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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l 02. 2024

친구 없는 남자는 무슨 낙으로 살까?

53 걸음

오늘의 글로 인해 부디 안쓰럽게 보지 않아 주길 바라며.


쓰다 보니 참 별 얘길 다 쓰게 된다. 내가 글을 쓰게 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친구가 없어서다.


"친구 없는 사람만 글 쓰나요?"


그럴 리가. 그냥 내가 그럴 뿐이다. 원래부터 친구가 없던 건 아니다. 특히 20대 때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전성기였다. 상당히 내향적이면서도 이상하게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정확하게는 많다고 생각했던 거지만.


당시엔 친구 없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안 됐다.


'대체 어떤 인생을 살면 친구도 없는 거냐 쯧쯧..'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혀를 차던 그 사람이 바로 나였네? 하하. 친구가 없다는 게 정말로 친구가 없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이건 대체 무슨 말인고 하니.


오래된 친구가 있기는 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거의 만나지 않는다. 가끔 채팅이나 톡. 좀 더 나아가 화상으로 얘기하는 정도. 특히 결혼 이후엔 그 빈도가 더 낮아졌다. 그래도 몇 년 주기로 보는 게 낯설거나 어색하진 않다. 그 정도는 이해해 주는 사이랄까.


"뭐야! 아예 친구 0은 아닌 거잖아요!! 배신자 같으니라고!"


그런데 그게 그거다. 진짜로 평상 시엔 0에 가까우니까.




친구가 없게 된 덴 내 성격도 한 몫한다. 원체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걸 잘 못한다.


우리 부부는 전통혼례를 했다. 보통은 외국인+한국인 커플일 경우 전통혼례를 많이 하는데 아내의 소원이기도 해서 그냥 그렇게 하게 됐다.


그런데 그때부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어쩌면 약간이 아니었나..?


1. 가마꾼 4명이 필요했다.

2. 신랑 측 하객..


처음으로 깊은 시름에 빠져들었다. 시름이 어찌나 깊은지 시름시름 앓게 되었고.


"그걸 개그랍시고.."

"쉿. 다음에 잘해볼게요!"


전통혼례 입장에 앞서 가마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지게를 들어줄 4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처음에 든 생각은 '그냥 비용내고 들면 되는 건데 왜 물어보는 거지?'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 보통은 그게 신랑님 친구분이나 친척이 도와주거든요."

"아하! 그렇군요."


망했네. 친구 없는 사람은 전통혼례도 못하는 건가.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직원분은 독심술을 힘껏 발휘해 말을 이어갔다.


"하하.. 괜찮아요. 인당 5만 원씩 해서 20만 원만 내면 됩니다!!"

"뭐예요! 20만 원?? 오빠!! 친구 없어?!"


'어.. 없어..'


눈만 꿈뻑였다. 진짜로 도와줄 친구가 없었으니까. 내 기준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는 건 그야말로 대 민폐. 설령 도와주더라도 그 미안함을 어떻게 감당하라는 말인가.


"아후 답답해. 이럴 때 서로 돕기도 하고 하는 건데! 뭐 하고 살았엇!"

"일만 하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다행히 아내의 지인과 친척의 도움으로 겨우 통과. 한숨 돌렸다. 그러자 다시 두 번째 시름이 찾아왔다.


솔직히 난 결혼식 하객을 왜 고용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내가 그 당사자가 되자 십분 이해가 됐는데. 보기랑 다르게 난 몇 대째 독자였고 그래서 친가로 친척이 없는 상태였다. 여기에 추가로 친구도 없었다. 물론 철판 깔고 어떻게든 뿌린 축의금 회수하겠다며 여기저기 보냈으면 어찌 됐을지 모르겠다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강요하듯 누군가를 불러낸다는 게 마뜩지 않았다. 결국 초대할 지인이 많지 않아서 단체사진이라도 찍게 되면 얼마나 비참해 보일까부터 시작해 갖은 상상이 떠오르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저기.."

"왜? 그리고 내 이름이 저기야? 똑바로 안 할래?"

"그러니까.. 나 하객 알바 20명만 써볼까?"

"뭐!? 제정신이야?? 하.. 이 인간이 진짜."


단칼에 거절당했다. 진짜로 당시 아내의 눈빛은 마치 치즈 훔쳐 먹다 걸린 쥐를 노려보듯 살기 어린 눈빛이었달까.


'이대로 하객 알바 고용한다면 날 어떻게 해버리겠구나.'


패기에 질려서 더 이상 알바고용은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래도 내심 결혼 날짜가 다가오니 불안하고 초조했다. 대인관계에 실패한 아싸 남편의 본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게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결혼식 당일]


"자 이제~ 친구와 지인분들 앞으로 나오세요! 사진 찍겠습니다!"


기적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평소 그렇게 회사 험담을 열심히 해댄 나였는데 회사의 임직원 분들이 대거 결혼식에 출동해 주신 거였다. 거기다 연락도 제대로 못했었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와 줬는지 몇몇 친구와 전 직장 동료까지 와줬다.


많이 비어보일 거라 생각했던 사진은 여러 사람의 도움 끝에 한 장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식을 끝내고 몇 달 뒤 난 보란 듯이 퇴사했다. (...)


[지금 와서 다시 얘기하자면 그때 와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철도 없고 경황도 없어서 일일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못했는데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있다는 거 꼭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운 흑역사로 끝나리라 고민했던 것과 달리 무사히 결혼식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하나 깨우친 게 있다. 누군가의 경조사에 되도록이면 참여하게 되었다. 원래는 큰 친분이 있을 경우에만 갔었다면 결혼식 이후로는 타인의 맘이 내 맘처럼 느껴져 빼지 않게 되었다. 피치 못해서 못 가게 되면 축의금과 함께 인사라도 꼭 전했다. 결혼식이 사람하나 만든 거다.


물론 친구가 보여주기 식으로 행사 있을 때 필요한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살다 보니 피치 못한 상황도 생기더라. 이것도 핑계라면 핑계인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한텐 그랬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나란 사람은 누군가에게 부탁도 잘 못하고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도 몇 날 며칠을 혼자 속앓이를 하며 보내곤 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는 어떤 기분일까.. 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상상 속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 대화의 끝은 항상 걱정에 걱정이 더해진 최악의 상황으로 떠오른다.


여전히 아내는 친구 없는 남편을 보며 한숨 쉴 때가 많다. 하지만 최근엔 그 마저도 좀 괜찮아졌다. 왜냐고?


아내를 아무도 없는 강원도 고성이라는 곳에 끌고 왔기 때문이다. 강제로 아내의 지인과 친구를 섬멸시켜 버렸다. 그 후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반 강제로 내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결국 처지가 똑같아지고 나야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하하.


"이상한 소리 쓰면 가만 안 둔다."


아차차. 친구가 없는 가장 큰 이유 하나를 뺄 뻔했네. 그건 바로.. 사실 내가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을 너무 사랑해서다.


굳이 누군가를 만나 대화의 꽃을 피우지 않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는 지금의 삶에 만족도가 상당하다. 그러니까 처음 썼던 것처럼 날 너무 안쓰럽게 보지는 말아 주길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내 글을 읽어주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찡긋) 비록 핑퐁 없이 단방향의 내 이야기만 쓸 뿐이지만 당신이 읽어준다는 그 느낌, 시선 하나 만으로도 나의 외로움도 우주 저편 어딘가로 사라지곤 한다.


앞으로도 많이 많이 읽어주시고, 아껴주시고, 조언해 주시고, 댓글도 남겨 주시고, 관심도 가져주시고.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아부의 말을 끝으로 오늘의 글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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