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위니펙은 어떤 도시인가요?

캐나다 워홀러의 우당탕퉁탕 위니펙 이야기

by 위니 더 조이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면, 위니펙을 대한민국의 남양주에 비유를 하곤 한다. 남양주에 가본 적은 없지만, 왜 그렇게 비유했는지는 잘 알 것 같다.


있을 건 다 있지만, 없는 건 또 없는 도시. 매니토바의 주도인 위니펙. 영주권을 따기 위해 모이는 곳이자, 영주권을 받자마자 떠나는 도시. 겨울이 춥고 길어 ‘윈터펙’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도시.

전에 위니펙에서 나고 자란 캐나다 친구가 이야기 해 주기를, 그 옛날 위니펙은 대륙의 심장(Heart of the Continent)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동부와 서부를 연결해 주는 철도 교통의 요지였고, 그렇기에 무역과 제조업이 번성했고 금융 중심지 역할도 했다. 하지만 항공 운송의 발달, 파나마 운하의 개통 등으로 기차 이용은 줄어들었다. 그래서 점점 전략적 중요성이 감소해 성장이 멈춘 느린 도시가 되었다.


처음 위니펙에 와 에어비앤비에 머물면서 은행 및 서류 업무를 보러 돌아다녔을 때 다운타운을 걸으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다운타운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비틀거리며 걷거나 마약에 취해 경직된 자세로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사람들을 한 블록마다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버스 정류장에서는 노숙자들이 한가득이었다.


위니펙의 다운타운과 다운타운을 기준으로 위쪽의 노스 앤드(NORTH END), 일부 웨스트 앤드(WEST END)지역은 위험하기로 악명이 높다. 일부 연구에서는 위니펙이 캐나다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꼽기도 한다. 3000명 남짓의 한국인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남쪽에 산다. 다운타운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극히 드물다.


나는 지금껏 위니펙에 살면서 3번의 이사를 했는데 모두 다운타운 지역이었다. 차가 없는 나에게, 버스 이용이 편한 다운타운에 사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게다가 악명이 높은 탓인지 타 지역에 비해 렌트비가 저렴했다. (집값이 싼 다운타운은, 전 세계에서 위니펙이 유일할 것이다.) 일했던 한식당도 다운타운에서 타는 버스로 한 번에 가 교통이 편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호텔도 다운타운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를 위니펙 ‘다운타우너’라고 부른다. 그만큼 다운타운에 빠삭해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통과해 가는 스카이 워크 길, 그 안의 푸트코트, 한국 책을 읽을 수 있는 밀레니엄 도서관, 마차 라떼가 맛있는 세련된 카페나 닭 모래집을 파는 마켓을 모두 꿰고 있다. 안전을 위해 밤에는 외출을 절대 하지 않지만,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안전한 길이 어딘지도 다 알고 있다. 다행히도 정부의 노력으로 노숙자나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거리에서 줄고 있다.


느린 도시답게 위니펙은 무척 조용하다. 쇼핑몰과 코스트코, 이케아 등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긴 하다. 하지만 작년에서야 자라 브랜드가 위니펙에 입점했고, 유니클로나 무인양품 등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가 없는 만큼 쇼핑하기 최적의 도시는 아니다. 재작년, 크리스피 도넛이 처음 위니펙에 문을 열었을 때, 위니펙 모든 사람이 가서 줄을 설 정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화려한 도시 생활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은 위니펙을 심심한 도시라고 여긴달까.


하지만 관광할 곳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는 아시니보인 파크, 분위기 좋은 더 폴스 마켓, 10달러 지폐에도 프린트 되어 있는 인권 박물관과 내가 지금까지 봤던 자연사 박물관 중 최고라고 뽑는 매니토바 박물관, 옛 위니펙이 번영했던 시절 모습을 간직한 익스체인지 디스트릭 등 충분히 즐길만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여름과 가을에는 재즈 축제, 음악 축제 등 여러 행사들이 열린다.


위니펙의 단점 중 하나는 겨울이 몹시 길고 춥다는 것이다. 방수가 되는 겨울 패딩에 털 부츠까지 신어 줘야 한다. 눈이 10월부터 내리기 시작해 할로윈은 두꺼운 패딩 그리고 무릎까지 쌓인 눈과 함께 한다. 한겨울에는 체감 온도가 마이너스 30도에 육박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들숨에 코털이 얼어붙고 날숨에 얼은 코털이 녹는 것을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면 교통은 모두 정체되고 만다. 버스는 1시간 정도 지연되고, 일에 늦지 않으려면 눈 때문에 이용료가 오른 우버를 울면서 타야 한다.


