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훈련할 수 있다는 위로
회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
하버드대 신경해부학자 질 볼트 테일러는『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뇌속 다양한 세포 집단, 그것들이 조직되는 방법, 또 서로 다른 신경 회로들을 작동시킬 때의 느낌에 대해 잘 알수록, 우리는 뉴런 연결망을 의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더 많은 힘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외부 환경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매 순간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되고 어떻게 그런 모습이 될지 선택하는 힘이 궁극적으로 생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멈춰서서 여러 번 되짚어보았습니다. 감정과 생각은 타고나는 것, 혹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만 여겼던 저에게 이 말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어떤 회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행동까지 달라질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언어였습니다.
해부학처럼 감정 회로도 알 수 있다
운동을 할 때도 해부학을 알고 있으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근육을 단련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어떤 각도로 자극해야 원하는 근육이 자라는지를 알게 되면, 같은 시간 동안도 더 효율적인 훈련이 가능해지니까요. 저는 감정과 생각도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 회로에 휘말리고, 어떤 생각 패턴에 빠지는지 ‘그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무기력하게 휘둘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DMN과 TPN, 회로는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멍하니 있을 때 우리 뇌에서는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가 활성화됩니다. DMN은 과거 기억, 자기 반추, 상상, 감정 회상 같은 내적인 활동과 관련이 깊죠. 그래서 멍 때리다가 문득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반대로 불안과 걱정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반면, 어떤 일에 몰입하거나 집중하고 있을 때는 과제 중심 네트워크(Task Positive Network, TPN)가 작동합니다. 이 회로는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목표를 향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회로가 서로를 억제한다는 거예요. DMN이 활성화되면 TPN은 억제되고, TPN이 켜지면 DMN은 잠잠해집니다.
지금 필요한 회로는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어요. ‘나는 지금 어떤 회로에 머물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 필요한 회로는 무엇일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면 일부러 산책을 하거나 멍 때리는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호흡 명상처럼 주의를 한 곳에 모아주는 연습을 통해 DMN의 활동을 잠재우고 TPN을 활성화할 수 있어요.
뇌를 아는 것은 곧 나를 조율하는 힘
이것이 뇌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힘입니다.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 회로를 인식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마음이 산만해졌을 때, 어느 회로를 꺼내야 할지 알 수 있다는 것. 그 선택의 시작점은 뇌를 아는 일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마음챙김이 지닌 본질이기도 하죠. 우리는 뇌를 알수록, 나를 더 잘 조율할 수 있습니다. 감정도, 생각도, 나의 하루도 전보다 조금은 더 의도적으로 살아낼 수 있어요. 뇌는 결국, 내가 나를 훈련할 수 있다는 위로의 언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