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커뮤니케이션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커뮤니티의 시대. 믿음과 소통의 재정립

by BRAND ACTIVIST

관계에 게으른 사람


본래의 난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는 편이어서 어릴 적부터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가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만큼 사람을 알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가 대화하려고 노력했고, 온갖 심리학,철학,신학서적을 뒤져가며 사람의 본질적인 성향을 알고자 노력했다.


더 많은 사람을 경험할수록 상처도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게 한가지 있다면 ‘사람을 진정으로 좋아하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믿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말을 하면 곧바로 “사람을 믿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관계지향적인 삶을 살 수 있는거죠?” 라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 한다.

“관계지향적인 삶을 살기 위해 사람을 믿지 않는 거에요.”


한때는 내게 배신감을 느끼게 해주고, 상처 준 사람들을 엄청나게 원망하며 살았던 적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이 별로인가 보다.’

‘내가 그냥 호구로만 보이나 보다.’


내가 그들을 어떻게 대해줬는데, 그들을 얼마나 믿었는데, 그들이 내게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건지 밀려오는 상실감이 쌓이고 쌓여 자괴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모든 것은 나의 잘못된 관점이었다는 것을 알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나의 믿음이 ‘게으름’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게으름을 피고 있고, 그 게으름의 댓가로 ‘관계’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게으름은 연인들에게 가장 많이 드러나는데, 소위 콩깍지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내 안에서 솟구쳐오르는 긍정적인 감정을 꽉 붙들어 놓고 이성을 끌어올려 비판적인 태도로 점검 한다는 것은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상당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느껴지는 호감은 나로하여금 상대의 모든 행동이 나를 향한 의미가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과도한 긍정적 의미부여를 하는 합리화 상태에 빠져 들게 만든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렇게 우리 안에서 부풀려진 상대의 이미지는 ‘상대방이 보여준 적이 없는’ 영역까지 과도하게 확장되고 ‘기준’이 세워진다.

‘OOO한 상황에서 저 사람은 OOO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일꺼야.’ 라고 함부로, 아주 잘못된, 근거 없는 정보를 스스로 양산해내는거다.


결국 그 잘못된 기준들이 우리를 파국으로 이끈다.

상대방은 원래 그런 사람인데, 내 마음대로 생각해놓고, 내가 생각한 기준과 다르다고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고, 비난을 하고, 좌절하고, 자괴감에 빠진다는거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지금이라도 지난 날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정확한 데이터를 넘치도록 쌓은 뒤에 내린 결정이었는지,

감정에 취해 속단 했던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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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주의해야 할 점!>

절대로 자책하거나 자괴감에 빠져선 안된다!

그것 역시 나에 대한 지나친 합리화와 잘못된 기준설정의 문제일 뿐이며 문제를 발견했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이상적으로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어나갈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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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사람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을 너무 몰랐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내 자신에 대해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OOO은 OOO하다.” 라는 관점을 쭉 나열해놓은 뒤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를 적어보았다.

그리고 그 근거가 얼마나 반복 되었는지 숫자를 적어보았고, 그 근거가 해당될 수 있는 경우와 해당되지 않을 수 있는 경우를 떠올려가며 정리를 해보았다.


정리를 하면 할수록 내가 사람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얼마나 섣불리 판단하고 있었는지, 그들을 알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지 않았는지, 나란 사람이 ‘관계에 대해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 내가 사람들에게 실었던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열의를 불태우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게 되면서 세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1) 시간의 한계

2) 포장과 거짓말

3) 상황의 변화


1) 시간의 한계


우리 모두에게는 똑같은 1년, 똑같은 12개월, 똑같은 52주, 똑같은 365일, 똑같은 8760시간이 주어져 있다.

그 중 매일 수면시간을 7시간으로 따지면 총 2555시간이 제외 된다.

매일 일을 비롯해 해야 하는 것을 처리하는 시간을 8시간으로 따지면 총 2920시간이 제외 된다.

매일 이동시간을 3시간으로 따지면 총 1095시간이 제외 된다.

매일 밥먹는 시간을 2시간으로 따지면 총 730시간이 제외 된다.

매일 새로운 공부를 2시간씩 한다면 총 730시간이 제외 된다.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을 총 2시간이라고 한다면 총 730시간이 제외 된다.

그러면 남는 시간이…… 0시간 이다.

이런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결국 누구와 함께 일을 하는가,

누구와 함께 이동하는가,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는가,

누구와 함께 공부하는가,

누구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가,

누구와 함께 잠을 자는가,

그것이 중요하다는 수 밖에 없다.


2) 포장과 거짓말


심리학서적과 철학서와 신학서를 비롯한 인문학 장르에 푹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또는 황금만능주의를 찬양하는 브랜딩&마케팅 서적에 빠져본 적이 있다면 잘 알 것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상으로 얼마나 거짓말을 잘 하는지……


인간은 자신이 설정한 불법과 불의의 수준을 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가면서 상당히 합법적이고 정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평가한다고 한다.

