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을 주는 사람? 영감을 주는 사람!
슈제리라이프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두루두루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슈제리라이프의 가장 큰 단점은 그 친구들 중 어느 누구와도 깊은 공감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죠.
그들은 제가 그들의 인생을 잘 이해하고 공감해준다고 좋아하는데 제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제 인생을 잘 이해하고 공감해준다고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저는 일찌감치 입시를 포기했습니다.
부모님께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말했지만 하는 척만 했고 몽상에 빠져 있다가 도서관과 서점에 틀어박히는 것만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고2가 되었을 때 댄스경연대회만 나가고 그 뒤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 드리고 춤을 추기 시작했고 결국은 그 뒤로 쭉 춤만 췄었죠. (불효자는 웁니다. ㅠㅠ)
학교에 저보다 책을 많이 읽은 동급생이 없었고,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춤을 잘 췄지만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는 춤 얘기를 할 수 없어서 답답하고, 춤을 같이 추는 친구들하고는 책 얘기를 할 수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종종 아버지를 쫓아다니며 조수 역할을 했던 목수일에 흥미를 느껴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친구들이 여행을 떠났을 때 저는 작은 목공공장에서 한달 동안 틀어 박혀 목공일을 배웠습니다.
한겨울 날씨에 새벽처럼 일어나서 드럼통에 불을 때워서 공장을 덥히고 일하다가 아침을 먹고, 일하다가 점심을 먹고, 일하다가 참을 먹고, 일하다가 저녁을 먹고 일하다가 퇴근하는게 너무 괴로웠지만 "네가? 한달이나? 퍽이나 하겠다~" 고 비웃으시던 아버지에게 보란듯이 해내고 싶었기 때문에 꾹 참아냈습니다.
한달 뒤에 함께 일했던 분들이 용돈을 주시며 일주일 안에 도망칠꺼라고 자기들끼리 내기를 했었다고, 한달을 버틸꺼라고 걸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제가 이긴거라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사실은 두번 정도 새벽에 짐을 싸들고 버스정류장까지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버스를 몇대 보내면서 생각에 잠긴 뒤에 다시 숙소로 기어들어가곤 했죠.
80만원이라는 큰 돈을 받았고, 손재주가 좋으니 다음부터는 기술자봉급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로 올라왔고 그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아버지 자동차에 에어백을 달아드렸습니다. (객기로.....)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공감대 형성이 되질 않았습니다.
목공일을 배우겠다고 공장에 들어간 것도 그들에겐 놀림감이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아버지 차에 에어백을 달아드린 것도 그들에게 놀림감이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뷰~웅~신~~ 이라고~ ㅋㅋㅋ)
어른들이야 기특하다고 해주셨지만 그분들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친구가 필요했는데 친구들과는 아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습니다.
춤을 너무 추고 싶은데 클럽에 가려면 돈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알바를 하고 난 돈으로 클럽에 가려니까 너무 아까워서 클럽이 오픈 준비를 할 때 어슬렁거리며 웨이터 형들이랑 안면을 트고 테이블 나르는 것을 도왔습니다.
형들은 손님들이 오기 전까지 제가 춤추는 것을 허락해줬습니다.
저를 챙겨주는 형들이 좋아서 웨이터를 해볼까 잠시 고민도 해봤지만 그들과는 클럽 외의 세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습니다.
원서만 넣으면 무조전 들어갈 수 있다는 전산원에 들어가서 6개월간 100% 출석을 하며 미친듯이 공부를 해봤습니다. (그래도 저녁에는 알바, 밤에는 클럽)
그 뒤 6개월은 10%대 이하로 출석을 하면서 미친듯이 테니스를 쳤습니다. (여전히 낮밤으로 알바, 밤에는 클럽)
그리고 1년 뒤에 학교를 그만 두고 알바를 하다가 군입대를 했습니다.
무엇을 하든 중간만 가라고 모두가 충고하는 군대,
저는 무엇이든 다 지원했습니다.
평생동안 받았던 인정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정을 받았고......
중대장,대대장,사단작전참모,사단참모장까지 직업군인을 추천해주셨습니다.
