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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Feb 13. 2024

그는 나를 모른다 3

하지만 나의 기다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일주일이 넘도록 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손 놓고 가만히만 있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했고 조금씩이라도 레벨업이 됐다. 레벨업의 크기만큼 자신감도 커져서일까. 오늘은 혼자 미노타우로스를 잡을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기 없는 게임답게 고랩이 될수록 유저수가 줄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며 만나던 유저도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게임 속에서 오며 가며 만나는 사이였으니 적당한 거리감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다 다시 체리콕이 생각났다.


‘내가 부담스러웠던 걸까? 번호라도 물어봤었으면 이럴 때 편했을 거 같은데.’


왜 진작에 개인적인 궁금함을 물어보지 못했을까 생각이 들며 아쉬움이 커졌다. 그러던 차에 보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위기에 몰려 죽기 직전이 되었을 때 거짓말처럼 그가 나타났다. 어쩌면 그녀일 수도.



보스를 퇴치한 후 거짓말처럼 그의 전화번호를 얻고 만나기로 약속까지 했다. 장소는 홍대 KFC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로 약속까지 하고 나니 조금 더 욕심이 생겼다.


‘후회하지 말고 물어봐.’


마음속에서 용기를 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체리콕 님. 저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혹시 불편한 질문이면 답 안 하셔도 괜찮은데.”

“네. 혹시. 제가 남자가 맞냐고 물어보려는 건가요?”


어떻게 알았지? 속마음이 들키자 부끄러웠다.


“어.. 맞아요.”

“제가 남자가 아니면 비앙카 님은 실망하겠죠?”

“네? 그럼 혹시 여자신가요?”


나란히 앉아 있는 캐릭터의 말풍선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걸로 봐선 계속 지웠다 썼다를 반복 중인 듯하다.


“여자예요. 혹시 제가 여자인 게 불편하면 굳이 만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세상에! 정말 여자였어? 갑자기 뛸 듯이 기뻤다. 아차. 근데 내가 남자라고는 아직 알리질 못했는데. 내 성별을 알고 나면 혹시 차단당하는 거 아닐까. 기쁜 마음도 잠시 걱정이 더 커졌다.


“아니요. 어쩌면 체리콕 님이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어요.”

“정말요? 어떻게요?”

“대화를 나누면서 감수성이 뭔가 남자보다는 여자에 가까울 거 같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솔직히 여자였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어요.”


쓰고 나서 채팅이 올라오기만 바라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다행이다. 그럼 우리 만나도 되겠네요?”


다행이긴 한데 나에 대해서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만 해.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여자행세하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왠지 이상한 변태 거나 취향을 가지고 있는 걸로 생각할 것만 같았다.


“혹시 비앙카 님은 남자?”


머릿 속에서 뭔가가 뚝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히려 게임이라 얼굴 표정이 들키지 않아 다행이다. 결국 망설이다가 실토했다.


“맞아요. 미안해요. 제가 일부러 여자인척 한 건 아니고. 게임할 때 여성 캐릭터로 하는 게 습관이다 보니..”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꼬인다. 그냥 모든 게 끝났구나. 차라리 성별을 말하지 말걸.


“알고 있었어요.”

“네?”

“저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우리 여기까지만 말해요.”


‘그렇구나. 끝이라는 얘기구나. 그럴 수 있지. 당연한 일이야.’라며 체념하기 시작할 때 다른 글이 올라왔다.


“직접 만나서 얘기 나눠요. 궁금해요. 그럼 오늘은 이만 자러 가요. 내일모레 만나요. 시간은 저녁 5시 맞죠?”

“어? 네네. 그럼 그때 봐요.”


[체리콕 님이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 아니 그녀도 날 만나고 싶어 하다니. 그리고 내가 남자일 거라는 것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상상만큼 달콤하지만 위험한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체리콕 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앞서가는 마음을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하는데. 그래도 이틀 뒤면 만나게 된다. 조금만 참아 보자.



회사 일을 하면서도 만날 생각에 마냥 지루하지는 않았다. 빨리 시간이 흘러 데이트가 하고 싶다. 데이트라고 표현하다니. 뭐 상관없지 않나? 그나저나 무슨 옷을 입어야 하지. 문득 옷장에 있는 옷을 떠올려 보니 마땅히 입고 나갈 만한 옷도 없다.


‘퇴근길에 옷 좀 사야겠어.’


인터넷에서 [데이트할 때 입기 좋은 옷], [여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친 룩] 등으로 검색을 해서 살펴봤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보이는 패션인데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어서 고민이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목 늘어난 티셔츠나 칙칙한 옷을 그대로 입고 갈 수도 없고. 미리미리 관심 좀 가졌어야 하는데. 그래도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내일 만나는 것도 저녁 시간 때이니 홍대까지 조금 더 일찍 나가서 옷을 사도 괜찮다.


‘그래. 차라리 오늘은 머리를 좀 다듬자.’


어떤 만남일지도 모르는데 괜히 혼자만 설레서 이러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혹시 또 모르잖아? 이상형의 그녀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 즐거운 상상과 함께 내일의 만남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만나면 저녁을 먹긴 해야 할 텐데. 식사 정도는 사야겠지?’


생각난 김에 맛집 리스트도 미리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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