감옥에 갇혀 있는 중범죄자들까지도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도 황당하다.


거짓말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사람은 자신이 설정한 커트라인을 넘으려고 하기 보다는 커트라인 자체를 조정해버리는 습성을 갖고 있다고……

눈 앞에 보이는 물건을 가져가는게 불법이라는 것을 몰라서 가져가거나 인지하고도 무시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불법에 대한 기준을 바꿔놓은 뒤에 가져간다는 말이다.


엄청난 범죄자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속에서 만나는 아주 흔한 일반인들까지도, 아니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우리 자신까지도 그런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포장과 거짓말은 생존하기 위한 본능이기 때문에 중단하기가 어려우며, 파악을 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내 자신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3) 상황의 변화


인간에게 벌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경험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일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내일 특정한 일을 겪게 된 뒤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내 자신조차도 내일 특정한 사건사고를 겪은 뒤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사람의 진가는 특정한 사건사고 속에서 그간에 쓰고 있던 사회적인 가면이 본의 아니게 전부 벗겨졌을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특정한 사건사고가 없는 경우 그 포장은 계속 벗겨지지 않은 채 유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사건사고 없이 평안한 경우 가면과 가면의 만남으로 끝나게 되고,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한 경우 알맹이가 알맹이의 만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관계의 아이러니 함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이 특정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존재인지’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부족함을 채워나가면 채워나갈수록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원인과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 세가지의 고민은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누구에게 어떻게 투자해서 얼마나 농도 있게 소통을 하고 관계를 쌓아나갈 것인지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인 나’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특정 상황 속에서는 누구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시간을 적극 투자하고 농도 있게 소통하는 것이 반복 되어야 하며, 일반적인 나와 비밀스러운 나를 드러냄에 주저하지 않아야 하고, 특정 상황을 항상 공유하고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 적극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세가지를 수박 겉핧기로 밖에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랑해줘야 하는 존재


사람들이 흔하게 말하는 ‘믿음’이란 표현이 얼마나 통일성 없는 표현인지 알게 된 이후로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닙니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이고 있다.

“사람은 그저 사랑해줘야 하는 존재일 뿐 입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근거 없는 감정적 산물인지 알게 된 뒤로 적지 않은 시간동안 방황을 했던 것 같다.

다행인 것은 내가 주저 앉는 성격도 아니고 모르는 것을 덮어두는 성격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감사하게도 내게는 같은 시기에,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절벽에 서 있었던 아내가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서로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함께 책을 읽고, 발견된 키워드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훈련 하는 것을 반복 했다.


‘나’만 고집하던 우리는 나를 내려놓고 ‘인간’을 먼저 배우기 시작했고, 각자가 고집하던 것의 원인과 이유를 발견하게 되면서 쓸데 없는 고집이 꺾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통은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꺾인 고집 사이로, 내려 놓은 마음의 공간 사이로 서로에 대한 긍휼한 마음과 애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근거 없는 믿음’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오랜 역사에 현재의 상황을 대입하고 상대방이 바라는 삶을 대입하면 그 감정과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용납할 수 있는 거라면 동참하거나 지켜봐주고 용납할 수 없는 거라면 (서로 용납하지 않기로 정해놓은 거라면) 잠시 멈춰세우고 재정비 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괜한 다툼이나 분쟁은 모두 사라졌고, 우리는 멋진 팀웍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러자 멋진 일들이 우리 앞에 연달아 펼쳐지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터


태어난 가정에서 건강한 관계성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연인과 부부 사이에서도 그런 깊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누구를 만나길 바라는지도 모르고, 온갖 필요와 욕구와 감정만 지닌 상태의 사람들이 커뮤니티들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태어난 가정에서, 연인과 부부사이에서, 친구들과 함께, 동료들과 함께, 얼마나 함께 공부해보았고 얼마나 상호존중을 경험해보았는지 생각해보자.

대부분 좋은 것이라는 미명 아래 강압적으로 주입 당했고, 서로에게 주장하고, 상대에 대한 관심과 화합은 내려놓고, 목표에만 포커스 맞춘채 적당히 거리 두는 것만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저 사람이라면 나와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줄 것 같아……

저 사람이라면 나에게 특별한 커뮤니티를 경험하게 해줄 것 같아……

저 사람이라면 나에게 있어서 멋진 커뮤니케이터가 되어줄 것 같아……

누군가는 의식적으로, 누군가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기대를 걸고 실망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끊임 없는 공부와 도전과 성찰을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대체적으로 무의식적이며,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이 인정은 안하겠지만……)


그래서 모든 커뮤니티는 먼저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는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하며, 팔로워들은 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자기 스타일인지, 자기 스타일이 아니지만 경험할 것인지, 자기 스타일로 만들고 싶은 것인지 결정해야만 한다.


