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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r 03. 2024

서울행 3

졸다 깨다 반복하기를 여러 번 한 후 마침내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플랫폼에 주차된 차에서 내려 캐리어를 꺼내 터미널 밖을 나서자 환하게 트인 광장이 펼쳐졌다. 광장 너머 도로에는 정체에 가까울 정도로 수많은 차가 어지러이 보인다.


’도착했어!’


혼자서 그렇게 꿈만 꾸던 서울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벌써 잘 된 것만 같았다. 꿈이라는 게 현실이 되는 그 순간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앱을 켜서 받아 놓은 고시텔 주소를 치고 대중교통을 체크했다.


’40분 정도 더 가야 하는구나.’


대학교와 숙소는 강북 쪽에 위치해 있어 다시 이동을 해야 했다. 그래도 서울에 도착해 이동하는 내내 피로함보다는 신기함과 행복함이 더 컸다. 짐을 너무 많이 싸왔을까. 캐리어 무게가 조금씩 버겁게 느껴진다. 버스를 기다려 탔을 때 앉을자리는 없었다. 


’차라리 지하철 탈걸.’


최단 거리만 믿고 탄 게 실수다. 결국 이리저리 부대끼며 여러 사람의 눈총을 받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 내 캐리어를 잡아줬다.


”여기 앉아요.”

”감사합니다. 이러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난 곧 내리니까 아가씨가 여기 앉아서 가요.”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주머니에게 감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첫 시작부터 쉽지 않구나. 본격적인 서울 생활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조금은 지치는 느낌이다.




예정 시간보다 20분 정도 더 걸려 겨우 숙소를 찾았다. 고시텔이 생각보다 외진 골목 안에 있어 찾는데 시간이 허비됐다. 도착한 입구에서 허름한 고시텔의 모습을 보고 실망감이 들었다.


’무슨 기대를 한 건데? 여긴 집이 아니잖아.’


애써 실망스러움을 감추며 짐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기로 했는데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름을 얘기하고 계좌번호를 받았다. 


”이쪽으로 입금하시면 되세요.”


잠시 폰과 계좌번호를 번갈아가며 보다 손으로 입력을 끝마쳤다.


”입금 확인됐어요. 안내해 드릴게요.”


주인아주머니의 안내를 받고 방으로 이동했다. 긴 복도를 사이로 촘촘히 방이 있었다. 각 방에는 비밀번호로 된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 생각보다 구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여기에요. 비밀번호는 문자로 넣어놨으니 한번 확인하세요. 기본적인 규칙도 공유해 놨어요. 그래도 간단히 소개해 줄 테니 일단 짐부터 넣어놔요.”

”네.”


무거웠던 캐리어를 방에 집어넣으며 잠시 구조를 살펴봤는데 정말 방 하나가 끝이었다.


”좁긴 좁죠?”

”그러네요.”

”나중에 욕실 있는 방으로 옮기고 싶으면 미리 예약해 놔요. 거기는 인기가 좋아요. 나오기가 무섭게 빠진다니까.”


욕실 있는 방은 10만 원이 더 비싸다.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건데.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 여기가 공용 거실. 해 먹고 싶은 요리 있으면 해 먹으면 되고. 라면이랑 밥은 기본 제공되니까 먹을 만큼 이용하면 돼요. 여기서 지내는 사람들 아가씨처럼 다들 대학생 아니면 지방에서 온 사회 초년생이 많아요. 비슷한 또래 일 테니 마주치면 사이좋게 잘 지내고요. 우리 집에서 잘 돼서 나간 사람이 엄청 많으니까 아가씨도 그렇게 될 거야.”


뻔한 안내에 예상한 멘트였지만 그래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제부터는 여기가 지낼 곳이구나.’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데 먼저 가봐도 될까요?”

”그래요. 공용 화장실은 저쪽 끝에 가면 있으니 거기로 가요. 그 옆은 샤워실이고. 우리가 다른 데랑 다르게 화장실 하고 샤워실을 분리해 놨어요. 이런 곳 또 없다니까.”


빠르게 인사를 드린 후 아주머니의 셀프 칭찬을 뒤로하고 화장실로 이동했다. 마음 같아선 방으로 먼저 들어가고 싶었지만 내뱉은 말이 있으니. 그렇게 서울에서의 첫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삶도 특별히 다른 건 없었다. 고향이나 여기나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동일했다. 그래도 내가 선택해서 사는 삶의 터전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은 좋았다. 어느덧 서울에서 지낸 지도 3개월이 넘었다. 입학과 동시에 내게 펼쳐진 삶은 행복이기는 했지만 색깔로 치면 회색빛이다.


서울에 살며 통학하는 다른 동기를 보며 저런 평범함이 내게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도 생겼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내 일상과 그의 일상은 다르다.


”채원아. 오늘 학교 끝나고 놀러 갈래?”

”아.. 쏘리. 나 알바 가야 해서.”

”아.. 그래? 같이 놀러 가면 좋을 텐데. 1학년인데 너무 바쁘게 사는 거 아니야? 우리가 그동안 수능 준비하느라 고생한 세월이 있는데.”

”그러게. 다음에 꼭 같이 가자. 알잖아 나 서울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가본 데가 별로 없는 거.”

”아.. 맞다. 그래. 힘내고. 파이팅!”


나라고 저들처럼 안 놀고 싶은 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가보지 못했던 곳에 구경도 가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삶인데 벌써부터 후회하면 안 된다. 아직 갈 길이 멀단 말이야.


그렇게 수업이 끝나면 그때부터 제2의 삶이 펼쳐졌다. 운 좋게 숙소 근처의 편의점 알바를 구했다. 같은 날 나를 제외하고도 10명 정도가 일자리를 노렸었다고 한다. 고작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 일 뿐인데도 경쟁률은 대단했다.


’힘들 게 얻은 잡이니 절대 그만둘 수 없어.’


편의점 알바는 주중에만 하고 있는데 이걸로는 생활비 마련하는 것도 급급하다. 공부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해 학업은 주로 새벽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목표는 장학금. 장학금을 놓친다면 추가로 일을 더 구해야겠지.


그렇게 한 학기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목표했던 학점에 겨우 턱걸이해서 장학금 자격이 주어졌다. 학비를 20% 정도 내긴 해야 했지만 이것도 어딘가 싶었다.


한 학기를 보내는 동안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초반에 말 걸어주던 동기도 이제는 내가 어색한지 긴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함께 하자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주말에는 그래도 짬을 좀 낼 수 있는데..’


아니다. 내가 목표한 서울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해. 남들처럼 살아서는 절대 남아 있을 수 없단 말이야. 애초에 시작 지점이 다른 만큼 똑같은 노력만 해서는 서울에서의 삶은 포기해야 했다. 여기까지 와서 이럴 수는 없다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다음 학기.. 그리고 다음 학년. 이렇게 몇 년을 보내야겠지? 그 뒤에. 그리고 다음은 어떤 삶이 준비되어 있는 걸까?’


현재 해야 할 일은 보이지만 몇 년 뒤의 미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는 건 사치일까?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열어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쉽사리 전화를 걸지 못했다. 나의 무거움을 덤덤히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서울에 왔지만 내가 바라던 서울의 삶은 한없이 멀기만 하다. 과연 내가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왠지 비좁은 집안에 있다 보니 생겨나는 망상은 아닐까 싶어 바깥으로 나가 한 바퀴 뛰고 오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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