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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애진 Dec 03. 2022

살아생전에는 할 수 없는 일

살아서 해야 하는 일







살아생전에는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얘기해보자.





잠들기 전 정신을 쏟아볼 만한 것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 기억나는 일들을 전부 복기하기, 평화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양들의 마릿수를 늘려가며 세기, 개연성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날숨과 들숨에 집중하기, 싱크대 바닥에 이따금씩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들으며 수도꼭지를 다시 잠그러 일어나야만 하는지 갈등하기, 별안간 과거의 내 흠을 마주하며 두 주먹을 꽉 쥐기, 내일 첫 끼 메뉴 정하기, 통장잔고와 몇 안 되는 주식, 그리고 묶여 있는 보증금까지 다 영끌한다면 내 수중에 얼마나 있을지 계산하기, 계산 결과를 기반으로 퇴사각 재기, 이내 포기하기, 기타 등등.





이외에도 미처 다 적지 못한 여러 일들 중 단연코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 본격적으로 잠들기 위해 자세를 고쳐 잡았을 때, 눈을 스르르 감았을 때, 이제는 잠들 수 있다는 확신이 고개를 들 때, 그 확신이 스타팅블록을 치고 나오자마자 넘어야 할 첫 번째 허들, 바로 눈코입에서 완전히 표정을 지우는 일이다. 눈썹과 눈썹 사이,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 위턱과 아래턱 사이 어느 부위든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나는 아직 잠에 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표정근들은 의식이라는 끄나풀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법을 모르는 모양이다. 밤마다 청하는 잠이 어쩌면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는 말을 빌려본다면, 얼굴에서 완전히 표정을 지워내는 건 죽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얼굴에 표정이 남아 있는 , 표정은  주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매개체. 나는 주변 사람의 임종을 지켜본 경험이 없다. 다만, 내 햄스터가 떠나는 순간을 함께 한 적은 있다. 참 지하철을 타고 간 끝에 도착한 잠실역 근처에서 는 그 애를 처음 났다. 입양을 보내주 분의 손에서 꼬물대던 애를 조심스레 늘색 동장 안으로 내려놓은 그날, 쓸데없는 지출을 죽기보다 싫어하던 나는 망설임 없이 택시를 고, 차가 흔들리는 것도 모르고 가만히 웅크려 자는 습을 기특해했다. 그리곤 2년 4개월을 함께 지냈다.





종종 눈병을 앓던 그 애는 마지막에도 비슷한 병치레를 하다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 일주일이 넘는 긴 시간 동안(햄스터의 생이 얼마나 짧은지를 생각하면 일주일이 얼마나 잔인하게 긴 시간인지) 앓는 내 햄스터를 들여다보며 이놈이 가는 순간에 내가 곁에 있어줄 순 있을까, 알아봐 줄 순 있을까, 늦지 않은 때 인사해줄 순 있을까, 고민했었다. 사람은 겪어 보지 못한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할 때가 가장 두려우니까.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나는 마지막 날 밤 내 햄스터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강렬하게 알아보았다. 그 애는 날숨과 함께 표정을 내려놓았다. 나는 잘 가라며 떨리는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는 일밖엔 할 수 없었다.





살아생전에는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다. 그 어떤 발버둥으로도 떨칠 수 없는 그리움들을 쌓아가는 것. 그러다 나도 언젠가 마지막 표정을 놓아버리는 날, 모든 그리움도 함께 갈무리되는 것. 알면서도 그날이 오기만을 보채지 않고 견디는 것. 그러니 살아간다는 것은 조금씩 강인해지는 것인지도. 하지만 모두들 강인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갑자기 돌부리에 발이 걸린 것처럼 그리움에 마음이 걸릴 때면 막막함에 눈물짓기 마련이니까. 그럴 땐 그냥 우는 표정을 해야 한다. 그럼 내 햄스터는 아니더라도 다른 그 누군가가 내 표정을 읽어줄 테니. 그럼 다시 살아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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