 불과했지요.


캐나다에 오기 전 뉴욕에서 인턴쉽을 했다곤 하나, 그건 정말 짧은 기간이었고요. 바람결에 스쳐 지나가듯 빠른 동부권 사람들의 말 속도를 따라가느라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하는 말의 절반은 못 알아들었을 겁니다.


박사공부를 한답시고 캐나다로 룰루랄라 왔더니, 진짜 영어 실력이 뽀록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동안 영어 실력으로 남에게 거짓말을 하고 살진 않았지만, 스스로에겐 환상을 심어주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저것을 했으니 괜찮겠지'라는 나약한 환상은 도착한 첫날,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깨졌습니다. 원어민과 와글와글 식사를 하면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일단 발음은 둘째치고 내가 원하는 만큼 말을 수려하게 할 수 없고요. 발음 중에도 틀린 발음도 많고요. 쓰는 단어나 문장도 다릅니다. 저런, 생활영어의 난관을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마주하나요, 너굴.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학술' 영어에 매진하였으니 수업에서는 좀 낫겠지, 할 수도 있겠죠.

안타깝게도 상황은 1도 나아지지 않았고요. 교수와 동료들의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대화의 80% 정도나 알아들었을까요. 수업 준비는 누구보다 열심히 해 가는 것 같은데, 결과물이 그다지 맘에 들진 않죠. 하고자 하는 말을 다 못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요. 토론의 방향만 주어지고 세부적인 내용은 거의 즉석에서 결정되는 '생방' 수업이기 때문에 많은 것이 현장에서 달라집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를 쓰고 손을 들고, 삽시간에 해당 토픽에서 다음 토픽으로 넘어가도 이미 물 건너간 토픽으로 모두의 관심을 멱살 잡고 끌어올 만한 용기와 말빨이 필요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한국 학생은 이 단계를 정말 어려워합니다. 말이 안 되는 것도 짜증 나 죽겠는데, 이미 다 끝난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다들 입 다물고 앉아있기를 선택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생과 교수들이 수업 시간에 슬랭을 쓰진 않는 점이랄까요. 우리도 한국어로, "뭐래, 쟤 오바 육바 쩐다. 쌉소리 노노" 라고 하면 한국어학당에서 고득점 받는 외국인들도 못 알아듣습니다.


처음엔 여기서 한 5년 정도 구르다 보면 영어에 도가 터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마침 캐나다에 온 지 약 7-8년 되는 선배에게 물었더니, '그닥...' 이라는 부정적 대답이 흘러나옵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도 나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를 품었지만, 요즘은 저의 평범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애초에 제가 비범했다면 어디 NASA나 뭐 저기 달나라에 가 있겠지요. 내가 지극히 평범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면, 남들보다 더 뛰어날 것이라 근거 없이 믿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주지 시킵니다. 어쩌면 박사 과정을 통해 깨달은 인생의 진리 중 하나 아닐까 싶습니다. 한없이 드높았던 나의 ego가 현실을 직시하고 나를 덜 괴롭히기 위해서라도 그 숱한 나날들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럼 지금은 어떠냐고요?

일단 맥락 없이 훅 치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 의사소통을 나누는 데에는 무리가 없긴 합니다만, 이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이 정도 세월을 지낸 사람들이 다 도달하는 수준입니다.


제가 한국어로도 말을 하는 속도가 좀 빠른데 (최대한 빠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만), 그래서인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다 전달하지 못하면 조용히 혼자 성질냅니다. 예전보다 혼자 하이킥 하는 경우는 줄었습니다만, 그건 그냥 무뎌져서 하이킥을 덜 하는 것이지, 하이킥 할 상황이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어로 논문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이건 '영어' 글쓰기의 문제도 있지만,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제가 slow writer인 줄 알고 하룻밤에 8000자를 써내는 지도교수 앞에서 우는 소리도 많이 했습니다 (지도교수는... 좀 남다르긴 합니다). 마지막에 똥줄이 타다 못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더니 이틀 동안 한 챕터를 쓰긴 했습니다. 물론 수정은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영어로 일단 갈길 수는 있다. 비록 초안의 퀄리티는 거지같을지언정.


어차피 한국인으로 태어나 후천적으로 영어를 습득한 ESL (English as Second Language) 이라면, 사고가 한국어로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언어라는 것이 1:1 매칭이 잘 이뤄지지 않는 부분도 많아서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생각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그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미권에서 살만큼 살고 영어에 노출이 많이 된 지금도 차에 치일 뻔하거나 넘어질 뻔했을 때, "Oh My GOSH!!"라는 말보다 "엄마야!"라는 단어가 먼저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어 패치가 기본값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있느냐입니다. 학회나 각종 행사에 참석해 보면, 발표하는 사람의 영어 실력은 천차만별입니다. 저 사람은 분명 영미권에서 살다 온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발음이나 자주 사용하는 단어 만으로도 출신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한 자리에서 영어는 그저 부차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물론, 수려하게 말을 하고 모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처럼 모든 정보가 소실되지 않고 영어로 전달되면 좋겠지만, 듣는 사람도 잘 알고 있습니다. 원어민이 아닌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요.


극단적인 사례 두 가지만 들어볼까요. 말은 기똥차게 하는 것 같은데 알맹이가 없어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케이스와,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지만 화자의 아이디어가 흥미로워서 청중으로부터 질문이 끊임없이 들어왔던 케이스(들)입니다.