같은 취향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을 모아 그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것에 포커스 맞춘 커뮤니티라면 다를 수 있지만 (틀렸다는게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커뮤니티 멤버간에 좋은 관계가 형성되길 바라고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길 바라면서 동시에 그들과 함께 성장하길 바라는 커뮤니티라면 (지속성장 커뮤니티)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한 방향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구성원 간에 더 깊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수 있도록,

더 깊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커뮤니케이터가 늘어나야만 한다.

모두가 현재에 안주한 상태가 아니라 더 나은 성장을 꿈꾸며 용기 내어 성찰하고, 인정하고, 이야기 하고, 도전할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란다면……



어려운 길


아주 작은 프로젝트까지 포함하자면, 오프라인 창업에 대해 A부터 Z까지 도운 경험들이 100회 이상, 내가 직접 창업을 해본 것도 10회 이상, 다른 커뮤니티를 돕거나 내가 직접 커뮤니티를 구축해본 것도 10회 이상이다.


이 중에 제일 힘들었던 것은 커뮤니티였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가정이라는 커뮤니티 였다.


특수목적 때문에 만나는 것이고 그 목적을 달성했거나 더이상 달성이 어렵겠다고 판단 될 때에는 편하게 헤어져도 되는 구조일때가 제일 쉽고 편했다.

하지만 다양한 목적이 얼키설키 뒤엉켜 있고 삶이 공유 되는 형태일수록 어렵고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내 가정 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관계를 논하고 싶지 않아서 호기롭게 도전했던 것이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단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이토록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것인지 몰랐다.

이토록 오랜 인내와 큰 사랑이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직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원래 종착역이 없는 영역) 많은 분들이 부러워해주시는 가정을 일구고 보니 예전보다 커뮤니티와 기업비즈니스가 더 어렵게 보인다.


가정을 이 정도로 이끌어봤다면 기업경영도 기대 된다며 중책을 맡겨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나 한명 있다고 해서 모든게 달라지는게 아니다.

한마음 한뜻이 아닌 곳에 혼자 덩그러니 들어가 있어봤자 속만 터질 뿐이고 그런 상황을 만든 기업오너를 붙잡고 훈계만 늘어놓게 될 뿐이다.


오너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빨리 헤어지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빨리빨리 나왔다.

그분들은 자녀의 문제는 모두 돈 투자해서 좋은 학원이나 학교를 찾아주면 해결 될꺼라고 생각하는 부모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는 서로 애를 어떻게 가르친거냐고 손가락질 하고 싸우는 부모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모든 원인은 커뮤니티리더에게 있다는 것을……

그것을 다른 곳에서 찾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커뮤니티는 결국 와해되고 만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기업은 조금 다르다.

오너가 멋진 사람이고 좋은 관계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윤을 내지 못하면 망하고, 오너의 인성이 엉망진창이고 툭하면 비인격적인 말을 내뱉고, 심지어 사람을 패는 사람이어도 이윤을 잘 내고 있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절대 우위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은 그 기술력 강화에만 집중을 하는 것 같다.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만 들어오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우위의 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은 기업들, 카피하기 어렵지 않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기업들의 경우, 점점 커뮤니티에 눈을 돌리는 것 같고, 기술의 상향평준화에 따라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커뮤니티성 회복에 큰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현상을 바라보며 대체적으로 눈가리고 아웅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 기업들이 구성원과 고객들에게 어떤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은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한 특별한 커뮤니케이터들이 많아야 가능한 것인데 그것을 구조로 풀려고 하는 듯한 현상이 느껴진다.


물론 제각기 생각하는 특별함의 깊이와 색깔이 달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역시 그 브랜드를 깊이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가 속단하는 것일수도 있다.


어렵다.

정말 어렵다.

하지만 기업만으로는 절대로 인간의 본성을 충족 시켜줄 수 없기에, 인공지능과 기계기술로는 더더욱 충족시켜줄 수 없기에, 4차산업혁명의 시대는 곧 커뮤니티의 시대가 될 수 밖에 없을꺼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확실히 생각해보고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내가 경험한 특별한 커뮤니테이션은 어떤 것인가?

2) 내가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것인가?

3) 내 주변에는 어떤 특별한 커뮤니테이터들이 포진하고 있은가?

4) 어떤 비전과 방법으로 특별한 커뮤니케이터들을 육성하고 규합할 것인가?



제이든 / 슈퍼제너럴리스트

커뮤니티디벨로퍼 & PFC브랜드액티비스트

마인드트레이너 & 크리에이티브디렉터


COO / BRAND ACTIVIST

co-founder / PRIPER

Creator / METACORP


https://linktr.ee/brandacti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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