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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l 03. 2024

만약은 만병통치약이 아니기에

54 걸음

"만약에.. 20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가시겠습니까?"


설령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다한들 난 돌아가지 않을 테다. 


20대. 풋풋하고 찬란한 인생의 황금기. 그때는 허리 아픈 걱정도 없었고 재밌는 것 투성이에 작은 것에도 쉽게 감동받았었지. 그런데도 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모두가 비슷한 듯 하지만 많이 다른 각자의 20대를 보냈을 거다. 내 20대도 별다를 건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 존재했던 수많은 20대가 그러했듯 정신 차려 보니 30대가 되었고 어느새 40대가 되었다.




20대로 돌아가기 싫은 첫 번째 이유‼️


지금은 외롭지 않다.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운 감정이 사라졌다는 건 아니다. 다만 20대의 난 늘 초조하고 불안했으며 애정결핍증을 심하게 앓았다. 오히려 중2병이 20대가 돼서야 찾아온 탓일까. 지독한 외로움 속에 빨리 안정적인 내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특유의 미숙함으로 절던 느낌이 싫어서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20대엔 부족함 투성이었다. 스스로 뭐가 부족한지를 잘 모르다 보니 어디서부터 개선해야 할지도 몰랐다. 주변에 조언 구할 사람은 없고, 그저 불안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힘들게 만들었다.


다음 이유는 20대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분명 사회적으로 학습된 루트에서의 하고 싶은 일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는지를 묻는다면 '글쎄요..'라고 할 수밖에.


문과적 성향을 원했지만 이과를 선택해야 했고, 역시나 밥벌이를 위해 현실적인 기술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골랐다. 물론 그중에서도 나랑 잘 맞는 직업을 고를 수 있던 건 행운이었다.


시간이 지나 현실적인 배고픔이 조금씩 사라지자 내 속에 감춰져 있던 것들이 뒤늦게 나타났다. 혹자는 거짓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분명 프로그래밍이라는 직업은 천직이었다고 써놨으니까.


이루고 싶던 꿈 중 하나가 맞긴 하다. 그때의 감정을 부정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돈을 벌어 자립하기 위해 후천적으로 강요된 것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사람이 등 따시고 배부르면 망각하는 법이라던데.]


맞다. 지금 등 따시고 배부른 상태여서 돌아가기 싫은 거. 더 이상 치열한 현장 속에서 부딪치지 않아도 되고 그토록 꿈꾸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만들어진 탓도 있다. 애써 의미 없는 감정소모를 할 필요도 없으며 문과적 소양도 원하는 만큼 쌓을 시간이 주어졌다.


20대의 결핍된 상황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 졌다. 당연하게도 그 시기를 거쳤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지만 좋은 시절이었던 것과 별개로 많이 힘들었던 탓이다.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큰 아이는 어느새 앞자리가 바뀌어 10대가 되었다. 태어나서 조그맣게 숨을 헐떡이던 그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0대라니.


문득 아이의 10대에서 나의 10대가 보였다. 과연 난 내가 싫어했던 10대의 모습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면도 없잖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로이 커가도록 두고 싶지만 부모인 이상 약간의 욕심이 생길 때가 있다. 도덕과 관습이라는 틀에 대한 강요가 될 수도 있고 미래 설계에 관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


가족으로 만난 우리 사이를 아이는 어떻게 간직하고 기억하게 될까. 지금의 순간들을 좋았다고 생각하긴 할까?


20대로 돌아가기 싫다고 외치는 내 모습을 보며 아이도 그러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시절을 잘 보내는 것과 돌아가고 싶다며 상상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였다.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대하는 게 아이를 위해 좋은 일일지는 잘 모르겠다. 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해서 그게 아이를 위한 길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아이들은 20대가 될 것이고 나는 50대가 되어 있겠지. 그리고 아이의 20대를 보며 나의 20대를 떠올리게 될 거라 생각한다. 그때도 여전히 20대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같은 답을 하고 있을까?


확답은 못하겠다. 40대라는 나이는 보통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간 정도로 보는 편이다.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의미지 무조건 중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내게 중간이라 함은 특별히 모난 게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크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상황. 20대는 기복이 심했다. 좋을 때는 한 없이 좋다가도 나빠질 때는 끝을 모르고 침잠하던 시절.


달리 말하면 예측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불확실성을 감당하기엔 내 성향이 유약했다. 그래서 40대의 난 20대의 삶이 부럽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 삶은 분명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느낀다. 하나하나 꼽기는 힘들지만 정서적으로 안정된 느낌이 주는 편안함도 무시 못하겠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흘러 50대가 되고 60대가 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장담 못하겠다. 어쩌면 지금의 40대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지. 결국 50, 60대가 되어 지금의 마음을 유지하려면 그때도 지금보다 어떤 면에서든 성장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의 내게 만족하고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40대가 된 내게 있어 그 어떤 목표보다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이 다가오는 그날이 마침내 다가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령 후회가 생기더라도 약간만 생기기를.. 마지막까지 삶의 모든 순간을 아름답게 보냈다며 미소 지을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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