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대를 추구하는 커뮤니티를 만들 것인가?

커뮤니티의 시대. 5 표현이 아름다운만큼 현실화가 어려운 ‘느슨한 연대

by BRAND ACTIVIST

1. “혹시 모베러웍스라고 아세요?” 이 질문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여러 지인들에게 들었던 것이 제작년이었습니다.

어떤 회사인가 싶어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모베러웍스의 활약상과 팬들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작년에 이 책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부리나케 펼쳐봤었는데 이번에 브랜딩컴퍼니 프로젝트를 이야기 나누면서부터 계속 모베러웍스 생각이 났습니다.


왠지 이전보다는 잠잠해진 듯한 느낌이 드는데 제 관심이 줄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실제 활동이 잠잠해진 것인지도 궁금했고 그들의 최근 행보와 앞으로의 비전도 엿보고 싶어서 다시 최근 유튜브를 뒤져 보고 이 책을 다시 펼쳐들게 되었습니다.


2. 제가 맨 처음에 전문가 연대를 만들려고 시도 했던 것은 엘리튜트라는 청년단체를 만들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청년들이 대학생 시절에 실전비즈니스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든 단체에는 비즈니스를 가르쳐주실 전문가들이 필요했고 한분한분을 모셔서 강연을 열다보니 이런 분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GLOHAI Consulting Union’을 만들었습니다. (2005년)


학생들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집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글로하이는 어려움을 겪으며 해체 되고 아직 뜻이 모여 있는 사람들끼리 조금 더 목적이 뚜렷한 ‘QATOZ Consulting Union’을 만들었고(2008년) 카토즈는 조직구조에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유닛을 찾지 못해 결국 해체 되었습니다.


학생조직은 엘리튜트-엘죠월드-지맨스쿨 등으로 계속 시도 되었고, 전문가조직도 글로하이-카토즈 이후로 작은 조직화가 여러번 시도 되었는데 그런 시도들을 통해 ‘동기부여+자기개발+창업+취업+비즈니스인큐베이션’ 등을 테마로 하는 조직화를 계속 설계해보게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상해화동한국IT기업협의회를 1년간 컨설팅 하기도 했습니다. (주1회 출근을 하며 사업국장 타이틀로 활동을 했는데 협의회 발족 후 최초의 유급 운영자 였습니다.)


그리고 4년여 전에 아내를 통해 만난 포토그래퍼의 요청으로 전문가 커뮤니티 구축에 대한 아이디에이션을 했었는데 그때 만들어진 이름이 TAG 였고, 제작년부터 작년에 이어 모베러웍스에 대한 내용을 접하게 되면서 브랜딩&마케팅쪽으로 방향을 바꿨는데 그게 이번에 스몰스텝 박요철 대표와의 만남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것 입니다.

(처음에는 The Artist Ground 였고, 박요철 대표가 의미만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신 덕분에 Talents And Grit 으로 의미를 변경 했습니다.)


3. 지난 날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제가 한가지 마음 먹게 되었던 것은 ‘더이상은 느슨한 연대를 만들지 않겠다’는 점이었습니다.

모베러웍스도 느슨한 연대라는 표현을 계속 쓰고 있어서 그 부분 때문에 관심에서 점점 멀어졌는데 최근 영상을 보니 모베러웍스도 그 부분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는 흔적이 보였고 결국은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지만 실상은 타이트한 연대’를 선택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한때 추구했던 ‘느슨한 연대’는 지극히 모순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이게 가능한 영역은 아티스트&엔터테인먼트 업계라고 생각하는데 그들 분야의 특성상 다양한 콜라보프로젝트가 만들어지는 것이 나름대로의 느슨한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로는 ‘교집합이 상당히 두터운 상태’면서 B2B가 아닌 ‘B2C’로 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중심이 되는 아티스트 또는 기업이 확실한 책임의 주체’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 좋은게 좋다고 모여서 의기투합을 하고 어울려 놀거나 함께 공부하는 것과 책임 있는 역할이 주어지고 비용이 오가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 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생길 수 밖에 없는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들……

그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그냥 놔두면 양적성장은 할 수 있지만 집합체의 브랜딩이 흐트러지고 주체가 흔들리며 결국 특정 이익에 의해 와해 된다는 것, 반면 그 움직임을 통제하게 되면 양적성장이 어렵지만 집합체의 브랜딩이 견고해지고 주체가 확실해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깨달은 뒤로는 양적성장을 버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질적성장을 추구하는 ‘커뮤니티형 브랜드기업’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주된 이유는 아티스트&엔터테인먼트 분야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브랜딩&마케팅 영역의 경우 ‘교집합이 너무 적고 영역이 넓은 상태’이면서 운영비용을 충당하게 되는 창구가 B2C보다 ‘B2B’쪽이 비중이 크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대한 통제는 어려운 반면 프로젝트를 선명하게 제공해야 하는 대상의 목적은 너무 선명합니다.

