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교차하는 기록들

오래 머물던 문장이, 다음 시간을 만든다

by SH

그날 받은 메모지를

서윤은 노트 맨 뒤에 끼워 두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 종이가 흘긋 보였다.


“기억이라는 건

잊으려 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일도 있다는 것.”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손끝이 조금 뜨거워졌다.

누군가의 마음이

종이 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기분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그 문장은 잊히지 않았다.

아니,

잊히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후 늦게,

서윤은 습관처럼 카페 문을 열었다.

창가 쪽은 햇빛이 기울며

테이블 위를 반쯤만 비추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편 의자가 살짝 당겨졌다.

지훈이었다.


둘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눴다.

말보다는 따뜻한 잔을 두 손에

감싸 쥐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잠깐의 침묵 끝에,

지훈이 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윤을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번 주말… 시간 괜찮아?

그 공원, 예전처럼 같이 걸을래?”


서윤은 잠시 지훈의 눈을 바라봤다.

확신보다는

살짝 망설이는 기색이 먼저 보였다.

그 망설임이

오히려 오래 기다린 말처럼 느껴졌다.


“응.”

그 한 단어로

이번 주말의 약속이 만들어졌다.


어떤 문장은

읽는 순간보다

그 후에 더 길게,

다음 시간을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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