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깨진 거울 속에서 나를

by 브레인캔디

나는 거울을 깨뜨렸다.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어지며 내 얼굴을 일곱 개로 갈라놓은 순간, 비로소 그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틀렸어. 네겐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어.”

그건 내 목소리였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각인된 언어가 내 안에서 스스로를 잠식하는 소리—셀프 가스라이팅의 속삭임이었다.


-


그것은 서서히 다가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릿속에 깔린 안개. 거울 속 내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넌 부족해’라는 문장. 성공을 손에 쥐어도 “운이 좋았을 뿐”이라 속삭이는 잔인한 합리화. 나는 내가 나를 가둔 감옥의 간수이자 죄수가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못 미더워?”라는 질문은 독이 된 침대가 되어 매일 밤 나를 덮쳤다.

심장은 뛰었지만, 호흡은 죽은 듯 조용했다.


-


어느 날 문득, 나는 의문을 품었다.

“내가 정말 이렇게 무기력할까?”

아니, 무기력한 게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실패를 예측하며 미리 체념하고, 타인의 인정을 기다리며 스스로를 작게 접어버렸다. 셀프 가스라이팅은 나를 보호하려는 위장된 방패였다. 상처받을까 봐 미리 무덤을 파는 습관.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학대야.”


-


나는 유리 파편을 주워 모았다.

손바닥에 박힌 각도마다 다른 내 모습—울던 얼굴, 웃던 얼굴,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 조각난 자아를 하나씩 맞추며 물었다.

“진짜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처음에는 고함이었고, 다음엔 속삭임이었으며, 마지막엔 침묵이었다. 침묵 속에서야 비로소 들리는 것이 있었다. 어린 시절 품었던 꿈, 남몰래 적어두던 일기,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던 순수한 열정.

나는 조각들을 꺼내 불 속에 던졌다. 녹아내린 유리는 새로운 거울이 되었다.


-


이제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닦으며 선언한다.

“너는 이미 충분히 강하다.”

틀린 결정도, 넘어짐도, 후회도 내 이야기의 한 페이지일 뿐임을 받아들인다. 셀프 가스라이팅은 사라지지 않지만, 이제 나는 그 목소리를 반격할 언어를 가졌다.

“넌 날 모른다. 내가 나보다 날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


상처는 여전히 아프다.

그러나 그 아픔이 나를 옭아매는 사슬이 아니라, 성장의 씨앗임을 안다. 내 안의 적을 친구로 삼는 법을 배웠다. “넌 실패할 거야”라는 경고는 “조심히 걸어”로, “넌 특별하지 않아”라는 비난은 “널 알아가는 중이야”로 재해석된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지만, 내 안의 파장을 바꾸니 소리가 달라졌다.


-


깨진 거울은 이제 창문이 되었다.

유리 조각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어둠을 가르는 아침, 나는 비로소 내 안에 서 있다.

셀프 가스라이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이제 나는 그 그림자를 밟고 일어설 줄 안다.




새벽은 여러분 편입니다.

일요일 연재
이전 06화폭풍우 한가운데서 피어나는 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