(그러고보니 모베러웍스도 커뮤니티형 브랜드기업으로 분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부가 아스빌리지를 개인기업으로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5. 중국 상하이와 원저우에서 화교들의 비즈니스 방식을 직접 체험하면서 유대인과 화교들은 어떻게 기업형태가 아닌 ‘비즈니스커뮤니티’가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한국은 왜 어려운 것인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장 주된 키워드는 ‘외부의 적’ 입니다.

이것은 역사와 군중심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이해하실꺼라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의 경우 오랜 세월에 걸쳐 나라를 잃은 채 ‘전세계’를 떠돌아야만 했고 다른 국가들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들끼리 뭉치지 않으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그들 내부의 ‘평판’이 목숨과도 같이 여겨졌습니다.


화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계속 전쟁하다가 ‘거대한 땅덩어리’가 하나로 통일 된 이후 계속 다른 나라로 엎어졌고 외세열강에 의해 유린 되다가 또 쪼개져서 전쟁을 치르는 등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뭉쳐야 했고, 피아식별을 확실하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함부로 아군으로 들이지 않았고, 아군이 되고 나면 그들 내부에서의 ‘평판’을 목숨처럼 여겼습니다.


한국은 조선왕조 5백년간 ‘나름’ 평화로운 나라였습니다.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 큰 전쟁을 피했고, 삼면이 바다였기 때문에 국경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적었습니다.

‘작은 땅덩어리’에 외부의 적은 없었고 그 안에서 아군끼리만 피터지게 경쟁하고 싸우는 문화가 형성 되었습니다.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성장하지 못했고, 삼면이 바다라 게을렀습니다.

일제시대 때 그 댓가를 치르고 나라가 두쪽이 나서 6.25전쟁을 치른게 겨우 3세대 내의 일입니다.

그나마 친일청산도 하지 못했고 우리는 친미,친중,친일로 나뉘어져서 연일 아군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IMF 때와 2002년 월드컵을 바라본 주변 강대국들이 한국의 저력을 확인했기 때문에, 6.25 전쟁 후 일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보자고 마음 먹고 난 뒤 (많은 것을 잃기도 했지만)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기에 더더욱 한국을 내부적으로 갈기갈기 찢어놓고 아군끼리 싸우는 문화가 지속 되길 바라고 있을꺼라 생각합니다.)



6. 유대인들과 화교들은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말그대로 코딱지만한 가게 하나를 차리면서도 세계를 호령할 꿈을 꿉니다.

자식들을 가르칠 때도 그렇게 가르치고 가문이 힘을 모아 그 꿈을 향해 달려야 한다고 내부결속을 강화하고 문화를 단속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오랜시간동안 작게 생각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라는 얘기만 해왔습니다.

큰 꿈을 꾸는 것을 경시 하고 허황된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고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보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날 경우 부러워 하면서 동시에 찍어내리려고 하는 희한한 성향을 보입니다.


물론 그 심리는 이해가 갑니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작은 먹거리를 놓고, 누군가가 커진다는 것은 내가 굶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현실은 그게 아니라고 해도 우리의 뼛속 깊숙히 그 기억이 문화로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에게 특별할게 없는 본성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 입니다.


최근 들어 많은 기업들이 글로벌로 뻗어가고, K-pop을 비롯한 K-Culture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정치도 기업도 사회도 모두 각개전투, 각자도생의 분위기 입니다.

전체적으로 주저 하고 있는 상태에서 할 놈만 하는 분위기이고, 될 놈만 되는 거라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화교 같이 내부적인 결속과 통제가 문화화 되어 있지 않으니 법에만 저촉 되지 않는다면 ‘평판’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공동체가 밀어주는 것도 없습니다.

공동체 운영도 어설프고, 참여도 어설프고, 서로 뒤로 감춘 왼손에 자기껏을 쥐고 있고 비어 있는 오른손으로 어색한 악수만 하며 눈치를 보고 있는 분위기가 만연합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고 있는 분위기이긴 하나 나이로 서열이 정해지고 수직적인 관계가 일반적인 문화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약화 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 입니다.

아무리 이름 뒤에 님을 붙이고, 영어이름이나 닉네임을 부르더라도 우리의 뼈에 새겨져 있는 연장자를 대하는 태도와 연하자를 대하는 태도는 쉽사리 지우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7. 물론 모든 유대인과 화교가 동일하고, 모든 한국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일반화의 오류를 잘 알고 있고 그것에 매몰 되지 않도록 주의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토종 한국인이고 중국을 가기 전에는 나라를 떠나본 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듣곤 했습니다.