군인으로써의 삶도 너무나 매력적이었지만 사업을 하고 싶어서 제대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까지 일하고 클럽에 살짝 들려서 춤을 추다가 퇴근하는 일의 반복,
그러다가 김완선씨를 만나게 되었고 스카웃을 받았었습니다.
이미 회사를 차려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 끝에 거절을 했습니다.
아마 회사를 차린 상태가 아니었다면 꿈에도 그리던 연예계로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그때 완선이누나가 키우고 있던 오룡비무방은 1집 삐빱빠룰라를 내고 바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제가 들어갔으면 육룡비무방이 되었을지도!!!)
인테리어회사를 하면서 수익이 생기기만 하면 계속 새로운 회사를 차렸습니다.
명분은 있었습니다.
어떤 분야의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만큼 경험치를 극대화 시켜야 한다는 명분......
그런데 과연 그 명분 때문에만 그렇게 한 걸까요?
제가 봐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의 저는 마치 도장깨기를 하듯 미친듯이 옆으로 옆으로 퍼져나가느라고 정신 없었습니다.
선샤인호텔 나이트클럽 BOSS에서 아내를 부킹 했을 무렵 우리는 20대 중반을 갓 넘은 나이였지만 둘 다 2천만원 가량의 월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인생을 갈아넣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클럽과 파티는 빠지지 않는 중증클러버!)
남들 세배 일하면서 세배 버는게 뭐 그리 잘 버는 거냐고 자조 하면서 저희는 중국으로 진출했습니다.
......
중국스토리만 대충 써도 지금까지 쓴 양만큼 많습니다.
그 중에 제일 재미 있는 건 광조우에 가서 용문신 한 건달에게 칼 맞을 뻔했던 에피소드인데.....
나중에 에피소드들을 잘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사드가 터졌습니다.
중국관련 일이 전부 사라졌고, 13년간의 중국경험과 인맥을 1%도 활용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국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지난 날 우리가 경험했던 생활 중 가장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두 아이를 언스쿨링으로 키우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집에서 끼고 있냐는 주.변.모.든.사.람.들.의 근심과 걱정이 우리를 짓눌렀지만 그때는 이미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냥 무시하고 사는게 익숙해진 뒤였고, 우리끼리 잘 해결해나갔습니다.
2019년부터 세상이 뒤집힌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싸가지도 더럽게 없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았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내에게 훈련 받다보니 짐승 같던 저는 사람이 되어서 아주아주 얌전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를 불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고 자기 일에 합류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저의 삶에 공감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제게 원하는 것은 '영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함께 일하는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맞출 수는 있는데 그들이 제게 맞추진 못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원한다고 했지만 제 입장에서 따지고 보면 저의 1/10조각을 원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먹고 살려니까 일을 하긴 했지만 너무 외로웠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이런 저를 잘 이해해주고 저의 23아이덴티티(저의 멀티페르소나 별명)를 잘 보듬어주는 분이라서 분에 넘친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었습니다.
(아내도 일당백입니다. 아내를 이해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부창부수죠. ㅎㅎㅎ)
그래서 아내와 함께 과감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의 세계관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우리가 오랫동안 지속성장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그래서 아스빌리지를 만들고, 스파르탄을 만들고, 메타코프를 만들고, 직원이 수십명인 것 처럼 둘이서 열심히 일을 벌리고 있습니다.
직원은 늘어나지 않는데 브랜드만 계속 늘어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회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제 위치는 항상 사랑 받는 머슴이고요.)
최근에는 스몰스텝으로 유명한 박요철대표와 의기투합이 되어 오랫동안 만들고 싶었던 크리에이티브플랫폼 T.A.G.를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The Artist Ground의 약자였는데 박요철 대표가 뜻만 바꾸자고 해서 Talents And Grit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바꾸고 보니 원래 이 의미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집니다.
역시 두 사람 이상이 머리를 맞대야 아이큐가 기본 이상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날 인생을 돌아보면 에너지가 소진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를 하면 할 수록 배터리팩이 하나씩 추가로 장착 되는 것 처럼 더 커져 갔던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역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려고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스몰스텝을 평생 해온거죠. 계속 옆으로 옆으로~~~)
스타크래프트를 밤새도록 해본 경험이 있거나, 드라마를 밤새도록 본 경험이 있는 분은 무슨 얘기인지 아실껍니다.
