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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에 몸을 맡기라

저항하지 않는 삶의 미학

by 브레인캔디

물은 부드러움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바위를 가를 때도 소리 없이, 산을 넘을 때도 고개 숙여. 그 흐름에 맞서지 않으니 오히려 영원히 흐르는 법을 압니다. 세상이 거친 파도로 내려칠 때마다 선인들은 속삭이죠.

"너울처럼 휘감기라. 흙이 비를 품듯 고통을 안아라."


어느 아침, 찻잔 위로 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봅니다. 바람이 불면 흩어지고, 고요하면 곧게 서는, 저항하지 않는 그 모습이 마치 삶의 은유 같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흘러간다면 어땠을까요. 단단히 서려할수록 부서지는 법, 유리잔처럼. 증기는 허공에 그림을 그리다 사라지듯, 존재의 리듬에 몸을 맡깁니다.


강가의 노인은 말합니다. "물은 길을 만들지 않아도 길이 되느니라." 돌이 길을 막아도 웃으며 돌고, 바위가 가로막아도 속속들이 스며듭니다. 파도는 몸을 낮추고 가뭄은 땅속으로 숨어, 끝내 바다에 닿는 지혜. 우리의 슬픔도 그렇게 흘려보내면 어떨까요? 눈물이 마른자리에선 언제나 민들레가 피어납니다.


"약해지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선인들은 갈대를 보라 합니다. 참나무는 뿌리째 쓰러져도, 갈대는 허리를 꺾으며 폭풍을 견뎌내지요. 부드러움에 깃든 강함, 그건 흐름을 아는 자의 몸부림입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창문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바람이 말을 가져가고, 고요가 그 자리를 채울 겁니다.


초승달이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밤, 달은 빛을 밀어내지 않습니다. 구름이 걷히면 은빛을 내리고, 덮이면 잠깐 숨을 고르죠. 삶의 예측불가능함 앞에서 우리도 그렇게 흘러간다면? 계획이 어긋날 때마다 강물에 몸을 맡겨 보세요. 발버둥 치면 가라앉지만, 숨을 고르면 물결이 등에 업혀 갈 길을 알려줍니다.


사랑이란 상대의 그림자까지 안는 것이라 합니다. 빛나는 면은 내버려 두고, 어두운 균열엔 이끼를 심어주는 것. 선인들의 연인은 갈라진 유리잔을 들여다보며 말하죠. "부서진 조각마다 별이 박혀 있구나." 저항하지 않는 마음은 뿌리가 되어, 봄비에 젖은 흙처럼 관계를 기릅니다.


옛 의서에 적혀 있습니다. "기가 막히면 병이 들고, 피가 막히면 통증이 생긴다." 성벽을 쌓으며 세상과 맞서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감옥을 짓습니다. 돌 하나를 치워 보세요. 틈새로 스며드는 햇살이 고여든 어둠을 녹일 테니. 목마른 이여, 강가로 가세요. 물은 이미 당신을 기다리며 흐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무너지는 모래성에 웃음을 뿌립니다. 허물어짐도 놀이의 일부이기 때문이죠. 어른이 된 우리는 무너짐을 두려워해 시멘트로 뒤덮지만, 현자는 속삭입니다. "모래알은 바람을 타고 새 섬으로 떠난다." 영원히 서 있으려 애쓰지 마세요. 무너질 때마다 태어나는 법, 그게 흐름의 비밀입니다.


겨울나무가 황량하게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지 끝엔 이미 봄의 싹이 고개를 들고 있죠. 죽음마저 자연의 숨결이라 받아들일 때, 삶은 찬란한 유예가 됩니다. 현문의 치유는 거센 파도를 가르는 힘이 아닙니다. 물방울이 바위를 스며들듯, 부드러운 수용으로 세상을 품는 내면의 강입니다.

물은 여전히 흐릅니다. 당신의 눈물도, 웃음도, 모든 것이 그 강에 실려 가죠. 오늘, 숨을 내쉬며 저항을 놓아보세요. 영혼의 바다가 파도를 넘어 평온의 모래사장에 닿을 때, 그곳에선 이미 새로운 조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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