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위니펙에서 아픈 적 있나요?

캐나다 워홀러의 우당탕퉁탕 위니펙 이야기

by 위니 더 조이

세상이 빙빙 도는 어지럼증 때문에 죽다 살아난 적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위니펙도 돌고 나도 돌고 눈알도 도는.

그 시작은 어느 일요일, 한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리는데 강렬한 어지럼증에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 주 금요일이 발렌타이데이여서 유난히 손님이 많았고, 그 기세가 일요일까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때 시작된 어지럼증은 그 이후 3개월 간 나를 괴롭히게 된다. 회복은 아주 더뎌서 몇 주 동안 유령처럼 미끄러지듯 걸어 다녀야 하고 갑작스러운 고개 변화나 자세 변화를 조심해야 했다.


발병 초반 일주일을 쉬었다. 하지만 인원 한 명이 빠지면 누군가 대신 근무를 해야 하는 키친 특성상,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그후 어떻게든 꾸역꾸역 일을 하긴 했다.

일할 때가 정말 고역이었다. 양파를 썰다가 핑 돌고, 김밥을 말다가도 시야가 뒤틀렸다. 잠시 키친 뒤쪽의 공간으로 가서 의자를 세 개 붙여 놓고 누워 있었다. 나아진 것 같으면 다시 와서 웍을 돌리고 채소를 손질했다. 그러다 다시 가서 누워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고…….


단순히 어지러운 게 다가 아니었다. 어지럼증으로 인한 속 메슥거림, 가슴 답답함, 심장 두근거림(긴장감), 남의 안경을 쓴 것처럼 시야가 뒤틀려 보이는 증상은 나를 하루 16시간 이상 자게 만들었다. 몸이 안 좋으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일할 때가 아니면 내내 누워 있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도 불가였다. 말을 할 때도 온몸을 쥐어짜는 느낌이랄까. 목소리도 모기 소리만큼 아주 작아졌다.


캐나다에서는 대한민국처럼 누구나 아프면 갈 수 있는 안과, 이비인후과, 내과 등이 없다. 나를 평생 케어 하는 주치의 개념인 패밀리 닥터가 있고, 증상이 심각한 경우 스페셜 닥터(전문의)를 연결해 준다. 서비스는 무료지만 약 처방은 별개의 비용이 든다.


나는 패밀리 닥터를 찾아가 내 증상을 설명했다. 패밀리 닥터는 어렸을 적에도 이런 일이 있었냐고, 귀에서 소리도 들리냐고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러고는 나의 심장 소리와 폐 소리도 들어보고, 손가락을 쳐다보며 눈 시선을 옮게 시키고, 다른 쪽 다리를 들어 다른 쪽 다리를 쓸어내리게 하는 등 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뇌와 관련된 위험한 증상은 아닌 것 같네. 이석증이나 전정신경염이 의심돼. 그래도 머리가 갑자기 너무 아프면 꼭 응급실에 가 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하니까 일단 물도 하루에 2리터 이상은 마시고. 혹시 헤모글로빈 문제일지도 모르니까 다음에 오기 전에 꼭 피검사 받아서 오고. 그리고 이 약을 처방해 줄게.”


나는 패밀리 닥터와 2주 뒤에 다시 약속을 잡았다. (2주 뒤라니. 한국에서는 정말 상상하기도 힘든 기간 아닌가?) 처방전을 들고 클리닉 밖을 나서니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맞으며 비틀비틀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약을 받기 위해 그 약을 구비해 둔 약국을 찾아야 했다. 클리닉 안에 있는 약국에는 그 약이 다 떨어졌대서 추천해 준 약국에 전화를 해 봤다. 하지만 거긴 전화를 아예 안 받았다. 다행히 캐구가 집 근처의 약국에 전화해 그 약이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그 약국으로 향했다. 약 받으러 이렇게까지 하는 것도 좀 웃겼다. 하지만 여기는 어디? 캐나다다. 그러려니 해야지…….