좋아하는 것을 할때면 인간이 얼마나 다른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지......
평생을 그 모드로 살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싫어하는 일을 할 때도 어떻게든 제가 좋아할 무언가를 우겨 넣어서 셀프동기부여를 하곤 했으니 그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더더욱 공감을 사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미치광이처럼 사는 것이 신기해보일 수는 있어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 수 밖에 없습니다.
일찍부터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가면 너같은 놈들 쎄고 쎘어~
실리콘밸리로 가라. 넌 거기에 있어야 어울려~"
그런데 제가 팝송 외에는 영어공부를 안좋아합니다.
사랑고백은 영어로 자신 있게 할 수 있는데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고객과 투자자에게 노랫말로 사랑고백만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있다면 알려주세요~ )
그런데 갑자기 미국에 계신 예비창업자들과 연결이 되어서 교육도 하고 있고,
샌프란시스코에 사시는 사장님과 의쌰의쌰 의기투합이 되고 있고,
저 이러다가 정말 미국에 가는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미국에 가면 정말로 만날 수 있을까요?
미친X은 미친X끼리 알아볼 수 있다는데.......
제 슈제리라이프에 공감해줄 수 있는 미친X을 만나면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에게 이야기 했더니 저랑 공감해줄 수 있는 미친X이 정말 나타나서 외로움을 달래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요.
이럴 땐 아주아주 큰소리로 끝까지 "아니야! 난 당신 하나로 충분해!"라고 말하는게 국룰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바보천치남편들은 이곳에 없겠죠?
계시다면 반성하시고 오늘부터 국룰을 잘 지키며 사세요. 인생이 아름다워집니다.)
엄청 길게 엄살을 떨긴 했지만 외로움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는 건 아닙니다.
비슷한 놈을 만나면 너무 신기해서 놀란 나머지 눈물이 날 것 같다는 거고요.
어느 순간 부터인가 제 관점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공감을 해주는 사람을 기대하기 보다는 제가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고통스러웠으면 어딘가 정착을 했겠죠.
하지만 그토록 계속 역마살 걸린 인간 마냥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배우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니까 저는 앞으로 그냥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 영감이 될 것 같습니다.
(아내가 이 글을 검열하면 이딴 라임 붙이지 말라고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13살 아들에게 메타코프사업권(제페토프로젝트)을 아예 넘겼습니다.
우리 중에 제일 잘하기도 하고 '메타버스와 패션플랫폼'을 정복하는게 꿈이라고 하니 대장을 하는게 맞습니다.
투자금이 10만원 정도 들어갔는데 이미 패션브랜드의 운영대행을 수주해서 수익이 나고 있기도 하고, 엄마랑 둘이 꿍짝이 맞아서 엄마를 일일이 가르쳐 가며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사뭇 기대가 됩니다.
14살 딸은 만화가가 되겠다며 스토리텔링&캐릭터디자인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하는 사업 모든 영역에 그림이 필요한 경우 전부 그려주고 있습니다.
(제가 SNS에 올리는 핸드드로잉 작품은 거의 다 딸 작품입니다. 왕십리용병단과 언스쿨링패밀리 캐릭터 포함~)
두 녀석을 보아하니 벌써부터 슈제리로 살아갈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해보입니다.
그 길은 너무나 외롭다고 이야기 했더니 상관 없다고 합니다.
본인들에게는 그 삶을 이해하는 가족들이 있으니 충분하다고......
아이들도 다 키웠고 2022년은 제게 터닝포인트 원년입니다.
이미 그 원년에 걸맞게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돌아가고 있으니 화끈하게 타올라보렵니다.
딱 3년 뒤 2025년에 지금을 돌아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신나게 퐈이아~~ (불꽃불꽃불꽃)
제이든 / 슈퍼제너럴리스트
커뮤니티디벨로퍼 & PFC브랜드액티비스트
크리에이티브디렉터 & 비즈니스트레이너
COO / OUOS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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