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설렘 아닌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시작.
파리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오랜만에 가는 유럽이라 그런가, 나이를 더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오랫동안 스트레스 상황에 있었어서 그럴까. 겁이 더 많아졌다. 파리의 소매치기도 너무 무섭고, 모두가 내 여권과 돈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됐다. 언젠가부터 하지 않았던 복대도 다시 챙겨 오고, 전날 다이소에 가서 자물쇠도 여러 개 샀다. 면세점에서 '도난 방지 가방'이라고 방수는 물론 방검(!)이 되고 클립이 있어 내 짐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가방을 두 개나 샀다. 나와 함께 미국을 여러 번 오갔던 낡은 가방은 공항의 쓰레기통에 고이 보내드리고 새로운 가방에 노트북, 헤드폰, 카메라 등등.. 나의 모든 고가 전자장비를 옮겨 담았다. 그러고도 마음이 무언가 불안했다.
'으... 나 괜히 간다고 한 거 아냐?'
'다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그 걱정이 마음이 불편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비행기 안에서 잠은 아주 잘 잤다. 후두염 약이 독해서 잠이 잘 온다. 아니면 혹은 멀미였을까. 자면서도, 오는 내내 여행을 오기로 한 것을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반복했다. ‘가서 소매치기를 만나면 어떡하지’ ‘여권을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들이 자꾸 설렘을 이겼다. 내려서도 복대를 자고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긴장을 하면서 다녔다. ‘누가 내 가방을 건들지는 않을지’ 온갖 걱정들로 가득했다.
이런 곳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유럽에 다시 오고 싶었던 걸까?
스스로도 의문이다.
다행히 첫 번째 집주인은 친절한 분인가 보다. 우버를 타는지, 지하철을 타는지 물어보고는 어떻게 어떻게 환승해서 오면 그나마 좀 덜 고생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구글 지도에서 나오는 길은 다르지만, 현지인의 경험자의 말을 믿었다. 다행히 그 믿음은 보답을 받아, 공항에서 출발하는 RER도 샤틀레 역에서도 14호선에서도 모두 에스컬레이터를 만났다. 그리고 6호선 라인의 어느 역에 도착했다.
'하...'
많이 높은 역은 아니었음에도, 22킬로에 달하는 짐은 혼자 옮기기가 버겁다. 이게 정말 놀라운 부분이다. 아니 분명 내가 미국에서 올 때마다 23킬로 꽉 채워서 두 개, 기내용 캐리어 1개, 그리고 아이패드 2개, 맥북 2개, 헤드셋, 풀프레임 카메라가 든 백팩 1개 이렇게 들고 다니니까 그래도 23킬로가 살짝 안 되는 짐과 백팩 하나는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은 그렇게 미국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아빠랑 남동생이 짐을 공항까지 다 날라줬고, 미국에서도 누군가 데리러 오거나 바로 우버를 탔다는 것이다. (바보)
여하튼, 22킬로의 짐은 더럽게 무겁다. 그리고 캐리어도 제일 큰 캐리어라 한국 여성 평균신장보다 아주 살짝 큰 내가 양손으로 들어도 계단에선 '쿵, 쿵, 쿵, 쿵' 난리가 난다. 아, 이러다가 캐리어 바퀴 고장 나면 큰일 나는데-라는 생각이 스쳐갈 무렵, 한 아시안계 남자분이 '도와줄까?'라고 물어봤다. 정말 무거워서 고민이 됐다. '도와달라고 할까? 말까? 아니, 소매치기면 어떡해. 돈 달라고 하면 어떡해.' 이 캐리어 무거워서 남자분이라도 뭐 얼마나 빨리 달렸겠냐마는 온갖 걱정에 괜찮다고 했다. 그 남자분이 보시기엔 내가 안 괜찮았는지 "Are you sure? Are you good?"이라고 다시 한번 물어보신다. 안 괜찮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 남자분을 보내고 다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때, 이번엔 한 여자분이 오셔서 물어봤다. 아무래도 내가 힘들어 보였 나보다. 여자분이라 심리적 바가 좀 내려가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지쳤기에 그럤을까. 이번엔 도와달라고 했다. Thank God. 도와주셔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쯤 캐리어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사히 내려와 구글맵을 켜 집을 찾아가 본다.
'여기쯤인 것 같은데..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한 한국인 여자분이 말을 거셨다.
"혹시..."
"아... 혹시!"
첫 4일을 보내기로 한, 집주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