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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hms Apr 28. 2021

사랑할 수 있어 감사했고, 영원히 사랑합니다

오펜바흐 - 재클린의 눈물

Offenbach 'Jacqueline's Tears'
오펜바흐 '재클린의 눈물'


 1961년, 영국의 16살 소녀는 해맑은 웃음으로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데뷔 연주를 가졌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재클린 뒤프레’. 재클린은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첼리스트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거장이었던 '파블로 카잘스'와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사사를 받았던 재클리는 풍부한 감정과 힘 있는 연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열정적인 에너지 때문에 첼로의 줄이 끊어져 연주를 잠시 중단했었던 웃지 못할 상황도 있었죠. 로스트로포비치는 그녀를 향해 '내가 이룬 업적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첼리스트'라는 격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스마일리 Smily'라는 별명을 가졌던 재클린은 즉흥적인 성격에 늘 쾌활하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녀의 밝은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사람들은 그녀를 굉장히 좋아하였죠.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é / 1945 - 1987) / 출처. Getty Images


 1966년, 재클린은 피아니스트 ‘푸총’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키가 작은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열정이 가득한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이었죠. 그와 함께 연주를 하게 된 재클린은 그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사랑에 빠져버렸죠. 다니엘과의 사랑에 눈이 먼 재클린은 부모님께 그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이 결혼을 완강히 반대하였죠. 미래가 창창한 내 딸이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 없는 남자와 만난 지 6개월 만의 결혼이라니! 하지만 재클린은 유대교로 개종하며 이스라엘에서 다니엘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클린은 남편과 연주를 하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죠. 점점 피로해지는 체력과 연주 도중 말을 듣지 않는 손 때문에 재클린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런 재클린을 보고 '정식적으로 해이해졌다. 정신 좀 차려라'라는 말과 함께 그녀를 몰아세웠습니다. 재클린의 증상은 점점 심해져갔지만,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재클린의 측근 '라이자 왈슨'은 그 당시 재클린의 상황에 대한 회상을 남겼습니다.

"그녀 혼자서 외출하는 일이 잦았다. 쇼핑을 하거나 들판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지나가는 사람이 도와줄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늦게 돌아온데 대해 남편이 화를 내면 '쇼핑하다 보니 입고 싶은 옷이 너무 많았어요'라고 둘러댔다. 결국 그녀는 도로변에서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연주 중인 재클린 뒤 프레 / 출처. National Portrait Gallery


 남편 다니엘의 말처럼, 정신이 해이해진 줄 알았던 재클린은 정신병이 아닌,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녀는 '그래도 정신병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안도를 내쉬었죠. 점점 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한 그녀는 더 이상 첼로를 연주할 수 없었습니다. 점점 부어가고 굳어가는 얼굴에서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습니다. 고작 20대 중반에 말이죠. 병상에 누워있던 재클린은 청천벽력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남편 다니엘이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래머'의 전처였던 피아니스트 '엘레나 바쉬키로바'와 사실혼 관계에 있으며, 그녀 사이에서 이미 2명의 아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죠.  


 14년이라는 긴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다니엘은 한 번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재클린은 다니엘을 질책하지 않았죠. 그저 그와 함께 연주했던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그와의 사랑을 곱씹어 회상했습니다. 재클린은 다니엘에게 '사랑할 수 있어 감사했고, 영원히 사랑한다'라는 말을 남기며, 42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재클린의 눈물’은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가 19세기 작곡가 ‘오펜바흐’의 미공개 첼로 곡을 찾아내 세상에 알린 작품으로, 재클린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붙여진 제목입니다. 재클린을 위해 작곡된 곡은 아니지만, 애절한 음악은 긴 시간 끝에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재클린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난 시간들을 하염없이 그리워했을 그녀의 마음을 보듬어주시며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다니엘을 사랑한 재클린 뒤 프레.


 *피아노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재클린이 죽은 후, 바쉬키로바와 재혼을 했습니다. 현재 뛰어난 실력으로 거장이라고 불리는 다니엘은 현재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입니다. 또한 오랫동안 세계 분쟁 지역을 찾아가 연주회를 열었으며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의 지휘자’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https://youtu.be/mJa4C0nvPqs

첼리스트 장한나, 피아니스트 세르지오 티엠포 연주

https://youtu.be/1pmBJLI4kVw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 연주

https://youtu.be/Q250pAVQf0g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연주

-메인 사진 출처 : Warner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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