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같은 자리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겹쳐지는 순간

by SH

퇴근길 저녁,

서윤은 지하철역 근처 작은 서점에 들렀다.

새로 나온 책을 훑어보다가

짧은 산문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책을 펼치자 종이 냄새가 은근하게 났다.


옆 코너에서

누군가가 책을 고르는 기척이 들렸다.

서윤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책, 너 예전에 좋아했지?”


지훈이었다.

그는 같은 책을 들고 있었다.

우연이라기보다,

늘 비슷한 취향 때문에

이곳에서 마주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서윤은 웃음을 삼키듯 작게 대답했다.

“응, 아직도 좋아.”


둘은 책을 나란히 들고 서서

몇 장을 넘겨보다가

별다른 말 없이 계산대로 향했다.


서점 밖,

늦은 저녁 바람이 조금 차가웠다.

지훈이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내일 저녁, 시간 괜찮아?

같이 저 책 조금 읽다가,

그냥 밥도 먹자.”


서윤은 눈을 들어

지훈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제안이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미뤄둔 말을

지금에서야 꺼낸 것처럼

조용히 마음에 내려앉았다.


“그래.”


짧은 대답으로 약속이 만들어졌다.

서점 불빛이 천천히 멀어졌다.


현실은,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 속에

이미 오래 준비된 순간을 숨겨두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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