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풍우 한가운데서 피어나는 고요

에픽테토스가 알려주는 통제불가의 자유

by 브레인캔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거친 파도 위, 작은 배 한 척이 나뭇잎처럼 흔들립니다. 선원들이 공포에 질려 신에게 울부짖는 사이, 한 노인이 고요히 앉아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의 가슴은 파도보다 잔잔하고, 눈빛은 먹구름 뒤에 숨은 별처럼 맑습니다. 이 순간, 그가 에픽테토스의 현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 갑판에서 흔들리는 등불 그림자가 그의 주름진 얼굴에 춤추며 깨달음의 리듬을 새깁니다.


"과연 우리는 폭풍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파도의 높이를 낮출 수나 있을까요?" 철학자의 물음이 천둥소리보다 울림 있게 다가옵니다. 답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것에 매달릴 때마다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나갑니다. 주식 차트에 매달린 손떨림, SNS 알림에 일희일비하는 마음, 사랑하는 이의 변심에 흔들리는 영혼——이 모든 것이 우리를 조각내는 칼날이 됩니다. 아침마다 뉴스 속 예측불가의 경제 지표를 마치 운명의 신탁처럼 해석하는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불확실성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에픽테토스는 현대인의 스마트폰 화면에 메시지를 띄웁니다 : "당신을 괴롭히는 건 현실이 아니라 그걸 해석하는 렌즈입니다." 갑자기 교통체증 속 경적 소리가 '지금 늦으면 인생이 끝난다'는 망상에서 비롯된 공포임을 깨닫게 되죠. 비가 내리는 날 창가에 앉아, 우리는 우산을 준비하는 대신 '왜 하필 오늘?'이라 투덜거립니다. 마치 자연이 인간의 일정표를 의식하고 방해하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노인이 손바닥 위에 맺힌 빗방울을 바라보듯, 우리도 사소한 순간들 속에 우주의 리듬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철학자가 우리 손에 쥐어주는 실타래는 간결합니다. "통제 영역과 비통제 영역을 가르라." 이 지혜를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버스가 엔진 고장으로 멈춰 선 자리에서, 어떤 이는 책을 펼쳐 들고 다른 이는 초조하게 시계만 바라봅니다.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세계에 사는 두 사람입니다. 차량의 기계적 결함은 똑같이 적용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선택의 자유는 각자의 몫이죠.


사랑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가슴을 후벼 팝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라 말하는 철학자 앞에서, 현대의 연인들은 SNS 확인기록이라는 디지털 발자국을 쫓는 모순을 저지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가도 그 손이 언제든 놓아질 수 있음을 아는 부모의 마음 아닐까요? 어린 딸이 첫 혼자 등굣길에 나설 때, 어머니의 심장은 천 개의 파도로 흔들리지만 입가엔 응원의 깃발을 달아주는 그 용기 말입니다.


에픽테토스의 혁명적 선언이 고막을 두드립니다. "세상이 네 뜻대로 되게 하지 말고, 네 뜻을 세상에 맞추어라." 처음엔 체념으로 들렸던 이 말이, 알고 보니 인생 최고의 자유 선언이었습니다. 강물이 바위를 만나면 물길을 돌리는 것처럼, 우리도 장애물을 길들일 필요 없이 흐름을 택할 수 있습니다. 요리사가 레시피 대신 손에 잡힌 재료로 요리를 창조하듯, 삶의 예술가가 되는 비결입니다.


이 철학을 실천하는 건 피아노 연주를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첫날은 건반 하나 누르는 것조차 어색하죠. 하지만 매일 '통제 가능/불가능'의 악보를 보며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삶이 교향곡으로 변합니다. 길 잃은 배가 항해의 맛을 알아가는 것처럼요. 회의실에서 상사의 부당한 질책을 듣는 사내가 의자 팔걸이에 힘주던 손가락을 풀어헤치는 순간, 그는 갑판의 키를 잡은 선장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바다의 뱃사람입니다. 파도는 여전히 통제할 수 없지만, 돛을 펴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노인이 폭풍우 속에서 발견한 고요함은 특별한 재능이 아닙니다. 단지 파도와 자신을 구분하는 법을 깨달은 평범한 용기죠. 길을 가다 발에 묻은 진흙을 닦기보다, 그 흙털이가 새 신발에 그림을 그리는 소년의 시선은 철학자의 눈빛과 닮았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심한 업무 지시를 받은 직장인은 창밖을 바라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말합니다. "상사의 기분은 날씨보다 변덕스러우니, 네 판단만은 맑게 가져라." 이 순간, 에픽테토스가 2천 년 전에 남긴 지혜가 현대인의 마음을 구원합니다. 퇴근길 역전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이에게 철학자는 속삭입니다. 이미 떠난 열차 뒤를 쫓는 대신, 다음 배차시간표를 보라 하죠.


인생의 폭풍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태풍의 눈을 키울 수는 있습니다. 모든 것이 뒤흔들리는 순간에도, 내면 깊숙이 자리한 고요의 섬——그곳이 진정한 자유의 영토입니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배의 키를 잡는 건 언제나 너 자신이니라." 어둠이 내려앉은 항구에선 선장들이 등대를 탓하지만, 진정한 항해사는 별을 읽는 법을 압니다. 오늘 밤, 당신의 갑판에는 어떤 별빛이 내릴까요?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