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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n 24. 2024

하나만 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49 걸음

'한 번에 하나씩만 하자. 사실 그것도 어려운 일이야.'


40 넘게 살아온 게 벼슬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닌데, 내 삶은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겪어온 것, 느끼고 배운 것, 모든 게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될 중요한 것처럼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때에 따라서는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 조언을 하기도 하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싶어 들썩일 때도 있었다. 그러다 결국 못 참고 와다다다- 내 얘기를 쏟아냈다.


[회사를 다닐 땐 말이야-]

[이직할 때 팁은-]

[집을 산다고? 그렇다면 이걸 한번 참조해서-]


얘기가 길어지기 시작하며 짧게 끝날 말이 30분.. 아니 그 이상 지속됐다. 상대방의 지겨워하는 표정도 모른 채 열심히 떠들었다.


'이건 아니잖아?'


찜찜한 마음은 진작부터 들었지만 잘못된 방향을 돌이키지 못했다. 결국 오늘 일은 두고두고 부끄럽게 기억될 것이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이것저것 올리기 시작했다. 해본 적은 없지만 자신만만했다.


'그야~ 콘텐츠가 넘쳐나기 때문 아니겠어?'


그런 줄 알았다. 굳이 남들이 하는 거 따라 하지 않고서도 나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되레 알아서 잘하고 있는 타계정을 보며 꼰대에 빙의해 혀를 끌끌 찼다.


'에잉.. 저렇게 특색이 없어서야. 남들이 안 하는 걸 해야 진정 의미가 있는 거지. 의미가.'


여전히 나는 다르다고 여겼다.


'내가 만드는 건 특별하고 알 수 없는 이끌림 같은 숨겨진 무언가가 있단 말이지.'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특별한 뭔가를 보여주려면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기라도 해야 했는데. 그러기엔 평범함 그 자체였다. 평범하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단지 스스로를 너무 올려치기 한 것이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서 과거의 기록을 돌이켜보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보여주고자 욕심냈다는 것.


무릇 맛집이라면 자신 있는 시그니처 메뉴가 있거나 특징이 있어야 한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색을 보여주며 누군가를 끌어오려면 특징이 있어야 했다. 단순하지만 그 사실을 간과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난 많이 두려웠나 보다. 하나만 보여주기엔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고 부끄러웠고 그걸 감추기 위해 다른 걸 추가하고. 악순환이 반복됐다.


다양한 재료가 섞여서 맛있게 되는 비빔밥처럼 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결과는 잡탕밥이었다. 맛의 밸런스가 붕괴된 그저 그런 음식.




"요즘 뭐 셀프 디스하기로 마음먹은 건가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글쓰기가 어려울 때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셀프디스 형태로 글을 쓰다 보면 글 한 개가 뚝딱 만들어졌다. (그때부터였어요. 셀프디스를 시작한 건..)


결국 오늘 쓰려던 한 번에 하나씩 보여주자는 주제로 돌아오면 셀프디스도 하나의 표현이 될 수 있긴 한 거 같다. 잦은 셀프디스는 문제가 되겠지만 정말 가끔씩만 써먹겠다고 약속한다.


"흠. 그래서 요즘은 한 번에 하나씩만 잘 보여주고 있나요?"


얼마 안 된 과거지만 확실히 전보다는 욕심을 많이 제거한 거 같다. 특히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때 이것저것 한 번에 많은 걸 때려 넣고 싶었던 욕심이 사라졌다.


반드시 모든 걸 한 화면에 보여줘야 할 필요는 없다. 그래야만 정보가 전달되거나 느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의도라는 건 약간 숨기거나 정제된 나만의 필터 낀 시선으로 보여줄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몰랐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미숙함의 해결은 평생의 숙원이니 차치하고. 하나의 글에서 많은 정보를 또는 이야기를 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번에 풀려다 보면 더 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아니 전 친절하게 쓰고 싶었을 뿐인데요. 이게 그렇게나 잘못한 거였어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친절의 의미를 다시 배워야 한다. 내 기준과 멋에 취해서만 쓰다 보니 사회적 지능이 떨어져 버렸다.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서 생각하고 써보는 연습을 해야 했다. 이 말은 결코 내 색깔을 버리자가 아니다. 버릴 생각도 없고.




결국 욕심을 버리기 위해선 내일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오늘 못 보여준 건 내일 보여주면 돼.'


오늘의 분량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늘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바심은 큰 적이다. 오늘 하루 미친 듯이 달려도 삶이 갑자기 180도 바뀌지 않을 거라 믿는다. (개인 생각입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뚫듯. 꾸준히 떨어뜨릴 만큼의 물방울을 흘려보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창작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길게 바라보자. 하루 이틀 하다 '내 길이 아니네?'라고 생각하지 말고, 기어오르는 욕심도 억눌러가며 한 가지씩만 제대로 해보자.


오늘의 내가 해냈듯 내일의 내가 해낼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어디선가 글을 읽어줄 누군가의 마음에도 그런 나의 바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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