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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부스터 켄 Feb 25. 2019

마케팅 직무세분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브랜드, 컨텐츠, 퍼포먼스 사이의 직무격차가 깊어지고 있다.

1.

하나의 분야가 고도화되면 전문적 세분화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쉬운 예로 군대가 있다. 원시시대에 무리를 지어 몽둥이나 돌도끼로 이웃부락을 습격하는 힘센 남자들의 전투집단이 초기 군대의 모습이었다. 기본적인 보병 외에 물리적으로 먼 거리의 적을 보다 먼저 타격할 필요성에 활을 지닌 궁병이 나타났고, 물리적으로 보다 빠르게 적을 타격할 필요성에 말을 탄 기병이 탄생했다. 또한 칼, 도끼, 창 등이 개발되면서 무기도 고도화되었고 갑옷이나 방패와 같은 방어구도 발달했다. 현대에 이르러 군대는 원시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체계적인 세분화가 이루어졌다.


1795년 정조의 화성 행차. 장창수, 조총수, 기창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반차도(班次圖))


군대뿐만 아니라 고도화를 통한 전문적 세분화가 이루어진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조선에는 도편수(都邊首)라고 불리는 건축의 우두머리 목수가 있었다. 예전에는 나무로 집도 짓고 가구도 만들었기 때문에 도편수는 집의 외관부터 내관, 가구까지 전부 관여하는 익스테리어, 인테리어의 풀스택 전문가였다. 지금의 목수는 인테리어 위주로 전문화된지 오래다. 디자이너는 어떨까? 산업디자인, 시각디자인 등 현대는 디자인의 영역을 구분하지만, 초기의 디자이너에게는 딱히 경계가 없었다. 애당초 디자인도 미술에서 갈라져 나와 지금은 순수미술과 구분되는 상업적인 개념이지 않은가? 종교 또한 고대의 종교와 지금의 종교를 비교해보면 종교를 운영하는 인력의 세분화가 얼마나 진전되었는지 알 수 있다.


마케터라고 다르지 않다. 마케팅 자체도 원래 영업에서 갈라져나온 개념이다. 이전에 썼던 글 '브랜딩이 잘 되면 영업은 필요가 없을까?'에서 밝혔듯이, 1대 1로 대면 고객관리를 하던 영업의 한계에서 벗어나 '소비자 집단'을 정의하는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게 되면서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물론 지금도 영업과 마케팅을 구분하지 않는 업종도 일부 존재하지만 현재 마케팅은 직무의 전문적 세분화가 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더하여 애드테크의 발달로 광고운영의 자동화가 현실이 되면서 그 변화의 속도는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터라면, 혹은 마케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변화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2.

마케터 직무의 변화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곳은 구인구직사이트다. 다양한 기업의 채용공고를 보면 어느 정도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데, 특히 대기업, 중견기업과 앱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의 간극이 크다. 먼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혹은 오래된 업력의 기업이 마케터를 뽑을 때는 외국 소비재 기업체계를 본 딴 직무인 브랜드 매니저를 제외하면 구인대상을 사람이 아닌 직무 그 자체로 표현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마케팅 팀원 채용공고

브랜드 매니저 경력채용

온라인 마케팅 담당자를 찾습니다

마케팅 경력 정규직 채용

마케팅 기획팀 경력직원 채용

마케팅전략팀 팀원 채용


반면 스타트업 업계나 IT업계는 채용 시 표현을 사람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그로스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

SNS 마케터

글로벌 마케터

콘텐츠 마케터

브랜드 마케터


기존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마케팅 직무를 단순히 오프라인(기존 커뮤니케이션 범위)과 온라인(새롭게 탄생한 커뮤니케이션 범위)으로 구분했다면 스타트업은 직무를 더욱 세분화하여 채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직무를 쪼개는 기준이 다른 이유는 기업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보는 시점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금융, 전기, 전자, 유통, 식료품 등 전통적인 산업군에 속한 기존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4대 광고매체(TV, 라디오, 신문, 잡지)나 인쇄홍보물에 치중했던 상황에서 온라인와 모바일이 차례대로 나타나자 그에 맞춰 추가로 인력을 더 뽑거나, 기존 인원이 자체 학습하거나, 그에 맞는 대행사를 추가로 선발하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대체로 기업 디지털 채널(SNS, 블로그) 관리, 광고 시 디지털 매체 포함을 추가적인 업무로 설정하는 편이다. 이미 인력과 직무가 세팅되어 있는 상황에서 단번에 뒤집기보다 업무체계를 조금씩 바꾸는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스타트업이나 IT기업은 직무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편이다. 제조업처럼 대규모의 시설이 없어도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얼마든지 창업이 가능한 스타트업, IT기업은 대기업, 중견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직무대응이 유연하다. 사용자를 서로 연결하는 SNS,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결하는 O2O, 모바일로 즐기는 게임, 금융업, 식료품업, 운수업 등 전통적인 산업을 스마트하게 개선하는 움직임은 모두 이 시대의 반짝반짝 빛나는 앱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만들어냈다. 투자를 받으며 성장해야 하는 스타트업 특성상 꼭 필요한 직무만 취사선택하여 차츰 직무범위를 늘려가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마케팅 직무에서는 제일 먼저 퍼포먼스 마케터를 채용한다. 스타트업이 늘어나면서 덩달아 퍼포먼스 마케터의 채용률이 급성장하는 이유다. 앱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특성상 광고를 통해 앱에 유저를 끌어오고, 유입된 유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파악하는 퍼포먼스 마케팅은 당연히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앱에서 발생하는 트래픽(traffic)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아이폰은 세상을 뒤바꿔 놓았다.


