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아가 첫 발화를 시작한지 약 1년 반이 지난 후, 엄마의 욕심으로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심지어 도움반도 원치 않는다고 완전 통합을 선택했다. 친구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바로 담임 선생님과 엄마와의 문제.
유아기 시절을 눈물로 보낸 나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에서도 혼자 울었다. 우리 밤아가 이 만큼 커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될 줄은 사실 생각도 못했다. 물론 학교에 가긴 했겠지만, 이렇게 말을 하고, 어엿한 학생의 모습(아직 병아리 같은 1학년이기는 하지만)으로 책가방을 메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밤아의 초등학교 입학은 나에게 기적처럼 다가왔다. 밤아는 친구들과 곧잘 어울리며 즐겁게 학교에 다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입학식 다음 날부터 밤아의 담임 선생님은 ‘밤아 어머님 되시냐’며 날 찾으셨다. 이유는 밤아가 특수교육대상으로 등록된 아동인데 완전 통합을 선택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밤아를 도움반에 보낼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그 후부터 일 주일에 2~3번씩 아침마다 전화가 왔다. 아침 7시 50분쯤에 울리는 전화는 무조건 담임 선생님의 전화였다.
“밤아 어머님, 생각 좀 해보셨어요? 도움반에 가면 밤아가 배울 것들이 훨씬 많아요.”
“저는 일반 학급에서 친구들이 생활하는 것들을 보고 배우고, 대화도 직접 많이 해보면서 언어도 함께 늘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런 대화들이 무한 반복되었다. 하도 전화가 자주 와서 5월 쯤 되었을 때엔 내가 분명히 오른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받기는 했는데, 들숨과 날숨의 순서를 모르겠고, 그래서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숨이 가빠 왔고, 전화 통화의 기억도 가물가물한 경험을 몇 번 했다. 이런 것이 공황장애라는 것일까. 결국 국어 시간에만 도움반에 보내기로 결정했고, 그제서야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전화하기를 멈추셨다. 그리고 또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밤아 어머님, 도움반에 밤아를 왜 보내신 거예요? 밤아는 도움반에서 받을 도움이 없어요. 그리고 1학년 때 도움반에 들어오면 2학년 때에도, 3학년 때에도 무조건 도움반에 와야 해요. 행정상 그런 원칙은 없지만, 담임 선생님들이 전년도에 도움반에 갔던 아이는 무조건 도움반에 보내라고 하시는 경향이 많아요. 도움반에 들어오기는 쉬워도, 나가기가 정말 어렵기도 하고, 특히 밤아는 도움반에 올 필요가 없는 학생이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도움반 선생님의 전화였다. 담임 선생님은 도움반에 보내라고 2~3달 가까이 전화를 하셨고, 그래서 도움반에 보냈더니, 이번에는 도움반 선생님이 밤아는 도움반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슬슬 화가 올라올 것만 같았던 나는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밤아랑 혹시 대화 좀 해보셨어요? 밤아랑 이야기 해보시고 저한테 도움반 말씀 하신 건가요?”
“아니요. 밤아랑 이야기는 따로 안 해봤어요. 밤아가 혹시 단어, 단어, 붙여서 말 할 줄은 아나요?”
이 무슨 해괴한 발언인가. 담임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학생과 말 한 마디 안 해보고 도움반에 보내라고 했던 것인가. 조심스럽게 말해서 담임 선생님의 인성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단은 모두의 평화를 위해 국어 시간에만 도움반에 보내는 것을 유지하기로 했다. 물론 2학년 때에도 도움반에 갔다. 아예 매일 국어 시간을 1교시로 정해두고 등교하자마자 밤아는 도움반으로 향했다.
밤아는 도움반에 가기 싫어했다. 도움반에 안 가겠다고 아침마다 울었지만, 달래서 학교에 보냈던 무심한 엄마였다. 그리고 2학년 학기가 끝날 때쯤 아이 친구의 엄마로부터 알게 된 사실.
“밤아 엄마~ 밤아 담임 선생님이 밤아를 도움반에 데려다주고 오는 학생한테 칭찬 스티커를 주고 있대요.”
애 초등학교 보내고 2년 동안 난 무엇을 한 것인가. 밤아가 도움반이 싫다고 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만 가게 했어야 했는데, 우리 밤아가 학교에서 그렇게 생활했구나. 친구들은 밤아를 도움반에 데려다주며 칭찬 스티커를 모았고, 밤아는 도움반이 싫지만 친구가 데려다주니 좋다고 갔겠구나.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그 날 밤, 남편과 나는 밤아를 전학시키기로 결정하고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도움반과 일반 학급, 그리고 담임 선생님과 도움반 선생님, 나 이렇게 삼 자 사이의 충분한 대화가 없었고, 아이의 내면을 돌보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 컸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초등교육의 현실이 아닐까, 이러면서 어떻게 교육 평등과 장애인 평등을 외치고 선진국을 논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