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걸음
나만의 버킷리스트.. 뭐가 있을까.
죽기 전에 경험해 보고 싶은 소망 목록 100가지에 대해 적어볼까?
'귀찮아‼️ 버킷리스트 같은 거 적을 시간에 밀린 일이나 하라고.'
그러기를 벌써 몇 해째인가. 영화나 애니의 주인공이 버킷리스트를 겪는 과정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간접 경험은 실감이 난다 해도 결코 내 것은 아니니까.
재직 당시엔 퇴사만 하면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해봐야지 했건만. 막상 퇴사하고 공백이 생기는 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어서 배부른 고민은 늘 뒷전이었다.
'이번엔 어쩔 수 없잖아. 이직하는 곳에서 빨리 출근해줬으면 하는데 어쩌겠어. 다음번엔 조금 더 여유 시간을 가지자.'
'다음번?'이라. 내 평생 그런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았다. 평범한 직장인에 비해 이직 경험이 꽤나 많은 측에 속하지만 가장 긴 휴식을 취해본 게 2주일 정도였던가. 그마저도 2주 쉬는 동안 불안함이 커졌었다.
'아 빨리 출근해서 적응하고 싶다~!'
막상 출근하고 나면 좀 더 쉬지 못한 걸 아쉬워하고 쉬고 있으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악순환의 반복이라니.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의 굴레인가.
여기서 하나 언급하자면 버킷리스트를 계속 미뤘던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소망은 늙지 않으니까!]라는 생각.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이 먹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내가 바라는 소망은 늙거나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항상 지켜주리라 생각했다.
'언제고 자유의 몸이 된다면 그때 노력해도 되겠지.'
하지만 소망도 변할 수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 취미 중 하나는 게임 모으기였다. 장르를 불문하고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게임을 열심히 하드에 모아서 CD에 굽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언젠가 은퇴하게 되면 모아 놓은 게임 하나씩 도장 깨기 해볼 테다!"
그토록 바라던 소망은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니게 됐다. 이제는 게임을 하는 것에서 큰 만족감을 느끼지 않는다. 특히 흘러간 세월과 함께 내게 기쁨을 주었던 게임들은 어느새 구식이 되었고 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릴 적에 재밌게 봤던 책도 많았다. 특히 집에 꽂혀 있던 이름 모를 단편집이나 한시 같은 걸 읽으며 무료했던 그 어느 날을 감성 충만하게 보냈었다.
"대단한 이야기들이잖아! 이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뭐라도 써야겠어. 지금은 말고 나중에."
'나중에~'라는 건 이뤄질 수 없는 클리셰와 같은 것일까?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 독서 감상문이라도 남기는 노력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하지 않았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고 이제는 그때 읽었던 게 뭔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다. 다만 어렴풋이 기억만 남아있을 뿐. 그래서 후회한다. 그때부터 쭉 썼다면 지금 쯤은 덜 고통받으며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고 같이 해보자고 하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인연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환경이 바뀌더라도 뜻이 맞는 한 우리는 함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디어를 언제쯤 구체화시켜보면 좋을까?"
이구동성으로 지금 당장 해보자며 우리는 터뜨리기엔 이른 축배를 기울였다. 각자의 할 일을 나누고 계획을 세우고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는 기정사실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정말로 그랬다. 우리의 아이디어가 세상에 선보이기만 하면 게임체인저가 될지도 모른다며.
지속하기엔 우리 모두가 너무나 바빴다. 난 나대로, 그는 그대로, 저이는 저이대로. 갖다 붙이면 생기는 게 이유라지만.. 다들 속한 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머릿속에 핑계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너무 하기 싫은데. 좀 한가할 때 하면 좋겠는데.'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얼굴에는 드러나는 것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도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우리는 그렇게 암묵적으로 프로젝트를 보류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함께하기로 했던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니 후회되는 순간뿐인 것만 같다. 소망은 변하지 않거나 항상 제자리에 묵묵히 있어주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걸 지나고서야 알게 됐다.
'할 수 있을 때 했어야 했어.'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서 겨우 터득한 인생의 진리. 아니지. 아직 덜 살았으니 함부로 진리라고 표현해서는 안 되겠지.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운이 굉장히 나쁘다고 해야 할까.
요즘은 청소년 시절 꿈꾸던 글을 쓰고 있고 쓸 생각으로 하루를 채우는 중이다. 10대 때 고민하고 망설이던 글쓰기를 40대가 되어서야 다시 붙들게 되었다.
하루하루 글을 채우다 보니 어느 날엔가는 불쑥 욕심이 생겼다.
'장편소설 한번 써볼까?'
당연하게도 쓰지 않을 이유부터 수십 가지가 바로 생겨나더라. 이래서 쓰면 안 되고 저래서 안되고. 나중에 좀 더 나이 먹고 쓰면 어떻겠냐는 둥. 나도 참 나스럽다. 몇 십 년이 지났건만 어째서 변한 게 이렇게도 없는지.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두려움]이었다. 남 앞에서 망신당할까 봐 두려웠고, 욕먹을까 봐 두려웠고, 한심하게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두려움이라는 게 참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을 땐 신경도 안 쓰이는데 한번 신경 쓰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엄청나게 커진달까?
두려움 앞에 난쟁이처럼 작아진 내가 보였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 언제나처럼 접으면 편해질 테지. 하지 않는다 해서 누가 손가락질할 것도 아니고. 그래서 포기하려 했는데 10년 뒤의 내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50대가 된 나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오후 오랜만에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소설을 하나 읽고 있다. 얼마 만에 가슴을 뛰게 만드는지 다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내 모습을 돌아보고는 슬퍼졌다.
'나는 왜.. 써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뭐라도 써봤으면 조금은 삶이 변해있지 않았을까?'
소설을 쓴다는 건 평생 해본 적 없이 꿈만 꿔온 미증유이기에 50대가 된 난 여전히 마음이 괴롭다.
충분히 학습되고 쌓인 40여 년간의 빅데이터가 내게 말했다.
'지금 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해질 거야.'
얼마 전에 봤던 유튜버 궤도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물이 들어올 거라는 기대도 안 해. 어차피 물이 없어도, 나는 긁어서라도 간다 땅을. 그런 생각이었어. 그동안 항상 노 젓고 있는 너에게 드디어 물이 들어오니 네가 앞으로 나가는구나.]
그렇게 첫 번째 버킷리스트 장편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