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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부스터 켄 Feb 18. 2023

위임을 못하는 리더

사람을 믿는 건 재능이다.

※ 이 글에는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불한당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냉철한 조직폭력배 한재호는 어머니를 사고로 잃어 낙담하는 조현수를 위로한다. 한재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죽이려던 첫 번째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이야기 해준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동반 자살을 시도한 어머니와의 일화를 덤덤하게 말하던 한재호는 조현수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상황을.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한 수많은 인물 중 지략으로 돋보이는 인물은 단연 제갈량이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삼고초려로 스카웃 된 후 수많은 책략으로 유비의 승리를 도왔으며 촉한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조조에게는 중원을, 손권에게는 강동을 주고 유비는 형주와 익주를 차지해 천하를 우선 셋으로 나누어 통일을 도모하자는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는 제갈량의 계책이었다. 


제갈량은 유비의 절대 신임을 받았으며, 유비 사후에도 촉한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촉한의 황제는 유비의 아들인 유선이었으나 사실상 촉한의 리더는 제갈량이었다. 유비의 유언에 따라 권한을 받은 제갈량은 군주에게 간언하는 입장이 아닌 국가의 중대사를 판단하고 처리해야 하는 군주의 역할을 대행했다. 이때부터 제갈량이 가진 유일하고도 치명적인 단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출처: 적벽대전


삼국지에서 제갈량의 유일한 라이벌로 알려진 사람은 위나라의 재상 사마의다. 어느날 전쟁터에서 제갈량이 매일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식사도 거르는 편이며 곤장 스무 대가 넘는 형벌은 모두 직접 처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마의는 다음과 같이 제갈량을 평가했다.


제갈량은 뛰어나지만
남을 믿지 못하는
큰 단점을 가지고 있다.

남을 믿지 못해서
모든 일을 관장하려 든다면
어찌 윗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제갈량은 사마의의 평가를 전해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라고 탄식을 내뱉었다고 한다. '어허! 사마의가 내 처지를 다 알아버렸군!'


이처럼 제갈량은 부하에게 위임하지 않고 모든 일을 지시하고 보고받는 리더였다. 이 방식은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판단하기에 많은 단점이 있지만 이런 단점을 비웃기라도 한듯 제갈량은 정치, 행정, 국방, 경제 등 한 나라의 모든 국정을 혼자서 해결해 버린다. 유비 사후 촉한은 제갈량의 초인적인 능력에 기대어 운영된 셈이다. 하지만 제갈량도 인간이었기에 계속된 격무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가끔 각혈까지 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결국 제걀량은 얼마 뒤 병사했다.


문제는 제갈량 사후였다. 뒷일을 부탁할 제갈량이 있었던 유비와 달리 제갈량은 후임자가 없었다. 제갈량은 세상에 나와 30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자신을 대신할 인재를 키우지 못했다. 사실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다는 설명이 더 정확하다. 제갈량은 남을 믿지 않았으니까. 죽음이 가까워지고 나서야 간신히 찾은 후계자가 위니라에서 귀순한 강유였다. 강유는 훌륭한 인재였지만 제갈량을 넘지는 못했고 결국 촉한은 얼마 뒤에 위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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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업이 팀 워크(Team Work)를 중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보다 팀의 생산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덩달아 팀의 생산성을 책임지는 리더 역시 중요해졌다. 보통 리더가 팀의 생산성을 제어하는 방법은 위임과 지시, 두 가지다. 이 중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위임으로 알려져 있다.


위임이란 무엇인가? 구성원에게 문제 해결의 과정을 일임하고 결과의 일부를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최대한의 자율성에 최대한의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위임은 과정을 일일이 지시하고 결과를 책임지지 못하게 하며, 최소한의 자율성에 최소한의 책임감을 부여하는 지시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주체적인 구성원 입장에서 위임은 최고의 혜택이다. 책임과 자율을 부여하는 위임은 구성원의 동기와 자기효능감을 높인다. 위임이 거듭될 수록 구성원의 경험과 실력이 복리로 쌓이기 때문에 성장에도 기여한다. 결과적으로 위임은 구성원의 성과, 나아가 조직 전체의 성과를 불러온다.


리더 입장에서도 위임은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다.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구성원에게 맡기면 리더는 절약한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만이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리더와 조직의 생산성은 동반 상승한다. 특히 위임을 통해 성장한 구성원에게 더 많은 권한과 다양한 보상을 자연스럽게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구성원을 만족시키고 이직률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리더가 권한을 위임하려면 다음과 같이 체계를 만들면 된다.

