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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r 09. 2024

그는 나를 모른다 10

“으.. 으..”

“정신이 들어요?”

“으.. 여기가 어디예요?”


일어나려고 했는데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 데다가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억을 강제로 떠올려 보려 하는데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비앙카 님. 괜찮아요?”

“아? 체리콕 님? 아야..”

“엇! 누워 있으세요. 아까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쳐서 피가 살짝 났거든요.”

“네?”


살짝 기억이 돌아왔다. 맞아. 아까 원인 모를 어지러움 때문에 갑자기 쓰러졌던 거구나. 그 뒤로는 당연히 기억에 없겠지. 그나저나 체리콕 님이 날 여기에 데려온 건가.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아.. 기억났어요. 제가 기절했군요. 미안해요 체리콕 님.”


미안하다는 말 밖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 말을 듣고 안심해서일까? 갑자기 그녀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어? 아니 갑자기 왜 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전 앙카 님이 혹시 잘못될까 봐..”


큰일이다.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하는데. 뭐라고 둘러대지.


“제가 실은.. 지병이..”

“지병이요?!”


아. 말아먹었다. 하필 지병 드립을. 몰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해.


“아 그게.. 심한 건 아닌데. 술을 많이 마시면 가끔 블랙아웃이 생길 때가 있어요. 병원에서도 주의하라고 했었는데. 체리콕 님하고 너무 죽이 잘 맞아서 그만 오버했네요. 그러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말아요. 이거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아야!”


하지만 머리랑 골반 쪽이 아프다. 대체 어디를 어떻게 부딪쳤길래. 그나저나 간호사나 의사는 없는 건가?


“다행이에요. 근데 저도 재밌긴 했어요. 전 비앙카 님이 쓰러지길래 첨에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진짜로 기절하셔서 너무 놀랬어요. 급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다행히 바에 있던 직원이 119 신고해줘서 올 수 있었어요. 어떻게 부모님이나 다른 분한테 연락드려야 할까요? 그냥 제가 보호자라고 해버렸는데..”


보호자? 잠시였지만 아픔을 잊고 그녀가 평생 내 보호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X놈! 이 와중에도..’


“제가 혼자 생각 좀 해봤는데.. 혹시 비앙카 님은 혼자 살아요?”

“네에. 자취하고 있는데.. 그건 왜요?”

“아! 이상하게 듣진 마시고요. 왠지 제 탓인 것만 같아서.. 괜찮아질 때까지 제가 간병이라도 해드려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괜찮으시다면요. 간병이라고 하니까 이상하긴 한데. 이게 맞나? 하아.”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파악도 못했는데 갑자기 간병을 해주겠단다. 그렇다면 이건 무조건 OK 해야지! 뭔진 모르겠지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기회인 건 확실하다.


“헛.. 안 그러셔도 되긴 하는데. 만약 체리콕 님만 괜찮으시면 마음 편하게 행동하셔도 되세요.”


갑자기 그녀가 이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혹시나 내 흑심이 들킨 거 같아 심장이 조여왔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으음.. 그래요. 전 어차피 주 3일만 출근하면 되니까. 재량 껏 재택 신청도 가능하고요. 저 때문에 다치신 거니까 괜찮아질 동안 봐드릴게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드러낼 수는 없지. 하지만 정말 기쁨이 마음속에 충만해졌다. 마치 신이 나를 위해 꾸며 준 판인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함께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같이 티링도 할 수 있잖아? 엄청난 장점이다. 타자로 채팅하는 대신 목소리로 실시간 채팅이 가능하다.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함께 있으면 티링도 같이할 수 있겠네요. 사냥터도 같이 나가고? 벌써 기대가 되네요.”

“티링이요? 흠.. 저기 앙카 님.. 아프신 거 맞죠? 아픈 사람이 게임 타령이나 하고..”

“아.. 아야..”

“뭐예요.”


어이가 없었는지 그녀랑 난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때마침 의사도 나타났다.


“비앙카? 비앙카 님? 뭐야. 누가 이름을 이렇게 써놨어?”

“저.. 그게 전데요.”

“네?”


어이가 없다는 듯 의사가 쳐다본다.


“아.. 그거. 제가 이 분 이름을 몰라서 그만..”

“휴.. 이게 뭡니까? 이름 좀 제대로 얘기해 주세요. 어떻게 입원이 된 건지. 나중에 꼭 정정해 주시고요.”

“네..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김푸름이라고 합니다.”

“푸흡..”


그녀가 내 이름을 듣고 웃을 때 의사가 째려봤다.


“죄송합니다.”

“휴.. 김푸름 님. 일단 응급 상황이라 조치부터 취했는데 크게 다치신 건 없습니다. 다만 머리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 증상에 따라서는 뇌진탕 증상이 의심될 수 있으니 그런 경우가 걱정되시면 바로 검진요청을 해주세요. 그리고 넘어진 부분은 무방비 상태로 넘어져 타박상이 있는 상태라 한동안 좀 아프실 거 같습니다. 오늘은 맞고 있던 링겔만 맞고 퇴원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소 예민해 보이는 의사였지만 상황 자체가 어이없었을 거 같긴 하다. 


“푸름 님이에요?”

“아하하.. 네. 이름이 좀 웃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귀여워서요. 마치 만화 캐릭터 이름 같잖아요.”


말하면서도 그녀의 입 주위가 씰룩 거린다. 애써 웃음을 참나보다.


“그냥 웃으셔도 되는데..”

“아? 그런 게 아니.. 푸핫. 미안해요.”


설마 귀여운 거에 약한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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