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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Feb 29. 2024

그는 나를 모른다 9

한 잔만 마시겠다던 그녀는 어느새 연거푸 3잔을 추가로 마셨다. 이대로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 데낄라가 벌써 떨어져쒀여?”

“아니 저.. 체리콕 님.. 혀가 꼬이는 거 같은데요.”

“에이 아니에요. 저 술 쒜여. 봐요! 벌써 이렇게 마셨지만 멀! 쩡! 하잖아요? 하하핫. 앙카 님. 앙카 님이라고 할께여?”

“네에.”

“즐겨요. 오늘 같은 날 아니면 언제 이렇게 술을 마셔요? 안 그래여?”


묘한 기분이다. 첫날부터 이렇게 망가져도 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귀엽다. 젠장. 얼굴이 이쁘니까 뭘 해도 다 좋게 보이는구먼!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


“그래도 이제 그만 마셔요. 너무 취했는데 우리 이제 밖으로 갈까요?”


정신을 차리려는 듯 그녀는 자기 뺨을 찰싹찰싹 몇 번 때리더니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물.. 물 좀 주세요! 목이 말라서. 아흐.. 제가 좀 취했죠? 이런이런. 미안해요 앙카니임. 사실 제가 속이 너어무 상해서 그만. 흑흑. 회사 생활도 재미없고.. 오래 사귀었던 남자친구랑도 헤어지고 되는 게 없어여.”


‘이번에는 우는 거야? 제발..’


울다 웃다 오늘 아주 눈물의 똥꼬쇼.. 아니지 흠흠. 그녀에겐 너무 저속한 표현이다. 그래도 오늘 아주 놀라움의 연속이랄까. 그래도 남자친구가 있었구나. 하긴 저렇게 이쁜데 없는 것도 이상하지 뭐. 근데 내 눈에서 흐르는 건 땀인가. 차마 여자친구가 있어본 적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 근데 연애 문제라면 자신이 없는데.. 상담해 줄 정도로 뭘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잠시 생각하고 있는 사이 그녀가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가게 안 사람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저.. 체리콕 님. 왜 왜 그러세요. 진정 좀 하시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휴지 들고 옆으로 이동해 보자.


“자. 여기 휴지요. 진정하세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에서 보면 이럴 때 등을 토닥이던가? 어색하게 한번 시도를 해봤다. 하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오히려 그녀에게 자극이 된 건지 그녀의 상태가 더욱 나빠지는 거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망했다. 그녀가 더 크게 울려고 시도하는 거 같다. 젠장.


“흐흑 미안해요 앙카 님. 눈물을 안 흘리려고 했는데 이게 조절이 안 되는.. 뿌앙.”


울던 그녀가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소설 속에서 숨이 멎을 뻔했다는 표현이 굉장히 상투적이고 실망스러운 비현실적인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기 시작해 몸에 이상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느껴졌다.


“앙카 님. 심장이 엄청 빨리 뛰네요. 소리가 장난 아닌데요? 우와. 심장 소리 대단한데요?”


어느새 울음을 그친 그녀가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듣고서도 내 심장을 제어할 방법은 도저히 못 찾겠다.


“어.. 으아.. 그게. 잠시만 떨어져 주실래요? 제가 너무 긴장해서.”

“아! 저 때문에요? 정말? 푸하핫. 와! 내가 이뻐요? 이쁘죠? 꺄핫.”


이제는 내가 울고 싶다. 이 여자는 지금 분명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의 감정 상태를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웃었다 울었다 이제는 희롱까지 한다. 그 와중에 떨려하는 나도 제정신은 아니겠지.


“아.. 안 돼요.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으면 제가 너무 떨려요.”

“왜요? 그럼 조금 더 붙어 있어 봐야지.”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내 품으로 더 파고 들어왔고 나의 당혹스러움은 최고치를 향해가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 그런 우리를 보고 키득 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더 이상 흥미가 떨어졌는지 돌아선 사람도 있었다. 남의 눈보다도 스스로가 걱정이다. 처음 보는 남자의 뭘 믿고 이렇게 바짝 다가와서 스킨십을 하는 것인지. 그나저나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설마 장난치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아닐 거야. 체리콕 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 마음속에서는 수십 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어지러울 따름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럴 때 남자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심장이 너무나 쿵쾅거린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뛸 수도 있구나를 오늘 처음 깨달았다.


“으아아.. 힘들어요 힘들어! 자꾸 이러면 저 못 참아요!”

“안 참으면 되잖아요?”

“에? 네에?? 뭐 뭘요..?”

“못 참으시겠다니까 그럼 안 참으시면 된다고 한 건데요.”

“아니 그게.. 그런 게 아니라.. 아아아아아.”

“푸하핫. 농담이에요 농담. 에이! 이제 재미없다. 자 떨어졌어요. 짠.”


술이 좀 깬 건지 어느샌가 그녀는 다시 생긋 웃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심장의 두근 거림이 심상치 않다. 이대로 쓰러져 버리면 어떡하지? 괜한 걱정이겠지.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어.. 어?”

“앙카 님? 앙카 님! 앙카 님!!!”


점점 다급하게 날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 어떻게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은 드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뭐지? 뭐야. 피곤하고 어지러워. 나 죽는 건가? 저 죽나요? 아니 뭐야.. 어느샌가 정신이 사라졌고 내 기억도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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