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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l 09. 2024

부끄러움은 언제나 내 몫이다.

58 걸음

회사가 내게 줬던 가장 큰 장점은 뭐였을까?


[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머니머니해도 머니‼️


’그게 전부야?’


돈.. 중요한데.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분명 있었다. 연봉이 낮을 땐 적어서 대부분의 불만이 발생했는데 어느 정도 연봉이 오르자 그 뒤부터는 오른 연봉 때문에 무서웠다.


이직을 하더라도 지금 받는 것보다는 올려서 가고 싶은데. 면접을 잘 보더라도 연봉 때문에 분위기가 반전되는 경우도 꽤나 있었다. 설령 인상을 해준다고 해서 이직하더라도 돈으로 만족할 수 있는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거액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걸요?”


그러려나. 뭐 거액 제안을 받아본 적은 없으니.




회사를 나오고 나서 깨달은 다른 장점이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그건 바로 [죄책감]이 들지 않게 해주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죠??”


알게 모르게 학교 과정을 끝마치고 나면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며 경력을 쌓아야 한다고 배웠던 거 같다. 그게 꼭 학교만도 아닌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에게 직간접적으로 듣고 배웠던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루트는 좋은 학교를 나와 남들이 다 알법한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것. 혹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것. 분명 행복하고 훌륭한 삶으로 나아가는 엘리트 코스 같은 느낌이다.


뭐..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는 이 정도를 엘리트 코스로 칭하는 사람이 많았으니 자연스레 내 기준에서의 최상위 기준은 이렇게 정해졌던 거 같다.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죠.”


내 경우는 엘리트 코스로의 진입은 애초에 시작도 못해서 그저 그런 루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들에게 얘기해도 “그게 무슨 회사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번듯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럴 능력이 없거나 기회가 무산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속은 편했다.


취준생을 선언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며 매번 탈락을 했는데 그때마다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닝겐.’


누가 뭐라고 한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빠져서 깊은 싱크홀로 숨어 들어가고 있었다.


’면접은 봐서 뭐 해. 또 떨어지겠지.’


실패도 누적되다 보면 점차 익숙해진다.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사회생활 때문에 힘들어하던 또 다른 아버지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너는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 고리를 끊는다는 건 역시 쉽지 않구나.'


그토록 닮기 싫었던 모습이었는데.. 어느새 아빠와 닮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자취를 따라 동질화되어 가는 내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해요?"

"정말요?"


어둠처럼 길었던 터널의 끝을 지나 첫 취업을 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했지만 결국 해냈다.


'드디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았어.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거라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또한 큰 착각이었지만 당시 합격 후 분비된 도파민은 치사량을 넘어섰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감히 누군가에게 얘기를 꺼낼 정도의 자신은 없었으니까. 감춰야 했다.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부모님께 만큼은 당당할 수 있었다. 언제나 내 마음 한편을 무겁게 만들던 일말의 죄책감도 덜어졌다.


남들 하는 것처럼 평일에 일하고 지친 몸에게 주말 동안 휴식을 제공했다.


'비로소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구나.'


회사는 내 하루를 좌지우지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며, 정해진 기간 동안 반드시 해내야 될 미션을 제공했고, 노동에 대한 돈을 지불했다.


백수의 삶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잠식당하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밀려오는 공허함을 느낀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유쾌하지 않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어느 순간부터 왜곡되기 시작한다. 백수여도 삶의 시점은 내가 주인공이기에 어딘가 뒤틀려 있는 채로 바라보곤 했다. 잘 되지 않을 이유부터 찾는 경우도 많았다.


'아아. 자꾸 다른 길로 새지 마란 말이야..'


남한테 자랑하기 힘든 회사여도 그 나름의 안정감을 제공했다.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회사는 그렇게 나의 방패가 되어줬다.




어쩌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비슷한 듯하다. 처음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 회사생활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좀 쉬면서 지내도 되는 거지 뭐."


통장에 돈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즐거웠던 기분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생산하기를 중단하면 곧바로 그에 따른 벌이 따른다.


벌의 형태는 다양하다. 꼭 생활고의 형태만 있는 게 아니다. 그중에서도 정신계 공격이 가장 강력한데 [죄책감]이 그에 해당했다.


[넌 더 이상 쓸모없어.]

[아직 살 날이 많은데 그러고 살 거야?]

[뭐가 그리 잘나서 쯧쯧.]

[남들은 뭐 바보라서 그러고 사는 줄 알아?]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기 시작한다. 그곳을 나갈 수 있는 열쇠는 없다. 애초에 잠겨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끝없이 가라앉는다. 점점 잊혀간다는 두려움도 생긴다. 대체 누군가한테 기억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길래 이토록 두려워지는지. 이전의 삶도 주목받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는데.


[울타리를 벗어난 양은 두려웠습니다.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식사하고, 똑같이 움직이던 무리를 벗어나자 양의 눈엔 더 이상 평온이 존재하지 않았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위험했으며, 두려워해야 했답니다.]


무리에서 떨어진 감각. 사회적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는 죄책감. 질타 어린 시선.


'과연 그 모든 걸 무릅쓰고 이렇게 살아도 될까..'


오랜만에 연락처를 뒤져봤다. 지금의 외로움과 불안을 나눠 가질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며. 한때는 망설이지 않고 연락하던 이였는데. 망설여진다. 뭐라고 인사를 건네지?


결국 주저했고 포기했다. 내 죄책감을 남에게 전가시키려고 하다니. 40대 정도 됐으면 스스로 해내란 말이다.




어느새 회사 밖으로 나온 지 3년 차가 되었다. 정말 눈 깜빡할 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망하지 않았고 죄책감을 이겨낼 방법도 찾았다.


하루에 별다른 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 처음엔 조급한 맘에 이것저것 벌이기만 했는데 수습도 안되고 마음만 점점 쫓겼다. 그리고 세상의 속도도 내가 바라는 속도와는 달리 흘러간다는 걸 배웠다.


어디까지나 급한 건 나의 사정일 뿐이라는 것.


따라주지 않는 세상의 속도를 원망해 봐야 결국 나만 힘들어지고 피곤해질 뿐이다. 중요한 건 내가 세상에 맞춰가야지 세상이 날 따라야 한다는 착각을 버리는 일.


이제는 남이 만들어 준 안정감의 울타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울타리를 직접 가져와 땅에 박고 철조망을 둘러 내가 키우는 양 떼를 도망가지 못하게 지켜야 한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다.


무리에서 벗어났던 양 한 마리가 어느 날 내게 다가왔다.


[메에에에~]

"???"

[메에에~ 메에에에~]

"알아듣게 말하라 양이여."

[메에~ 못해먹겠네. 시간도 많은데 글이라도 좀 쓰라고.]

"??? 말을 하는 양이네? 세상에?? 양이 말을 해???"

[부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그래서 쓸 거야 말 거야?]


글쓰기는 마치 말을 하는 양과도 같은 존재이자 도구였다.


'이렇게 신기한 걸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이걸 안 해?'


내게 쌓인 죄책감을 덜어내기에 글만한 건 없구나.

어쩌면 글을 쓰며 위로하는 게 아니라 받고 있었던 건 아닐까?


뭐가 됐든 상관없다. 이제는 글을 쓰는 하루가 주어지는 것에도 깊은 감사를 보낸다. 내가 향하는 곳이 어디일지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계속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죄책감이 아닌 성취감이 생기는 날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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