그렇게 노랗고 둥근 약통에 담긴 베타히스틴 63알을 받았다. 미드에서 보던 약통과 똑같이 생겼다. 가격은 한화로 약 이만삼천 원. 성능을 검색해 보니 전정기능(균형감각) 장애를 완화하고 어지러움을 줄이는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 약은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쉬이 낫지 않아 이주 뒤 한 번 더 처방을 받아야 했다.


서러웠다. 타지에서 몸이 안 좋으니 서러움이 두 배, 아니 세 배였다. 온종일 짜증과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와서 나를 괴롭혔다. 자리에 누워서도 천장을 바라보며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좌절했다.


‘아, 어지러. 왜 이렇게 눈앞이 흔들려 보이는 거야. 앞으로 계속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까지 기력이 없는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라’ 라고 아파도 학교에 보냈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건강관리도 실력이지’와 같은, 사회의 목소리 같은 것도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몇 십 년간 살며 ‘아프면 네 잘못이다’를 무의식적으로 계속 학습한 모양이었다. 다 내 잘못인 거 같아 괴로웠다. 몸이 아픈데 마음까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캐구는 자책감에 허우적거리는 내게 이렇게 위로해 주었다.


“몸이 안 좋은 건 그냥 운이 나빠서야.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어. 왜 그랬는지 따질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어.”


계속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괜찮은가 싶다가도 바로 뒤통수를 휘갈기는 어지럼증이 찾아와 까무룩 잠에 들어야 했다. 잠시 전자레인지를 닦으려고 머리를 숙였을 뿐인데, 그냥 일기를 좀 쓰고 싶어서 몇 자 찌끄렸을 뿐인데, 어지럼증이 밀려오면 컨디션은 바닥으로 내려쳤다. 때문에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캐구는 내게 전정신경염에 좋은 재활운동 영상을 보내줬다. 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초점을 맞추거나, 한 점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흔들거나 한쪽 다리를 들고 눈을 감고 있는 운동이었다. 나는 영상을 따라 한쪽 다리를 들고 서서 머리를 마구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정말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정말 아주 미세하게, 몸이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차도를 보이는 게 어디냐 싶었다. 엠마랑 앤하오는 몸이 아프니 핫팟을 먹어야 한다며 집에 재료를 한아름 사와서 끓여주기도 했다.


점차 증상이 감소해도 어지럼증 자체가 쉬이 낫질 않자, 패밀리 닥터는 이비인후과 전문의, 스페셜 닥터에게 검사를 잡아 주었다. 하지만 그건 무려 4개월 뒤였고, 이미 어지럼증이 다 나아버렸을 때였다. 이비인후과 닥터는 귀에는 이상이 없고 아마 귀 평행기관에 염증이나 바이러스 감염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을 내놓았다.


이번 기회로 타지에서 아프면 서러운데, 캐나다에서 아프면 특히 더 서럽다는 교훈을 얻었다. 전에 이민 센터에서 만난 캐나다인 영어 선생님은 캐나다 의료 시스템에 대해 굉장히 만족하던데, 도무지 왜 무엇에 만족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당장 목숨에 지장이 있는 증상(암이나 큰 수술)이 아닌 이상 캐나다 의료는 지극히 느리다. 차 사고가 있었던 한 한국인 친구 부부는 응급실에서 무려 10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누군가는 손이 크게 배어 응급실에 갔다가 기다림 끝에 피가 응고되어 그냥 나왔다고 한다. 나 역시 다 낫고서야 스페셜 닥터를 만나지 않았는가.


캐나다에서 아프면 기다림과 서러움의 연속이다. 그러니 웬만해선 아프면 안 된다. 건강해야 한다. 물론 그게 내 맘대로 되겠냐만은…….


당시 썼던 일기.jpg 당시 썼던 일기, 정말 괴로웠다


진찰 기다리는 중.jpg 예약을 했음에도 클리닉에서는 한시간씩 기다리곤 했다


진찰실 모습 2.jpg 진찰실의 진찰대 모습


진찰실 전경.jpg 진찰실에서 의사선생님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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