중국에 가서도 중국친구들에게 “넌 한국인이 아니야. 내게 수많은 한국친구가 있지만 그들에게 있는게 너한테는 없고 그들에게 없는게 너한테는 있어. 넌 전형적인 중국인(화교)의 성향을 갖고 있어. 내가 봤을 때 너는 일반적인 중국인보다 훨씬 더 중국의 성향을 갖고 있어.” 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저 같이 토종 한국인이지만 기존의 문화를 취사선택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어딘가에는 있을테니 절대로 모두가 그렇다고 이야기 해선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어떤지 판단하는데 있어서 이런 이야기는 깊이 생각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한국에서는 본연의 성격을 드러낸 채 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삶이 존경스럽지 않은 형들이 나이만으로 찍어누르려는 일들이 너무 많았고 마음 속으로는 싫지만 이익을 위해 허리를 숙이며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솔직히 제겐 국제사회인 상하이에서의 생활이 훨씬 편했고, 그곳에서도 정말 많은 분들에게 미국으로 넘어가라는(꼭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권유를 받곤 했습니다.



8.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반골’ 인가봅니다.

한국에서는 안된다는 말이 저를 오히려 도전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런 비즈니스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비즈니스커뮤니티는 메뉴판이 제일 중요한데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정보가 곧 메뉴 입니다.


모든 정보는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 사람인지 서로 확인 되어야 합니다.

어떤 것을 꿈꾸고 있으며 어떤 것을 배우고자 하는지도 확인 되어야 하며, 어떤 관계성을 지향하는지, 인생의 가치관이 어떤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어떤지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정보가 모두 과도하게 포장되었거나 모두 거짓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오랜 관계를 드러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그가 가진 삶의 태도를 누가 어떻게 지지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의 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진정성과 성장성이 제일 중요한데 진정성은 얼마나 투명한가를 봐야 하고 성장성은 얼마나 새로운 깊이와 새로운 분야를 탐구하는가를 봐야 합니다.

(하지만 야마구치 슈의 ‘뉴타입의 시대’에서 말하는 뉴타입의 비중이 많아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곳이 기존에 잘 구축 되어 있다면 그곳을 가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면 그 원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하며,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갈망하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노력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그것이 없다면 스스로 만들 각오까지 되어 있는지도 확인하는 과정을 추천 드립니다.


그 상태에서 파트너를 만나야 건강한 속도가 날 수 있고 그런 점검이 가능토록 도와주는 커뮤니티문화가 형성 되어야 비로소 건강한 비즈니스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9. 모베러웍스는 코로나가 심각해지기 직전에 대중과의 유니크한 커뮤니케이션에 성공 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유명 브랜드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최근의 유튜브를 보면 그 과정 속에서의 딜레마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구속을 피하기 위해 퇴직을 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거웠는데 줄을 이어 클라이언트가 찾아오고 그들에게 에너지를 쏟다보니 즐거움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B2C로 진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합니다.)


저는 이것이 모베러웍스의 딜레마이며 현대인의 딜레마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의 통제에서 억압을 느끼며 자유를 향하며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과 ‘ASAP : As Slow As Possible’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것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충분히 흔들고도 남을 메세지였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위해 갖춰야할 여건을 만들기 위해 또다른 시스템을 만들게 되고 그 시스템은 나를 다시 옥죄거나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대신 다른 사람을 옥죄게 됩니다.

프로젝트는 그 목적에 합당한 퀄리티를 ASAP : As Soon As Possible 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주장하는 메세지와 삶은 조금씩 어긋날 수 밖에 없고 이것은 영혼이 맑은 사람일수록 큰 데미지로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소시오패스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



10. 저희는(왕십리용병단/BRANDACTIVIST)는 이것을 다섯가지 요소로 풀고자 도전 중입니다.


1) 구성원 모두가 인플루언서가 된다.

2) 구성원 모두가 탁월한 코칭과 티칭이 가능토록 한다.

3) 구성원 모두가 본인 역량을 시간베이스로 메뉴화 한다.

4) 구성원 모두가 온오프라인 역량을 개별적으로 강화 한다.

5) 구성원 모두가 매년 새로운 도전을 추가한다.


독보적인 스토리텔링, 독보적인 경험, 독보적인 기술, 독보적인 팀웍, 독보적인 지속성, 독보적인 독창성, 독보적인 확장성을 바탕으로 초집중을 해서 일정수준의 성과를 내고 나머지 시간을 ‘놀면서 비즈니스연구’ 할 수 있는 스킬과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가정구성원이 주요 멤버인 왕십리용병단은 이 부분이 차곡차곡 현실화 되고 있는데 이 문화가 아스빌리지로 확산 되거나 태그로 확산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고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 입니다.


확산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 그것만으로도 큰 발견이며, 그 발견은 사회적으로 정말 건강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길이고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모베러웍스와 우리가 끌어 안고 있는 문제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모베러웍스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하는지 앞으로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말고 예의주시 하며 그들의 행보를 통해 열심히 배워야겠습니다.


(이러다가 모베러웍스를 찾아가게 될지도…..ㅎㅎㅎ)




제이든 / 슈퍼제너럴리스트

커뮤니티디벨로퍼 & PFC브랜드액티비스트

크리에이티브디렉터 & 비즈니스트레이너


COO / BRAND ACTIVIST

CEO / PRIPER

Creator / METACORP


https://linktr.ee/brandacti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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