첫 번째는 대학원 수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하기 어렵다는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미국 출신 학생이었죠. 풍기는 외양에서 비범함을 엿볼 수 있었던 친구였습니다.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부터 이 친구의 말을 내가 다 알아듣기란 불가능함을 깨달았습니다. 랩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었지만 말하는 속도가 대단히 빨랐고 중간중간 농담과 풍자를 섞어 말하는 그의 말하기를 들으며 저는 좌절감을 맛봐야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구나.


그러다가 조금씩 이상함을 느낍니다. 이 친구와 조별과제를 하며 토론을 할 때에도, 발표를 같이 할 때에도 뭔가 잘 맞지 않음을 느낍니다. 늘 그랬듯이 저는 저의 '부족함'을 탓했습니다. 내가 잘 못 알아 들어서. 내가 뭔가를 몰라서, 등으로요. 하지만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한 발표에서 내가 마냥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발표를 하는 그 친구의 입에서 자꾸 핵심을 빗겨나간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핵심만 빗겨나갔다면 다행이게요. 아예 텍스트를 잘못한 것 같은 말도 줄줄 나옵니다.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와 클래스메이트들의 표정이 요상해졌죠. 제가 재빨리 끼어들어 수습을 시도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고 이런 뜻이며, 학자 A의 글에 대해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비평할 부분은 이렇다, 라고요. 다행히 요상한 눈빛이 잦아들었습니다.


그 후 미국인 히피 같은 이 친구의 활약(?)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정치사상 수업에서도, 술자리에서도, 대학원생 연구실에서도, 등등.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스멀스멀 들려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평이 대다수입니다. 저도 조심스레 저의 고민(?)을 터 놓습니다.

"난... 내가 영어 원어민이 아니라 내가 못 알아듣는 줄 알았지..."

저의 캐네디언 친구가 말합니다.

"야, 걔 말은 나도 못 알아들어."


또 다른 에피소드는 사실 수많은 비영어권 출신 화자의 말하기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물론 귀를 기울일만한 아이디어가 있을 때에 한해서요. 학회든, 워크샵이든, 인터뷰든, 등등. 어떤 자리에서든 영어로 학술적 의사소통을 해야 할 일은 차고 넘칩니다. 누가 봐도 영어가 편하진 않지만 한 땀 한 땀 애써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고 청중의 질문에 답합니다. 특히 전문가 혹은 내부자만이 볼 수 있는 시각을 전달할 때 청중의 몰입도는 극에 달합니다. 북한 문제나 각종 현안에 대해 지역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전할 때, 선택하는 단어는 좀 어설플지 몰라도 혹은 말하는 속도가 느려 더듬댈지언정, 청중들은 최선을 다해 듣습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들을만한 아이디어가 있느냐, 여부이기 때문입니다.






박사과정 2년 차 정도 되었을 즈음일까요. 한국에 계신 석사 지도교수님께 이메일로 안부를 전하며 저도 모르게 영어의 어려움을 토로하게 되었나 봅니다. 영어가 찐따 같고, 내 맘 같지 않고, 어쩌고 저쩌고. 교수님은 글에서도 본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말투로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언어의 문제는 어쩌면 영원히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영어 원어민이 아닌데 그 수준을 바라면 되겠느냐. 하지만 너굴이 너 만의 깜냥을 펼칠 전문분야가 생기고 '이 분야에 한해서만큼은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다'라는 순간이 반드시 올 거다. 그때가 되면 언어는 전혀 장벽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만 징징대고 할 일이나 해라)


그 말씀을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순간이 올 것 같지도 않았고요. 저 멀리 있는 민들레 홀씨를 잡아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애초에 원어민처럼 문제없이 말하고 싶다는 둥, 목표를 너무나도 높게 잡은 저를 탓하는 수밖에요.


그렇지만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1년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교수님의 말씀이 어떤 뜻인지 시나브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niche가 생겼음을 깨닫는 순간 언어는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설령 조금 문제가 된다 할지라도 세상이 좋아져서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언어는, 특히, 모국어 이외의 언어는, 나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 수단이 반드시 금장을 두르고 명품 딱지를 붙이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아이디어 매개체'의 역할을 문제없이 수행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언어 수행능력을 따지기 이전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보다 중요한 질문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어떤 핵심을 전달하고 싶은가. 내가 전달하려는 아이디어는 어떤 것인가.


저의 영어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영어로 논문을 쓸 때에도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리고요. 생각도 더딥니다. 대단히 유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빨리 하려다 보니 생긴 안 좋은 습관도 있고요. 아직도 익혀야 할 표현이 하늘 높이 쌓여있습니다. 풍자라든가 컨텍스트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리스닝도 바로 귀에 꽂히지 않습니다. 바보같이 생방 인터뷰에서 앵커가 묻는 질문에 내가 제대로 답을 했는지 확신을 하지 못한 채 인터뷰를 끝내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좀 틀려도 괜찮습니다. 배 째라 정신이 가끔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목표를 너무 높이 잡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하지 말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은 인내심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한 질문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달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면 잡생각을 덜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What에 집중하면 언젠가 How에 대한 고민이 가벼워지는 날이 옵니다.

이 말을 캐나다에 온 첫 날부터 언어문제로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하던 저에게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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