1. 리더가 과업의 성격과 구성원의 역량을 파악해서 매칭한다.
2. 리더가 구성원에게 과업의 배경, 범위, 레퍼런스, 기대 수준, 허용된 리소스를 설명한다.
3. 구성원이 어떻게 진행할지 기획안을 가져온다.
4. 리더는 구성원과 기획안 내용을 서로 토론하고 합의한 끝에 권한을 위임한다.
5. 구성원은 리더와 약속한 중간중간에 소통하며 업무 내용을 동기화한다.
6. 구성원이 아웃풋을 가져온다.
7. 리더는 구성원의 아웃풋이 기대 수준과 기획안에 충실했는지 체크하고 피드백한다.
8. 리더와 구성원은 해당 업무로 배운점을 서로 공유하고 다음 업무에 연결한다.


연구에 따르면 전체 업무시간의 5%는 명령, 20%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시에 쓰되 나머지 75%는 구성원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배정하는 게 권한 위임의 황금 비율이라고 한다. 


이렇게 위임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모순도 존재한다. 리더가 모든 조직 구성원에게 모든 권한을 완벽하게 위임한다면,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팀 단위의 업무도 사라지고 각자 개인 업무만 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렇게 되면 팀을 만든 이유가 없다. 


위임의 단점이라면, 만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량이 높은 리더가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도 굳이 구성원에게 위임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면 기업의 입장에서 당장은 손해다. 시간은 곧 비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1시간 만에 끝낼 일을 맡겼더니 하루 종일 붙잡고 있으면 답답할 때가 있다. 여기에 동반되는 인내 비용 또한 리더의 책임이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했던 말이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리더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우수한 인재를 뽑을 수 있는 능력과 그들이 일하는 동안 참견하지 않을 정도의 자제력을 갖춰야 한다.


위임이 모든 구성원에게 맞는 것도 아니다. 수동적인 구성원이나 역량이 미달되는 구성원은 위임보다 지시가 더 효과적일 수 있고, 위임을 허용하지 않는 조직문화도 있기 때문에 위임이 무조건 만능은 아니다.


뛰어난 리더는 구성원의 역량과 주변 환경에 따라 위임과 지시를 적절히 섞어서 쓴다. 믿고 맡길만한 구성원에게는 위임하고, 아직은 제어가 필요한 구성원에게는 지시를 내려서 조직의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사실 위임과 모순은 동등한 개념이 아니다. 지시가 위임의 상위 레벨이다. 앞서 소개한 위임의 체계처럼, 리더는 권한 위임을 '지시'했다가 언제든지 다시 권한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임은 지시의 한 종류로 보는 게 맞으며, 위임과 대치되는 개념은 마이크로 매니징이 더 적합하다.


자, 이런 단점이 있어도 위임은 리더가 반드시 갖춰야 할 역량이다. 리더 역시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된 인간이라는 점에서 위임은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 수많은 연구 결과가 있고 이미 위임하는 방법까지 잘 알려진 지금 왜 아직도 위임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걸까?


리더가 위임을 못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성격 자체가 남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한재호와 소설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의 공통점은 남을 믿지 않는 성격이다. 그 성격이 어렸을 때의 경험에서 기인했던, 혹은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던 간에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능력이 좋아보여도, 위임을 못하는 리더는 나쁜 리더다. 팀의 생산성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에게도, 구성원에게도, 리더 자신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기업에서 위임을 체계화하고 장려해도 남을 못 믿는 리더는 자신의 권한을 구성원에게 주지 않는다. 주더라도 시늉만 할 뿐이다.


예를 들어 팀별로 구성원은 각각 다섯 명씩 있는 두 팀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일에 팀장이 지시해야 움직이는 A팀은 한 사람과 같다. 팀장이 두뇌, 팀원 넷이 손발을 맡는다. 한 사람이라서 지시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이고 빠르게 과업을 해결하지만 손발은 매번 생각 없이 일하느라 괴롭다. 반면에 모든 일을 위임하는 B팀은 다섯 사람이나 다름없다. 다섯 사람의 힘과 한 사람의 힘은 엄청난 차이다. 당연히 A팀은 B팀보다 생산성이 극도로 낮을 수 밖에 없다. 


타인을 믿지 못하고 지시만 할 줄 아는 리더는 결국 팀을 활용할 줄 모르고 개인 능력으로 팀을 운영한다. 안타깝게도 결코 제갈량의 수준을 넘지 못했던 촉한처럼, 위임을 못하는 리더가 이끄는 팀의 수준은 그 리더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어쩌면 자신도 못 믿기에 남도 못 믿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을 믿지 않던 한재호는 스스로의 원칙을 어기고 조현수를 믿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죽는 날까지 촉한을 위해 일했던 제갈량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병법서를 세상에 꺼내보였다. 스스로를 의심하는데 어떻게 남을 믿을 수 있을까? 이렇게 보면 남은 믿는다는 건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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