11년 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의 탄생을 천명했을 때 이렇게까지 모바일의 영향력이 강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바일의 성장은 수많은 매체의 몰락을 불러왔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만 보는 승객들 덕분에 그 많던 지하철 광고매체와 무가지는 하락세를 걷고 있다. 수많은 잡지가 폐간되고 신문 구독자 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지상파 TV광고 규모는 모바일 광고에 미치지 못한다. 이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반대로 새로운 일자리도 탄생했다.


죽은 매체를 대신해 수많은 모바일 매체가 등장하면서 마케팅의 고도화를 야기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광고는 죽었다'면서 광고의 종말을 단정지으며 콘텐츠의 시대가 왔노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SNS를 비롯하여 구글, 유튜브, 아마존과 같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광고매체와 애드테크로 인해 오히려 광고는 죽지 않고 펄펄 살아나고 있다.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광고는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다.


혹자는 기업 전체도 아닌 일부 스타트업에서 제시하는 마케터 직무구분에 주목할 가치가 있냐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실제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상황은 다르다. 앱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은 초기에 에이전시에게 대행을 맡기기보다 자체적으로 퍼포먼스 마케팅을 펼치는 편이 비용 측면에서 훨씬 이득이다. 스타트업은 초기에 내부인원의 희생적 노동력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외주에 의존하기보다 내부 인건비 내에서 최대한의 효용을 창출해야 한다. 반대로 제조 및 유통을 통해 수익구조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 입장에서 퍼포먼스 마케터나 콘텐츠 마케터가 굳이 필요할까? 연간계약 맺고 필요할 때마다 에이전시에게 외주를 주는게 상대적으로 퀄리티가 더 높고 비용이 저렴하다.


현황만 보면 스타트업에서 벌어지는 마케팅 직무세분화가 한 때의 현상으로만 치부될 수 있으나, 생존에 예민한 대기업들은 벌써 스타트업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들은 대기업이 망하는 이유는 빠르게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카드는 스타트업 DNA를 기업에 심겠노라고 CEO부터 외치고 있고(기사), SK는 조직체계에 스타트업의 효율성을 적용(기사)하면서 혁신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혹은 외주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마케팅 콘텐츠를 내부에서 만드는 움직임(기사)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추세로 볼 때, 멀지 않아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도 인건비 절감과 직무효율성을 위해 마케터 채용 시 스타트업처럼 직무를 세분화하여 채용할 것이다.


3.

그럼 현재 스타트업에서 필요로 하고 있는 대표적인 마케터 세부직무는 어떤 것이 있을까? 크게 앞에서 언급한 '퍼포먼스 마케터' 외에 '콘텐츠 마케터', '브랜드 마케터' 등 역할별로 구분기준과 '페이스북 마케터', '인스타그램 마케터', 'SNS 마케터' 등 커뮤니케이션 채널별 구분기준이 있다. '캠페인 마케터'나 '글로벌 마케터는'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거나 광범위해서 제외한다.


페이스북 마케터 같이 특정 매체 기준으로 구분하는 직무는 수명이 짧다. 현재 디지털 채널의 권력은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서 유튜브로 이동하고 있고, 심지어 유튜브도 틱톡의 추격을 받는 상황이다. 어떤 채널이 어떻게 흥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채널에 얽매이는 직무는 위험하다. 따라서 현재 유의미한 마케터 직무유형을 뽑는다면 '퍼포먼스 마케터', '콘텐츠 마케터', '브랜드 마케터', 세 가지가 가장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세 가지 직무유형을 채용공고의 JD(Job Description, 직무기술서)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자. 몇년 전까지만 해도 JD가 기업마다 천차만별이었는데 최근에는 어느 정도 통일되고 있다. 인사담당자들이 채용공고를 작성하면서 서로를 참고하고 베낀다는 증거다.



