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한국을 왜 떠났냐고요?

캐나다 워홀러의 우당탕퉁탕 위니펙 이야기

by 위니 더 조이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 이태원에서 유명하다던 사주를 보는 집에 찾아갔다.


다리가 저리고 어깨가 결리는 나날이 계속되던 차였다. 기지개를 쭉 펴서 내 주변을 감싼 투명막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언제나 들끓었다. 사이즈가 작은 양말을 억지로 꿰어 신고, 남의 의자에 기우뚱하게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어서 답을 찾아야 했다.


사주가는 내 생년월일과 시간을 듣고 풀이를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역마살이 엄청나군요.”


역마살을 나타내는 글자가 나의 사주에 굉장히 많이 있다고, 안정적인 삶은 나를 불편하게 할 거라고 했다.


“당장 최대한 멀리 떠나세요. 그럼 잘 풀릴 거예요.”


사주를 보는 이유가 그러하듯, 나는 이 말 자체에서 위로를 얻었다. 나는 이런 운명이구나, 내가 끈기가 없거나 참을성이 없어서 괴로운 게 아니었어.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이걸 알았으니 됐어.

그로부터 한 달 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나를 찾아왔다.


평소 눈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쉽게 눈이 피로해 침침해지고, 심하면 두통까지 이어졌다. 모니터를 하루종일 보면서 글자를 교정하고 티끌 같은 잡티를 찾아내는 직업이니 눈의 피로는 당연했다. 시력 역시 급속도로 낮아졌는데 일의 특성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위기 상황으로 연말에 프로젝트를 몰아서 마무리하고, 회사에 워케이션을 신청해 제주도로 갔다. 제주 바다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차였다. 비록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어도, 늦어진 일정에 뒤로 밀려버린 다른 작업들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황에서 그 어떤 의욕도 상실된 상태였다.

그때 전화를 받았다. 병원으로부터. 일주일 전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 때문이었다.

“녹내장이 의심되는데, 안과에 가서 정밀검사 바랍니다.”


나는 찾을 수 있는 모든 인터넷 페이지는 다 뒤져 녹내장이 뭔지 찾아 보았다. 찾아볼수록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하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시야가 점차 좁아져 실명할 수도 있는 질환, 완치가 어렵고 조기 발견이 중요, 20대에 발병하는 건 매우 드문 노화 질환.


이 모든 내용들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의문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내 삶의 방향이 이게 맞을까? 나는 앞으로 보고 싶은 것도, 쓰고 싶은 글도 많은데. 회사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내 눈을 혹사시키는 게 맞을까?


서울에 와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결국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시야 결손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안압 수치도 정상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오른쪽 눈은 시야의 약 40%를 잃어 60%만 기능하고 있었고, 왼쪽 눈은 약 15%를 잃어 85%만 기능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두 눈의 시야결손 부분이 각기 달라, 두 눈이 서로 안 보이는 시야를 보완하고 있었다. 그래서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그게 무엇 때문인지 분명히 인지하지 못한 것이었다.


평생 약을 넣어 안압을 조절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지만, 약을 꾸준히 넣고 관리를 한다면 진행을 멈출 수도 있다고 했다.


병가를 신청하고 두 다리를 뻗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시신경은 되살릴 수 없고, 이미 중증의 녹내장 환자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열심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내 노력과 무관하게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혔던 일과 사람들이 떠올랐고 원망의 마음도 피어났다.

내 기분은 저 아래, 땅을 파고 아래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그 안에 나를 자주 묻었다. 여행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며 기분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 나는 다시 구덩이 아래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녹내장의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분명 눈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일에 주요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눈을 더욱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눈이 건강할 때 더 많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떠나기로.

캐나다 행을 결정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는 만큼 우리나라와 달리 ‘워라밸’이라는 말이 통하는 노동시장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공기가 좋고 대자연이 어우러진 나라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여러 계급 구조나 여러 차별 등에서 자유로운 나라라면, 자유로운 성향을 가진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숨을 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왕이면 영주권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대도시인 토론토나 벤쿠버는 제외였다. 캘거리도 영주권 따기가 어려운 도시라고 하니 패스. 캐나다의 가운데, 매니토바 주의 주도인 위니펙. 이름도 귀여운 이 도시는 영주권 따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곳이라고 했다. 총 2년이면 영주권 따기에 충분하다는 후기를 보았다.


어차피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 생활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위니펙을 결정했고, 6월 비행기에 올랐다. 1년 치 약을 캐리어에 가득 싣고서.


그로부터 2년 5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사주가의 말에 의문을 표하고 있는 중이다.


잘 풀린다고요? 뭐가요?


자, 이제부터 나의 엉망진창 아웅다웅 우당탕퉁탕 위니펙 삶에 대해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