5월까지 위니펙은 눈에 덮여 새하얀 풍경을 자랑하다가, 5월 말에서야 날이 아주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혹독한 겨울을 보상이라도 하듯, 캐나다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해가 길고, 건조하고 신선한 바람이 부는 쾌적한 여름 날씨가 펼쳐진다.


이런 위니펙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조건이었다. 음주가무나 밤 문화를 즐기는 편이 아닌 나로서, 합법적 집순이가 되기에 탁월했다. 내 삶은 단순해질 수 있었다. 겨울에는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글을 썼고, 여름에는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킥보드를 타며 날씨를 만끽했다. 차가 있는 친구들과 함께 근교 도시를 탐험하거나 호수에 수영을 하러 가거나 공원에 누워 수다를 떨기도 했다.


나는 위니펙에서 깨달았다. 삶은 단순할수록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삶보다는 소도시에서의 삶이 나에게 맞다는 걸.


대도시에서의 삶은, 외부의 요인에 내가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해야 하고 봐야하고 느껴야 하는 양이 많아 조급해지기도 하고, 내 에너지가 외부로 향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소도시에서의 삶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때문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또는 나란 사람은 누구인가를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때문에 위니펙에서의 삶은 온전히 나의 시간일 수 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더 아끼고 보살피고 집중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여유’도 대도시와는 큰 차이가 있는 듯하다. Friendly Manitoba 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것처럼, 위니펙 사람들은 타인을 좀 더 수용하는 넓은 마음을 갖고 있다. 가령 내가 영어를 잘 못해도 이해하고 들어주는 인내심 같은 것, 길은 내가 막았는데도 나에게 먼저 ‘Sorry’라고 말하는 것, 눈이 마주치면 일단 미소를 짓는 것,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보행자를 끝까지 기다려 주는 것 등.


지난달에 토론토 여행을 다녀왔는데, 엄청난 대도시에 한번 놀라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두 번 놀라고 시끄럽고 정신없음에 세 번 놀랐다. 당연히 대도시가 주는 다양한 즐길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사람들이 주는 활기찬 에너지가 좋았다.


하지만 이미 난 뼛속까지 위니페거가 되어 버렸나보다. 차도 많고 심지어 자전거도 많고 사람은 더 많고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소음도 귀에 꽉 들어찼다. 위니펙, 내 조용하고 삭막하지만 이상하게 친근한 내 홈 타운이 내내 그리웠더랬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려 위니펙에 들어섰을 때, 토론토와는 완전히 다른 이 고요한 도시에 다시 발을 디뎠을 때 안도하고 안심했고 정말 기뻤더랬다.


위니펙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무조건 듣는 질문이 있다.


“영주권 따면 어디로 가고 싶어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위니펙에서 영주권을 따면 벤쿠버, 토론토, 캘거리로 이주한다. 대도시가 주는 경제, 문화 그리고 직업의 기회를 누리기 위해. 하지만 나는 다르다.


“저는 위니펙이 좋아요. 여기서 평생 살고 싶어요.”


나는 캐나다에서의 삶을 위니펙에서 시작해 위니펙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이곳에 단단히 뿌리를 내릴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듣고 있나, 캐나다 이민청? 나 위니펙 정말 사랑한다니까?



위니펙 위치.png 위니펙 위치 (붉은 화살표)_구글 지도 캡처


다운타운 축제.jpg 위니펙 다운타운 축제 프로그램



빛 축제.jpg 모두가 흥겹게 춤을 추는, 재즈 패스티벌


음악 축제.jpg 전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악 패스티벌


쿨 스트릿 위니펙.jpg 다운타운의 쿨 스트릿


자연 현상.jpg 매우 추운 날, 위니펙에서 볼 수 있는 썬도그 현상 (sun dog)


야생 토끼.jpg 위니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야생 토끼


언덕에서 썰매.jpg 언덕에서 썰매 타고 미끄러져 데굴데굴 구른 후 괜찮다고 손 흔드는 중


청설모의 발자국.jpg 발 시린 청설모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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