[퍼포먼스 마케터 채용]

마케팅 주요 지표 모니터링 및 관리

웹/모바일 캠페인 기획 및 광고 집행

SNS 운영 및 관리

대행사/매체사 관리


포먼스 마케팅은 'Data Driven Marketing'이라 불릴 정도로 데이터로 시작해서 데이터로 끝나는 직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디지털 채널활동을 데이터로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편의점에 오가는 손님이 얼마나 되고, 언제 왔고, 얼마나 머무르고, 뭘 샀고, 얼마나 샀는지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웹/앱을 통해서는 얼마든지 측정이 가능하다. 우리가 SNS, O2O서비스, 게임, 금융, 정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사용하는 행위는 전부 '유저 데이터'로 변환되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게 중요한 자산이 된다.



퍼포먼스 마케터의 모든 업무는 이 '유저 데이터'와 관련이 있다. 이들은 자사 웹/앱에 유저를 광고를 통해 유입하고 유입된 유저를 전환까지 이끄는 과정을 트래킹하고 이를 개선한다. 이를 위해 유저가 광고를 보고 회원가입이나 결제, 재결제를 하고 단계별로 관리하는 퍼널 전략을 수립하고 진행한다.


만약 광고를 집행한다면 타깃에게 광고가 얼마나 노출이 되었고, 타깃이 그 광고를 얼마나 클릭했는지, 클릭해서 앱을 다운받거나 사이트로 넘어오는 등의 전환이 얼마나 일어났는지가 모두 데이터로 남는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광고소재를 만들어 더 반응이 좋은 광고소재를 선택하는 A/B 테스트를 한다. 또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Tool을 통해 광고효과가 좋았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구글을 통해 광고를 집행했다면 GA(Google Analytics)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과거에는 4대 매체 시대에는 억 단위의 돈이 있어야 타깃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 광범위하게 집행하는만큼 효과도 있었지만 빗나가는 낭비도 많았다. 마케터들은 직감적으로 느끼면서도 확실한 측정 기준이 없으니 속만 태웠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단돈 5,000원만 있어도 광고를 할 수 있다. 물론 디지털 한정이지만, 적어도 과거보다는 보다 세심하게 타깃팅을 할 수 있고 보다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퍼포먼스 마케터는 자사 웹/앱에 오가는 유저들의 행동을 파악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그로스 해킹까지 담당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구매는 하지 않는 유저가 점점 많아진다면 유저가 구매까지 가는 여정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구매하기 버튼이 잘 안보인다든지, 결제 시스템이 불편하다든지, 아니면 경쟁사의 비슷한 상품과 비교하느라 유저가 구매를 안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데이터를 통해서 파악하여 데이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해결한다.


현재 퍼포먼스 마케팅은 애드테크를 등에 업고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과거에는 일일이 광고매체를 찾아다니면서 수동으로 광고상품을 입찰하고 컨트롤 했다면, 이제는 전세계에 자동입찰을 통해 효율적으로 광고하고 분석할 수 있다. 현재는 디지털 매체에만 한정되어있지만, 오프라인 매체와 연동된다면 앞으로는 인간이 광고하는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을 정도로 애드테크의 미래는 밝다.



[콘텐츠 마케터 채용]

콘텐츠 크리에이티브(카피라이팅 및 아트워크)

콘텐츠 제작(이미지 및 영상 편집 툴 활용가능)

SNS 운영 및 관리, 웹/모바일 광고 운영

홈페이지 관리


기업은 소비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기업에서 제공하는 제품/서비스에 대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 일단 관심이 있어야 지갑을 열 가능성도 높아지는 거 아닌가? 과거에는 기업에서 만드는 광고가 소비자의 관심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디지털 매체가 발전하기 전, 별다른 콘텐츠가 없던 시절에는 광고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야, 그 광고 봤어? 엄청 웃지지 않아?'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유명한 광고를 적극 활용해서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물론 누구나 광고를 만들 수는 없었다. 광고제작비는 비쌌고, 광고매체비는 더 비쌌다. TV광고는 돈 많은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포탈사이트가 발전하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황은 비슷했다. 포탈사이트에서 잘 보이는 영역은 TV광고보다는 쌌지만 여전히 비쌌고 더 많은 기업들이 광고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주목받는 광고매체는 한정되어 있었다.


