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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날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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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애진 Oct 08. 2018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 밤

더 이상 밤은 무섭지 않지만







처음으로 혼자 잠에서 깼던 날이 기억나. 원래는 늘 엄마랑 같이 안방에서 잠을 잤거든. 그런데 그날은 눈을 떠보니까, 익숙한 배경이 아닌 거야. 어리둥절했어. 뭐지? 내가 왜 여기 있지? 낯설었던 그 아침의 배경은 안방 옆 작은 방이었어. 책상 위에 조그마한 창문이 있는 방이었는데, 난 해가 지면 그 창문 너머로 무언가 무서운 게 튀어나올까봐 무서웠어. 방불마저 꺼지고, 엄마가 보고 있는 텔레비전만이 희끄무레하게 물건들의 윤곽을 비출 땐, 그래서 작은 방을 쳐다보지도 않았었지. 양치질을 하고 안방으로 가로질러 들어갈 때마다 눈을 꼭 감고 뛰어들어갈 정도로, 난 어두운 그 창문을 무서워했어.


그런데 그날은, 창문 밖이 참 밝았어. 유독 밝았어. 뿌듯함 때문이었나봐. 엄청 뿌듯했거든. 내가 혼자 잠을 잤어! 나 혼자 자는 거 되게 무서워하는데, 어두운 것도 진짜 싫어하는데. 여기서 혼자 잤네! 그렇지만 생각해봐. 그게 정말 내가 혼자 잠을 잔 거니? 어리둥절했다고 했잖아. 깨자마자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스스로 되물었다고 했잖아. 그냥 내가 잠들었을 때 엄마가 날 작은 방으로 옮겨놓은 거야. 이유는 기억나지 않아. 중요하지 않아. 아무튼, 그게 정말 내가 혼자 잠을 잔 거냐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혼자 잠을 청하러 작은 방에 들어간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그냥 하루 뿌듯해했고, 그게 다였어. 난 여전히 밤마다 그 창문 너머에 벡터맨에서 봤던 괴물이 있진 않을까 상상했고, 너무 무서웠으니까. 요즘은 어떠냐고? 내가 나이가 몇인데, 혼자 못 잘 리가 있겠어. 괴물이 있을 거라 믿지도 않고, 사람들 말처럼 사람이 더 무섭지,  괴물이 더 무섭겠어?


그런데, 있잖아. 달라지지 않은 채로 남은 느낌은 있어. 


뭐지? 내가 왜 여기 있지?


내가 모르는 동안 그냥 누군가가 날 지금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 같아.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바란 것도 아닌데. 그래서 난 괴물보다도, 이 느낌이 너무 두려워. 속절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넘어가는 달력이. 엑셀이 눌린 계기판처럼 바뀌어가는 숫자들이.


나 언제쯤이면 내가 선택한 하루를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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