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성프리맨 Apr 30. 2024

그냥 써 보는 이야기 7

"아들~ 넌 크면 아빠처럼 살지 마라.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 딴짓하지 말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반복했던 얘기를 또 꺼낸다. 술이 문제다 문제야.


"크으~ 공장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아마 넌 상상도 못 할 거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네 어미.. 그래 돈도 벌어다주고 집에서 살림만 하라고 했는데도 집을 나가버렸어어~ 망할 놈의 세상 같으니라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놓고 누구보다도 제일 열심히 방해 중인 우리 아빠를 어쩌면 좋을까. 당연히 힘드시겠지. 나도 알고 있다. 내년이면 고3인데 그 정도도 모르려고.


근데 내가 여자였어도 아빠처럼 저러고 있으면 꼴도 보기 싫을 거 같긴 해. 그래도 그렇지 엄마는 진짜로 집을 나가? 나도 있고 동생도 있는데 우리 생각은 뭐 하나도 안 하는 거야?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밉긴 하다. 뭐 엄마라도 행복을 찾아 이 집을 떠났으니 잘한 건가?


아빠는 그 후로도 1시간 정도 술 마시면서 고래고래 노래도 부르다가 다시 목놓아 엄마를 찾기도 하고 마지막엔 뻗어버렸다.


굴러다니는 소주병 너머로 쓰러진 아빠를 보자 한편으로는 짠해 보이기도 하네. 그래.. 뭐 아빠도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을 택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난 절대로 아빠처럼은 안 살 거야.




[10년 후]


"알았어요. 아니 안 갚는다는 게 아니 고오!!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니까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엇! 에이씨!!"


아니 뭐 누가 월세 안 내겠대? 며칠 늦어지는 거 가지고 엄청 뭐라고 그러네. 뭐 사람일이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안 그래?


쾅쾅쾅-


"아 뭐야!?"

"월세 안 낼 거면 당장 나가! 이게 벌써 몇 달째 밀린 거야? 사람이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너 보증금도 다 깠어!! 어쩔 거야?"

"시끄럽게 굴면 경찰 부른다? 좀 혼자 있게 냅둬요. 누가 안 갚는데? 시간을 조금만 달라니까 엄청 보채네."


쾅쾅쾅-


"아 몰라 법대로 해요 법대로!!!"

"말 잘 꺼냈다. 그래 법대로 할 테니 어디 두고 봐."


하아.. 아빠처럼은 안 살 줄 알았는데. 바닥일 거라 믿었던 내 삶은 지하를 뚫고 싱크홀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최소한 아빠는 빚은 지고 살지 않았었는데 투자한답시고 괜한 짓 하다가 대출도 있는 데로 끌어 써버렸다.


빚만 -9000만 원. 일을 해봤자 강제로 차압당하는 형편이니 의욕도 생기질 않는구나. 이번 생은 정말 망해도 단단히 망했다.


'휴.. 몰라. 이대로 살다 안되면 죽어야지 뭐 별 수 없잖아.'


쾅쾅쾅-


"아씨!! 왜 또 왔어요?"

"류재준 씨 되십니까?"


처음 들어보는 목소린데. 뭐지?


"누구.. 세요?"

"서부경찰서에서 나온 김강우 형사입니다. 혹시 류재오 님 자제 분 되실까요?"

"네.. 맞는데 잠시만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문을 열었다.


"류재오 님께서 교통사고를 내셨습니다. 본인 말로는 급발진이 있었다고 주장하시는데.. 그건 업체 측 검사결과를 받아봐야 알 거 같고. 아버님께서는 6중 추돌 사고의 가해자십니다. 인도로 걸어가던 모자지간으로 추정되는 시민 두 명은 중상을 입었고요."

"네???"

"같이 좀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바로 가야 하나요? 제가 급한 일이 좀 있는데."

"오늘 중으로 방문은 가능하실까요?"

"최대한 그래보겠습니다."

"꼭 오셔야 합니다. 심각한 사건이니까요."


아니.. 내가 사고 냈냐고. 아빠가 낸 거 아니야? 왜 나한테 이러는데??


"알겠어요. 갈 테니 시간 좀 주세요."

"늦어도 좋으니 꼭 오세요."


하아.. 내가 간다고 뭐 뾰족한 수가 생기나? 그러고 보니 다쳤냐고도 못 물어봤네. 뭐 멀쩡하니까 별말 안 했겠지. 설마 사고 낸 거 비용까지 내가 다 덮어쓰는 거 아니야? 지금 빚도 감당 안되는데.


미치겠네. 몰라 일단 잠이라도 좀 자두 자고. 어제도 게임하느라 한숨도 못 잤잖아. 도통 잠이 와야 말이지. 그때 눈에 들어온 수면제 그리고 미지근하게 식어 있는 소주 반 병.


"잠부터 좀 자고!!! 더러운 세상!! 출발선부터가 다른 걸 어떡하라고!!!"


입안 가득 수면제를 물고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컥- 커억- 퉤!


사래가 걸렸는지 터져 나오는 기침소리에 맞춰 아무렇게나 입안에 들어갔던 수면제가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그런데 나 지금 너무 피곤하거든. 정말 잠이 필요해. 아무 생각도 못하겠단 말이야.


바닥에 떨어진 수면제를 다시 집어 입안에 넣고 남은 소주를 벌컥 들이마셨다.


꺼어억-


좀.. 어지러운데???


머리가 빙글빙글. 빙글빙글. 하핫? 뭐야 여기가 어디야? 하늘? 기분 째지는데!! 이 상태라면 늘어지게 잘 수 있겠어. 캬하핫!!!


얼마 만에 달콤한 잠에 빠지는 건지.. 우리 집에 폭신한 침대가 있었던가? 왜 이렇게 아늑하지?


눈이.. 스르륵.. 눈이.. 스르륵.. 감. 겨.




"얘!! 학교 가야지!!!!!!!!! 얼른 일어나 늦겠다!!"

"으..??"

"뭐 해! 일어나 어서!!"

"뭐..? 엄마? 엄마야??"

"뭐 하는 짓인데? 엄마 놀려? 진짜 늦었으니까 빨리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가."

"어.. 엄마~~ 보고 싶었어!!"


뭐지.. 갑자기 엄마라니? 이거 꿈인가? 방금 전에 수면제 먹고 잠들었는데?


"징그럽게 다 커서 얘가 왜 이래애? 옴맘마?"

"으앙... 보고 싶었어요. 나 몇 살이야? 지금 여기 우리 집이야?"

"아니 진짜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안 좋은 꿈을 꿨나. 초등학교 6학년이잖아! 재준아 진짜 왜 그래?"


초등학교 6학년? 내가 스물일곱이니까.. 14년 전..? 정말? 정말이라고?? 빚도 없고 월세 걱정 안 해도 되고?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살던 그때란 말이야?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머머? 재준아? 너 어디 아픈 거야 정말? 이마에 열은 없는데.. 병원 가볼래?"

"아니야 엄마. 나.. 지금이 너무 좋아서 그래. 진짜야 나 괜찮아요. 엄마 어디 가지 마."

"내가 가긴 어딜 가.. 오늘 참 이상하다 너어."


그래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지금부터 다시 정신 차리고 살면 돼. 그러면 다시 정상궤도로 진입할 수 있어. 분명히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그래 난 꼭 해낼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써 보는 이야기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