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으로 배우는 거리두기
왜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들었을까?
단지 뇌과학을 공부했을 뿐인데, 왜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드는 걸까? 지식은 정말 그런 힘이 있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힌트가 되어준 개념이 바로 ‘심리적 거리두기(distancing)’라는 전략입니다.
거리두기란 무엇인가요?
‘거리두기’는 감정 조절 전략 중 하나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나’와 ‘감정’ 사이에 한 걸음의 간격을 만드는 것이죠. 예를 들어, 지금 이 감정을 제3자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든가, 시간이 흐른 뒤의 나로서 되짚어본다든가, 뉴스 화면처럼 객관적인 시선으로 감정을 바라보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감정과 나 사이에 심리적 공간이 생기면, 감정에 휩쓸리는 대신 감정을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감정은 더 이상 나를 덮치는 파도가 아니라, 내가 해석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이 되죠. 거리두기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감정과 나 사이에 틈이 생길 때, 우리는 반응이 아니라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뇌과학은 내 감정을 다르게 보게 해줬다
저에게는 뇌과학이 바로 거리두기의 방법이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우울한 기분이 들면 “나는 또 왜 이 모양이지…”라고 자책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해요.
“아, 지금 내 전전두피질의 힘이 약해졌구나.”
“지금은 편도체가 과잉 반응하고 있네.”
이렇게 감정을 뇌의 언어로 풀어내는 순간, 그 감정은 더 이상 ‘나’ 자체가 아니라, 뇌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게 저에게는 감정과 나 사이의 거리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실마리였어요.
거리두기가 작동하는 뇌의 방식
최근의 뇌영상 연구들은 거리두기 전략을 사용할 때 실제로 뇌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흥미로운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두 가지 뇌 부위가 특히 자주 등장합니다.
첫째는 편도체(Amygdala). 공포, 분노, 불안 같은 강한 감정을 처리하는 중심입니다. 우리가 위협적인 장면을 보거나 부정적인 자극을 받을 때 신체 반응을 유도하는 부위죠. 한 fMRI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단순히 바라볼 때 편도체가 강하게 활성화되었지만, 거리두기 전략을 사용할 경우 그 활성도가 의미 있게 감소했습니다. 감정의 불꽃이 뇌 안에서 잦아들기 시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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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내측 전전두피질(mPFC). 이 부위는 어떤 정보가 ‘나와 관련 있는지’를 평가하는 역할을 합니다. 감정 자극을 ‘나의 것’으로 인식할수록 이 영역이 더 활발히 반응하죠. 그런데 거리두기 전략을 쓰면, 감정을 외부적인 이야기처럼 인식하게 되면서 이 영역이 감정 자극과의 연결을 조율해줍니다. 다시 말해, 감정과 나 사이의 연결을 느슨하게 해주는 조정자 같은 역할을 하는 거예요.
mPFC는 어떤 정보가 나와 얼마나 관련 있는지를 평가하는 역할을 합니다. 감정 자극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수록 더 활발히 반응하죠. 그런데 거리두기 전략을 쓰면, 감정을 외부적인 이야기처럼 인식하게 되면서 이 영역이 감정 자극과의 거리 조절을 수행합니다. 다시 말해, 감정과 나 사이의 연결을 느슨하게 해주는 조율자 역할을 하는 거예요.
이 외에도 전대상피질(dACC), 쐐기앞소엽(precuneus), 상측두이랑(STS), 하두정소엽(IPS) 같은 부위들도 함께 작동하며, 감정 조절을 보다 섬세하게 도와줍니다. 갈등 조절, 관점 전환, 주의 전환, 사회적 의미 해석까지 다양한 기능이 이 회로에 참여하고 있어요.
해석의 방식을 바꾸는 힘
이처럼 거리두기는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뇌의 회로를 다르게 작동하게 만드는 전략입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덮어두는 방식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해석 방식’을 바꾸고 그것을 나와 분리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죠. 뇌과학은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언어였습니다. 감정이라는 낯선 풍경 앞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처럼, 저에게는 뇌과학이 삶을 조금 더 다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었어요.
다음 편에서는, 감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하는 힘, 마음챙김(mindfulness)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