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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한 달 살기 짐 싸기 현실: 벌써 무게 22kg?

편도 티켓으로 떠난 유럽 한 달 살기 준비기

by 지혜

편도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편도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 미국 미시간 방구석에 갇혀있다시피 할 때, 세계를 누비며 한 달 살기를 하던 유튜버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때 생긴 꿈이다. 나도 지금은 하는 일도 없으니 훌쩍 여행을 떠나볼 수 있을 때다.


아니, 그런데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니 일이 들어온다. 전에 초록을 제출했던 학술지 특별호에 초대를 받았고, 콜로퀴움 발표를 해달라는 초대도 왔다.


‘그래도 별 수 없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 고려해서 미루다 보면 절대 여행 못 가. 일단 저질러. 그리고 어차피 한 달 살기니 노트북을 들고 가면 되지. (노트북은 아주 무겁고 신경 쓰이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했다.)



친한 친구들한테 "나 편도로 비행기 끊었어"라고 통보를 했다. 다들 하나같이 "안 오는 거 아니지?"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내가 여행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보다. 사실 내 마음속으로는 어느 정도의 데드라인과 어느 정도의 예산이 잡혀있지만, 그건 아직 사람들에겐 말하지 않고 "모르지-"라고 대답을 했다.


여행을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다시는 안 올 사람도 아니면서, 미국 나갈 때처럼 사람들을 만났다. 친한 동생들도 만나고, 제주도도 다녀오고 (여행을 떠날 건데, 제주도는 웬 말이냐 물으면: 제주도는 내게 제3의 고향쯤 되는 곳이다). 유학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세미나와 네트워킹 모임도 진행하고 동기들도 만나고 커피챗도 했다.


이 일정을 몰아서 하니 결국 여행 전에 탈이 났다.


스트레스가 됐는지 역류성 식도염과 후두염이 와서 계속 콜록거렸다. 버티고 버티다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이비인후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약 3주 치와 제산제를 두 박스를 처방해 주셨다.


'와 짐이네?'


사실 편도로 여행을 떠나기로하니, 짐을 싸는 것부터 문제였다. 도대체 뭘 가져가야 하지? 파리에서 지낸 후에 어디로 갈지는 나도 모르니 무슨 옷을 가져가야 할지 난감했다.

그리고 4월. 이, 겨울과 여름 사이의 계절에 무기한 여행을 떠나면 겨울옷도 봄옷도 여름옷도 필요한 거 아닌가? 옷들을 주섬주섬 넣었다.


거기다가 내가 2주 정도 장기로 빌린 숙소에는 헤어드라이어기가 없단다. 흠, 그러면 에어랩도 넣어. 수건도 없겠지.. 수건도 넣어.


“언니 한 달 살기 하면 파리에서 수영해야지”라는 친구의 말에 수영복 짐도 또 넣었다. 혹시 스노클링을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래시가드도 넣고, 샌들도 넣어. 혹시 팬시한 식당에 한 번 가게 될 수도 있으니 적당한 구두도 하나 넣어.


.... 어라...? 짐이 벌써 22킬로다.


돌아올 때 과연 내가 짐이 줄까...? 보통은 더 늘어서 오지 않나?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라도 돌이켰으면 좋았을 걸. 에어랩이라도, 구두라도 빼지 그랬어.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약 덩어리를 보며 엄마가 "너 여행 가면 스트레스 안 받아서 안 아플걸?"이라고 말하며 약이라도 좀 빼라고 했다. 역류성 식도염은 종종 걸리지만 이렇게 심한 역류성 후두염은 처음이라 나는 좀 걱정이 됐다. 그래서 절반만 덜어냈는데, 더 덜어낼걸. 지금은 후회 중이다.


그렇게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공항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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