2010년대 중반,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가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콘텐츠에 대한 관심 또한 뜨거워졌다. 모바일 광고비가 TV 광고비를 넘었고 광고의 종말론이 힘을 얻던 시기였다. 이에 대해 콘텐츠가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카드뉴스 만드는 여자의 카드뉴스, 딩고뮤직에서 내놓는 100초로 듣는 가수, 72초TV의 웹드라마, 리뷰왕 김리뷰의 리뷰, 반도의흔한애견샵알바생 등 온갖 콘텐츠가 탄생하고 콘텐츠를 전문으로 다루는 앱서비스도 등장했다. 몇몇 기업은 이들과의 연계를 하기도 했다.


모바일용 초압축 드라마(출처: 72초TV)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발행하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삼성전자 뉴스룸이나 채널 현대카드 같이 브랜드 저널리즘을 표방하면서 컨셉츄얼한 콘텐츠를 내놓는다든지, 배달의 민족의 치믈리에, 배민신춘문예와 같이 기업문화에 기반하여 참여를 이끌어낸다든지, 야놀자나 청하처럼 트렌드에 맞춘 콘텐츠를 내놓는 기업도 있었다. 방식은 다르지만 전부 광고로는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부족하니 콘텐츠로 우회하는 전략이었다.


오늘날 콘텐츠 마케터는 고달프다. 소수의 성공사례만을 기억하며 실무를 압박하는 경영진, 여전히 강력한 광고와의 경쟁, 금방 싫증내는 소비자, 수많은 콘텐츠와의 경쟁. 기업에 채용된 콘텐츠 마케터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SNS의 게시물 뿐만 아니라 포탈사이트 블로그와 뉴스, 앱서비스 게시물, 이메일 뉴스레터, TV방송까지 소비자의 시간을 점유하는 모든 것이 경쟁자다. 유저가 스마트폰, PC, TV를 보는 시간을 적게 잡아 하루 2시간이라 가정하면, 이 2시간 중에서 자신이 만든 기업 콘텐츠가 최대한 많은 비중을 가져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게 콘텐츠 마케터의 업무다.


콘텐츠 마케터를 채용하는 많은 기업이 크리에이티브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만 착각한다. 이미지나 영상편집툴 다룰 줄 아는 사람 데려왔으니 외주제작비 들일 일은 없고, 나머지는 아이디어 짜내서 멋진 콘텐츠가 나오길 기대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성공하는 콘텐츠는 대부분 개인의 자유로운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기업에서 한 명이라도 콘텐츠 마케터를 통제하고 아이디어를 검열하는 순간 크리에이티브는 죽는다. 게다가 지속적인 맥락 없이 이리저리 컨셉을 바꾸면서 복권 당첨되듯이 단숨에 빵 터지는 결과만을 바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진정한 크리에이티브는 실수를 용인하는 환경과, 한번 시작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힘에서 나오는 결과값이다.  


제작 인프라도 문제다. 광고영상 제작비가 비싼 비유는 기획, 시나리오, 콘티, 연출, 촬영, 조명, 편집에 단계별로 전문가가 투입되기 때문이다. 훈련 받지 못한 콘텐츠 마케터는 단계별 전문력이 없기 때문에 외주 제작사의 퀄리티를 이길 수 없다. 게다가 장비 또한 문제다. 비싼 장비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특히 돈 아깝다고 장비 아끼면서 퀄리티 높이라고 주문하는 경영진이 제일 꼴불견이다. 어떤 스타트업 대표가 요즘 스마트폰 화질 좋다면서 카메라도 안 사주고 고품질 영상을 요구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한숨부터 나왔다. 경영진이 제작 인프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콘텐츠 마케터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쓰러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 마케터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제작뿐만 아니라 브랜드 기획에서부터 매체 운영까지 콘텐츠와 연계된 직무까지 맡게 되면 그 전문성이 얕아진다. 따라서 현재 기업 내부의 콘텐츠 마케터가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이미 알려져 있는 콘텐츠 유형을 카피하거나 매체에 맞는 간단한 이미지와 영상 정도를 만드는 수준이다. 심지어 만든 콘텐츠를 광고매체로 운영하는 퍼포먼스 마케팅까지 직무에 포함된다면 콘텐츠 마케터의 역량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경영진이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깊고 크리에이티브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콘텐츠 마케터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브랜드 마케터 채용]

브랜드 전략 수립 및 브랜딩 캠페인 진행

브랜드 이슈 관리 및 커뮤니케이션 기획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A부터 Z까지 진행

