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힐링 구조| 사진 출처: '쌍둥이아빠'|Edited by @min
우리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개인 전용으로 쓰는 비누가 있었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하얀 아이보리 비누를 고집하셨는데, 따뜻한 물을 대야에 받으시곤 열 번 정도 얼굴을 적시신 후에 비누 거품을 내어 얼굴을 문지르셨다. 할머니께서 특별히 신경 쓰는 비누질은 얼굴이 아니고 바로 귀와 귀 뒤, 그리고 목을 얼굴 보다도 많이 문지르셨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귀가 끼일 듯이 박박 문지르셨는데, 그 연유는 어릴 적 한 여인을 보았는데, 그 여인이 참 곱게 생기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여인은 말끔히 차려 입고 곱게 화장을 하였는데 반해 귀 뒤와 목에 때가 껴 있어서 그녀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할머니 머릿속에선 고운 여인에서 더러운 여인으로 태새전환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 후로, 귀 뒤와 목의 때에 트라우마가 걸리셨는지 아침마다 사람 살을 저리 문질러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박박 닦으셨다. 하얀 아이보리 비누를 보거나 그 비누 향기가 날 때면 할머니의 아침 세수 시간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세수 후 은빛 긴 흰머리를 참빗으로 빗으신다. 양 갈래로 쪽진 머리를 세 갈래로 딴 후 꽃무늬가 새겨진 은 비녀를 꽂으신다. 동백기름을 왼손에 부어 양 손에 나눠 바르 신 후 은 빛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쓰다듬으며 기름을 바르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신다. 빗으로 빗어 빠진 긴 흰머리는 꼭 참빗과 함께 신문지로 싸서 보관을 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매월 날짜를 골라 빠진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태우신다고 하셨다. 동백기름과 은비녀 그리고 참빗을 보게 되면 할머니의 머리 손질하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제일 그리운 건, 바로 우리 할머니의 무릎베개다. 울적하거나, 속상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하면, 난 할머니에게 달려가 가부좌로 앉아 계시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한 참을 누워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항상 회색 몸배를 입고 계셨는데, 거기에서는 솔나무 가지 탄 냄새가 은은히 풍겨져 나왔다. 풀이 죽어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있노라면, 할머니께서는 항상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아가, 괜찮여?"라고 물으셨다. 할머니의 무릎 베개를 하고 좀 누워 있다 보면 모든 근심 걱정이 신기하게도 사라지곤 했다.
할머니 몸배에서 탄 솔 냄새가 나는 것이, 할머니는 항상 소일거리로 뒷 산에 올라 타들어 가는 햇살에 바싹 구워 지듯이 말라, 스쳐 지나가면 부러질 것 같은 솔나무 잎을 한 포대씩 주워 오셔서 검정 가마솥에 물이라도 데우셨기 때문이다. 쪼그리고 앉아서 부지깽이로 바싹 타들어 가는 솔 잎을 이리저리 들추며 할머니는 가끔 아궁이 앞으로 나를 부르셨다.
"아가, 불 앞에 몇 분이라도 쪼그리고 앉아 있어 봐.
이 불이 그렇게 죻디야.
옛날 어른들이 이 아궁이 불을 쬐니 자궁암이 없었다고 하더구먼...
이 아궁이 불이 훈증 역할을 한다고이.."
그렇게 아궁이 불을 쬐다 보면 어느새 할머니와 나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훈증도 훈증이지만 할머니의 적적한 시간을 그리 보내셨나 싶다. 아직도 고목 껍질 같이 거칠고 갈라진 손으로 무릎베개를 하고 있던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시는 실크처럼 부드럽고 세심한 할머니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