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시선에 선명히 걸리는 것은
"<뷰티인사이드>? 그 영화 알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상업 영화 아니겠냐고. 매일 자고 일어나면 남자 얼굴이 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결국 남자를 향하는 감정을 인정해?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가증스럽고 메스껍구만, 참.
내가 사랑을 논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말야, <뷰티>라는 저 키치한 단어부터 제목에서 서걱서걱 잘라내어버릴 거라고. 대신 어떤 게 좋겠어? 봐, 나는 곧장 훨씬 발칙한 게 떠오르잖아. 뷰티? 지랄 쌈싸먹는 소리 하네. 제목은 <데드인사이드>여야만 해.
누구나 곪아 터진 속이 있어. 그렇다고 한 부분만 계속해서 썩어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 양자역학을 연구한다는 과학자들이 떠들어대는 개소리 들어봤어? 그 미친놈들 말로는 전자가 동시에 여기 있다가 저기 있다가 한다던데. 아무튼간에 속병도 매한가지야. 그건 날마다 바뀌는 거야. 어떤 날은 잔뜩 칼집이 나고 쥐어뜯긴 자존감이 생선 썩은내를 폴폴 풍기겠지. 누런 고름마냥 자격지심이 흘러나와서 제멋대로 엉겨붙을 수도 있어. 다 굳었다 생각하고 손톱으로 뜯어냈다가는 피가 철철 나는 그런 거 알지? 다음 날엔 또 출처를 알 수 없는 오만함이 불쑥 심장을 쥐고 자신감이라는 그럴 듯한 허우대로 위장해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려 들겠지. 또 어느 날은 갑자기 해묵은 자기혐오가 배꼽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면서 뇌 여기저기를 들쑤실지도 몰라. 그 모든 속병들을 스크린 위에서 낱낱이 해부하는 거야. 그리곤 묻는 거야. 이래도 얘를 사랑해?
아, 하지만 이래도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그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거나, 들썩이는 왼쪽 입가에서 혹시나 하는 희망이 새어나올 것만 같은 마지막 애처로움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너무 진부하잖아. 아니다. 차라리 묻지도 않는 게 낫겠어.
외형이 변하더라도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영원불멸한 너의 내면을 사랑하겠다는 고백은 신물이 나. 몸뚱이를 이루는 세포들은 하루하루 빠르게 죽어버리고 새것들로 대체된다는 걸 생각하면 오늘 내 몸뚱이와 내일 내 몸뚱이가 다르단 건 새로울 것도 없어. 차라리 하루는 못돼 빠진 요로결석 덩어리 같은, 또 하루는 삶고 또 삶아서 축 늘어지고 낡은 행주 같은 네 영혼의 변덕을 안다고, 알지만, 괜찮다고. 같이 있자고. 그게 사랑일 거야. 안 그래?"
"그렇죠, 정순덕 님."
기나긴 웅변을 듣는 동안 의사는 고개를 조악거렸다. 볕이 잘 드는 29병동 301호에서 생활하는 정순덕 씨의 차트에는 진단명이 단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제1형 양극성 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