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이 이어진 페이지

기록이 아닌 발걸음으로 이어진 시간

by SH

토요일 오후,

날씨는 생각보다 맑았다.

구름이 옅게 흩어져 있었고,

바람은 차갑지 않았다.


공원 입구에서 서윤은

잠시 멈춰 섰다.

멀리서 지훈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워질수록

그의 발걸음이 서윤의 리듬과 맞아떨어졌다.


둘은 별다른 인사 없이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는 낙엽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발끝에 밟힐 때마다

얇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두 사람의 침묵을

조용히 메워주었다.


서윤은 가끔 고개를 들어

나무 가지를 바라보았다.

새순이 아직 나오지 않은 가지들 위로

빛이 부드럽게 번지고 있었다.


지훈도 같은 쪽을 보고 있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서윤과 지훈의 시야가

겹치는 듯했다.


잠시 후,

지훈이 손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 손이 살짝 흔들렸다가

다시 옆으로 놓였다.

서윤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걸음을 조금 늦췄다.

그러자 두 사람의 어깨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벤치 앞에 도착했을 때,

지훈이 잠깐 멈춰 섰다.

그리고 서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그냥 걷자.

아무것도 쓰지 말고.”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 마디가

충분했다.


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노트 대신 발자국이,

문장 대신 바람이

오늘의 기록이 되었다.


기록이 없는 날에도

시간은 조용히

두 사람 사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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