대행사/매체사/제작사 관리


브랜드 마케터는 얼핏 브랜드 매니저와 비슷한 어감을 가지고 있지만 산업 특성상 직무가 구분된다. 브랜드의 상품기획부터 가격, 유통, 프로모션까지 4P를 아우르는 브랜드 매니저는 산업군으로 볼때 P&G나 LG생활건강처럼 소비재 영역에서만 유효하다. 브랜드 마케터는 상품기획이나 가격, 유통이 아닌 프로모션에만 집중한다. 이렇게 4P의 관점으로 볼 때는 브랜드 마케터가 좁은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브랜딩의 관점으로 본다면 브랜드 마케터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만약 과거 대기업에서 ATL을 담당했던 마케터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해서 브랜드 마케터, 콘텐츠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가장 업무관련성이 높은 브랜드 마케터가 적합하다. 실제로 초기 스타트업의 브랜드 마케터는 대부분 광고대행사 AE, 대기업 ATL마케터 출신 경력자들이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스타트업이 대규모 투자를 받으면 TVC를 중심으로 IMC를 집행하면서 이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확장 측면에서 투자금을 광고비로 쓰는 게 틀린 선택은 아니지만 이것만으로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로 쿠팡, 티몬,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가 대규모로 광고를 집행해서 모바일 쇼핑시장이 확장되었지만 광고를 통해 얻은 인지도가 브랜드 충성도로 이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브랜드가 아닌 저가격으로 선택되는 소셜커머스 시장에서 쿠팡이 앞서가는 이유는 광고가 아닌 아마존을 모방한 유통 전략 덕분이다. 투자금을 대규모의 유통허브를 만들고 로켓배송을 강화하는데 쓴 덕분에 같은 가격이라도 '이왕이면 쿠팡'이라는 반응을 시장에서 조금씩 얻고 있다.


배달 업계는 어떤가? 배달의 민족의 브랜딩은 광고만으로 보기에는 굉장이 넓고 깊다. 광고 이전에 크리에이티브를 낼 수 있는 창조적인 환경과 독특한 기업문화로 내부고객(직원)에게 먼저 브랜딩을 했기 때문에 광고 뿐만 아니라 치믈리에, 배민신춘문예 등 다양한 활동이 일종의 맥락을 형성하여 배달의 민족만의 이미지가 된 케이스다. 최근에 대규모 TV광고를 한 마켓컬리도 광고하기 전부터 강남주부의 충성도를 탄탄하게 받는 스타트업이었다. 대규모 광고로 브랜드를 만드는 건 제조업 시대의 공식이지 지금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


마켓컬리의 브랜드 광고, 전지현을 기용하여 고급감과 재치를 적절하게 표현했다. (출처: 마켓컬리)


사실 브랜딩은 창업할 때부터 시작되어야 하지만, 앱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은 처음에 '퍼포먼스 마케터'를 채용했다가, 성장하면서 '콘텐츠 마케터'나 '브랜드 마케터'를 채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회사가 세팅된지 한참 뒤에야 브랜드 정체성을 '억지로 명문화하고 비주얼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브랜딩에 대해 지식이 없는 창업자는 한참 뒤에야 이런 문제를 깨닫는다. 예전에 쓴 글 '왜 브랜딩을 '시작'한다는 말이 안타깝게 들릴까?'에서 언급했듯이, 브랜딩은 창업하는 순간부터 이미 자동재생이다. 다행히도 요즘은 많은 성공사례와 실패사례가 공유되면서 스타트업만의 브랜드 마케터 직무가 새롭게 재정의되고 있다.


4.

서두에서 밝혔던 고도화를 통한 세분화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분화되기 전 원형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퍼포먼스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 '브랜드 마케팅'의 뿌리는 무엇일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직무의 본질을 살펴보면 정답을 찾을 수도 있다. 보통 기업이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질문을 해결해야 한다.

 

1단계 Why     왜 이 제품/서비스/브랜드가 존재해야 하는가?

2단계 What    무엇을 말할 것이며 무엇으로 표현할 것인가?

3단계 How     어떻게 전달하고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은 어떤 산업에서도 예외가 없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1단계의 의문을 풀면 브랜드 차별화를 기획하는 첫 단계가 된다. 브랜드 정체성을 정의하면서 타깃 사용자와 고유가치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2단계에는 이 가치를 타깃에게 어떤 메시지로 전달해야 효과적일지를 고민한다. 여기서는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며, 메시지의 형태가 영상일지 이미지일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일지가 결정된다.


기업 비전, 브랜드 가치 등 1단계는 수많은 정의를 표현해야 한다. (출처: 카카오)


마지막 3단계에서는 메시지를 어떤 매체를 통해 전달할지를 고민한다. 이미 1단계와 2단계에서 정한 의사결정에 맞춰서 예산에 따라 매체를 선정하면 된다. 지금 우리에게 적절한 광고 매체가 TV매체인지, 인쇄매체인지, 디지털 매체인지, 디지털 매체라면 SNS인지 포탈사이트인지 아니면 애드테크를 통해서 적절한 매체를 실시간으로 자동입찰할 것인지를 정한다.


놀랍게도 '브랜드 마케터', '콘텐츠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3단계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전통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직무는 현재에 이르러 브랜드 마케터로 발전했고, 디지털 마케팅 직무는 콘텐츠 마케터와 퍼포먼스 마케터로 발전했다. 단계별 직무를 내주로 하거나 외주로 하더라도 누가 하냐의 차이지 직무의 내용은 바뀌지 않는다.



앱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은 투자받는 상황에 맞게 마케팅을 하다보니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기획 과정의 역순으로 직무를 분할할 수 밖에 없었다. 대기업에 맞추어진 기존 TV광고 중심의 IMC는 스타트업에게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의 생존이 급한 상황인데 이들에게 브랜드 마케팅을 할 여유는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내 생각은 다르다. 브랜드 마케팅은 여유 있을 때 하는 게 아니라 필수적인 직무다. 인건비 때문에 처음에 담당자가 없다면 대표라도 이 직무를 계속 수행해야 한다. 광고를 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 브랜드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지 그 차별적인 핵심 요소를 찾아내어 명문화하고 이를 내부와 외부에 알리는 작업을 작아도 꾸준하게 해야 한다.


내 기억에 따르면 '퍼포먼스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업계에서 부상하게 된 시기는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였다. 201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포탈사이트의 키워드 광고와 디스플레이 광고를 담당하던 담당자들이 퍼포먼스 마케터 1세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 포탈사이트는 TV를 완전하게 대체하지는 못했지만 구글의 등장으로 판세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비교할 수 없이 압도적인 구글 애드워즈의 효율성과 정확성, 유튜브와의 연계, 리마케팅의 활성화, 그리고 구글 애널리틱스는 마케팅의 근간학문을 인문학에서 통계학으로 바꿔놓았다.


TV광고도 퍼포먼스를 따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GRP(시청률), CPRP(시청률 상승단가), Reach(타겟노출효과), Frequency(반복노출) 등의 광고수치 개념이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어디까지나 매체사의 논리였다. 얼마나 많은 마케터들이 '그래서 광고해서 매출에 얼마나 기여했어?'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진땀을 흘렸던가? TV광고가 매출뿐만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선호도와 얼마나 직결되는지에 대한 상관관계는 지금까지도 풀 수가 없다.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애당초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콘텐츠 마케터 역시 기존의 광고 위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진 결핍을 메꾸기 위한 대안이다. 지금까지 기업이 타깃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 주로 사용했던 방법이 광고였다면, 지금은 콘텐츠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 목차를 의미했던 콘텐츠는 지금 시대에 와서 카드뉴스, 웹드라마, 팟캐스트, 굿즈, 캐릭터, 공연, 리뷰 등으로 확장정의되었다. 과거에 광고에만 집중했던 크리에이티브가 콘텐츠라는 이름을 얻어서 그 영역을 공식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왜 공식적이냐면 과거 매스 커뮤니케이션 시대에도 캠페인을 운영하면서 광고 뿐만 아니라 각종 굿즈나 책, 공연 등으로 확장하는 사례가 있었다. 단지 이런 파생적인 활동이 '콘텐츠'로 정의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SKT 생활의 중심 캠페인에서 탄생한 현대생활백서. 핸드폰 관련 에피소드 수십 개를 엮어서 만든 책이다.


콘텐츠 마케터의 직무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What에 해당하는 제작물 제작이고, 이는 원래 전통적으로 외주의 영역이었다. 매체가 TV, 라디오, 신문, 잡지에 한정되어있을 때는 집행 방법도 복잡하고 아날로그적이었으며 비용이 비쌌을 뿐더러 광고제작비도 만만치 않았다. 이 고비용을 감수할 수 있는 대기업 위주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고, 이들조차 제작자들을 주로 외주로 썼다. 대기업이라도 매일매일 광고할 수는 없으니 굳이 인건비 들여가며 내주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때와 달리 지금은 SNS가 중요한 소통채널이다. 굳이 광고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알릴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클릭 한번이면 바로 업로드할 수 잆는 편리한 세상이다. 경영관점에서 본다면 매번 외주비를 지불하느니 콘텐츠 제작능력이 있는 인력을 내주화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아웃소싱의 영역이었던 제작자들을 품게 되니 그냥 제작자라고 하기보다 콘텐츠 마케터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었다. 과거와 달리 마케터가 이제 포토샵이나 영상편집을 전문적으로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5.

이런 직무 구분이 전문화를 촉진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면모가 세 가지 정도 보인다. 첫 번째로 맥락의 부재다. 원래는 하나의 팀이나 한 명의 담당자가 맡았던 Why-Whay-How의 기획단계가 사람별, 팀별로 쪼개지면 업무 자체도 분리되어서 기업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파편화되어 자칫 기획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전체의 맥락을 볼 줄 모르고 자기 일만 아는 담당자들이 늘어나면 업무가 덜그덕거린다. 당장 상품기획자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나뉘어져서 생기는 갈등을 되새겨보라. 이들을 통제할 제대로 된 디렉터가 부재한다면 업무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직무세분화가 깊어질수록, 소통장애도 높아진다.


런 맥락을 잡아주고 유관부서를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대표적인 직책이 CMO(Chief Marketing Officer)나 CBO(Chief Branding Officer)지만 불행히도 짧은 한국 마케팅 역사상 브랜드부터 퍼포먼스까지를 두루 파악하고 있는 디렉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여기에는 퍼포먼스 마케팅이 워낙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것도 한몫 한다. 하루만 지나도 새로운 마케팅 관련 기술이 나오는 세상이다.


제대로 된 디렉터가 없다면 이제 퍼포먼스 마케터는 브랜드를, 브랜드 마케터는 퍼포먼스 마케터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고 안타깝게도 이미 이런 현상은 기업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랜드 마케터와 퍼포먼스 마케터가 광고를 보는 관점은 매우 다르다. 브랜드 마케터에게 광고란 브랜드의 가치와 톤앤매너를 담아야 하고, 이를 표현하는 크리에이티브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영상 하나를 만들 때 수십억 원이 들더라도 필요하다면 쓸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보다 대중적인 관점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타깃을 세분화할 때도 보통 성별, 연령, 라이프스타일 등으로 구분한다.


반대로 퍼포먼스 마케터에게 광고란 운영하고 있는 디지털 채널에 타깃을 끌어오는 수단이다. 끌어올 뿐만 아니라 수익까지 구현한다면 금상첨화다. 타깃 세분화도 브랜드 마케터보다 더 정교하고 세분화되어있다. 숫자를 중시하고 ROAS를 KPI로 삼는 퍼포먼스 마케터 입장에서 광고영상 하나에 수억 원을 들이는 건 굉장한 낭비다. 브랜드 측면에서 만든 광고는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브랜드의 가치나 이미지를 메시지로 삼지만, 퍼포먼스 측면에서 만든 광고는 당장에 혹할 수 있는 이벤트나 프로모션을 메시지로 삼는 경우가 많다. 어떤 퍼포먼스 마케터는 소재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숫자'만 보기도 한다.


콘텐츠 마케터 입장에서도 스마트폰 하나로 영상 만들 수 있는 시대에 무슨 큰 돈을 들여서 영상을 만드냐고 브랜드 마케터에게 뭐라고 할 수도 있다. 브랜드 마케터는 콘텐츠 마케터나 퍼포먼스 마케터를 보고 '브랜드도 이해 못하는 것들이 무슨 마케팅을 한다고...'라고 혀를 찰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벌써 이런 현상은 실무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소재에 무슨 돈을 그렇게 들이는거냐!!! vs 소재가 이상한데 매체 돌려봤자 뭔 소용이냐!!!


다행히도 이런 간극을 해결하기 위한 'Branded Performance Marketing'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브랜드의 톤앤매너를 담되, 정량적인 혜택을 반드시 포함하는 방식이다. 가장 최근의 성공사례로는 초특자 야놀자 캠페인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야놀자가 '초특가 브랜드'로 인식되는 게 장기적 관점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캠페인만 놓고 본다면 훌륭한 수확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초특가를 메인으로 하는 크리에이티브에서도 정량적 혜택을 반드시 넣어서 퍼포먼스 마케팅의 소재까지 고려했다. 실제로 야놀자는 이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 인식 면에서 여기어때를 완전히 추월했다.


야놀자는 초특가를 메시지로 삼되, 초특가의 혜택을 같이 포함하여 균형을 맞췄다. (출처: 야놀자)


두 번째로 직무세분화는 각 분야별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기업이 효율적으로 적합한 인재를 구하는데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직무간 이동을 제한한다는 단점이 있다. 개발자도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로 나누고, 디자이너도 시각과 산업으로 나누면서 전문화가 깊어졌지만, 그만큼 다른 분야로 넘어가기 힘든 깊은 계곡을 만들어버렸다. 마찬가지로 원래 하나였던 마케팅도 4P로 나뉘어지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도 오프라인, 온라인으로 나뉘고 다시 여기서 브랜드, 콘텐츠, 퍼포먼스로 나뉘는 상황이다. 마케팅이 고도화될 수록 이런 전문적 세분화는 점점 심화될 것이다.


"저는 브랜드, 콘텐츠, 퍼포먼스 다 익히고 CMO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인생을 네 번 살면 돼."


나만 해도 스타트업 업계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아마 브랜드 마케터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업계의 기준일 뿐이지, 그렇다고 콘텐츠 마케팅이나 퍼포먼스 마케팅을 아예 내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필명 브랜드부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나는 브랜드를 좋아하고 브랜드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부분에 대해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메시지를 담는 광고/콘텐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이 소재가 어떤 매체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느냐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브랜드 마케터와 구별되는 콘텐츠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가 존재함으로써 마치 브랜드 마케터가 콘텐츠와 퍼포먼스 분야에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다. 나는 브랜드를 만들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직무로 삼은 마케터로서 브랜드 마케터로 불리는 건 괜찮지만, 그렇다고 다른 분야에 전문성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건 사양한다. '브랜드 마케터니까 퍼포먼스 쪽은 약하겠네요?'


앞으로가 더 문제다.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취업준비생은 취업을 위해 특정 분야만 공부할 것이고, 다른 분야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일하는 마케터도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얼마 전에 후배가 전화해서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퍼포먼스 마케터를 해야 하는지, 브랜드 마케터를 해야 하는지 고민이라며 어느쪽을 공부해야 할지 물었다. 나는 기가 막혀서 후배에게 쏘아붙였다.


마케터가 마케터지,
그렇게 나누는 게 말이 되냐?


나도 안다. 그 후배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꼰대 같은 말이었다. 현실은 내가 말한 내용과 역행하고 있고, 당장 취업해야 하는 후배 입장에서는 기업이 제시한 기준에 맞출 수 밖에 없다.


한때 마케팅과 광고가 동일시 되던 시대가 있었다. 제조업이 최고였던 때였고 TV광고가 최고의 매체였던 시대였다. 광고 하나가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럴 때마다 마케터는 광고 에이전시의 전문성에 의존해야 했다.


광고캠페인 하나로 브랜드를 전국구 스타로 만든 e-편한세상(출처: e-편한세상)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매체의 영향력은 쪼개져서 최고의 매체는 개인별로 모두 다르다. 광고한다고 소비자가 예전처럼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에이전시에 넘어갔던 전문성도 브랜드사가 흡수하여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마케터의 직무는 쪼개졌고 더 세분화될 것이다. 직무세분화의 세 번째 단점은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시각이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다. 직무범위가 좁아질수록 전문성은 높아질지 모르나, 부서이동은 물론 직무이동도 어렵다. 꼼짝없이 기업이 만든 틀에 갇혀서 일해야 할 판이다. 퍼포먼스 마케터가 경력 쌓아서 퍼모먼스 마케팅 임원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마케팅 역량을 가지기는 어려우니까.


결국 직무의 본질 파악이 답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퍼포먼스 마케터와 퍼포먼스 마케팅을 이해하지 못하는 브랜드 마케터는 절름발이 마케터다. 성장하려면 전문성 뿐만 아니라 큰 그림을 상상하고 볼 줄 알아야 한다. 마케터는 기업의 의사소통을 통해 브랜드의 차별화를 관리하며, 제품/서비스가 팔리는 구조를 만드는 직무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이다. 브랜드 마케터로 분류된다고 해서 그 틀에 갇혀버리고 나머지 업무는 나몰라라 하면 결코 성장할 수 없다. 기업이 정하는 틀을 벗어나 나의 능력을 파악하고 그 뒤에 나만의 직무를 찾아나서는 게 우선이다.


일부에서는 브랜드 마케팅 vs 퍼포먼스 마케팅의 대립구도를 만들어 선택하는 프레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되었다. 두 개념은 대립이 아닌 공존의 개념이며, 원래는 하나였다. 마케터는 팔리는 구조를 만드는 직무다. 이를 위한 치우침 없는 균형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일부 기업들이 트렌드에 맞춘답시고 이색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SNS 채널 조회수 늘리기에 열중한다면 당장은 성과가 좋을지 모르나 진정 브랜드를 위한 일인지 자문해봐야 한다. 브랜드의 본질은 유지한테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맥락을 어떻게 쌓아갈 것인지, 메시지는 어떻게 전달할 것이며 그 와중에 내주와 외주는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사고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전문화도 좋지만 본질은 놓치면 안 된다. 디지털 마케팅 전략, 콘텐츠 마케팅 전략, 바이럴 마케팅 전략, 유튜브 마케팅 전략이 아닌 '마케팅 전략'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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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랜드 부스터

- 가끔 요리하고 글 쓰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남자.

- 본능적인 욕망을 추구하며 날것의 언어를 사랑하는 기획자.

- 종합광고대행사의 AE였다가 브랜드 마케터로 전향한 직장인.

- 세상을 브랜드로 이해하며, 브랜드 부스팅 전략을 탐구하는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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