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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n 21. 2024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이를 부부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47 걸음

부재중 전화가 10통 정도 와 있었다.


'어? 전화 올데가 없는데..'


아무리 집요한 스팸 전화도 이 정도로 오진 않는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확인해 보니 역시‼️


'뭐야 일할 때 전화 걸지 말라고 한 건 본인이면서 업무 시간에 나한테 마구 전화를 걸어도 되는 거야? 기강 한번 시게 잡아야..'


3시간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아내는 평소 업무 시간에 바쁘니 전화 걸면 신경질을 낸다. 당연히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기로 계약한 거니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되겠지. 그래서 보통 업무 시간에는 암묵적으로 전화를 걸지 않는다. 급한 사안이 있는 게 아니라면.


10통의 부재중 전화는 충분히 급한 사안임을 느끼게 해 줄 만한 숫자였다.


"습습~ 하아~ 후우~ 하아-"


심호흡을 하며 심신을 안정시킨 후 이윽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딸칵-


"뭐야! 전화 왜 안 받았어!!!! 내가 몇 통화했는지 알아?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아아아아아아악!"

"어..?"

"아아아아아아아악!"


(보통 이렇게 글 써놓으면 아내가 눈을 희번덕 거리며 자기를 왜 나쁘게 표현해 놓냐고 하는데. 절대로 그런 의도가 아니다. 정말이다.)


"뭐 하고 있었어? 왜 전화를 안받았냐고오?!"

"아니.. 그냥 있었는데? 글 좀 끄적이고. 내가 갈 데가 어딨 어."

"그러면 전화를 재깍재깍 받아야지! 이건 신뢰의 문제라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혹시나 이 사람이 쓰러지기라도 한 건 아닐까 별 생각을 다했다고! 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방문 좀 해달라고 해볼까부터 시작해서~ 블라블라-"


입이 떡 벌어졌다. 원래 아내는 전화를 잘하지 않는 성격이다. 정말로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연달아 전화를 거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런 사람이 내게 10통 가까운 전화를 걸었다는 건 진심으로 걱정되었다는 뜻이겠지.


"묘하네..?"

"뭐? 나 일해야 하니까 나중에 (두고) 봐."


끊긴 전화를 잠시 멍하게 바라봤다. 연애가 아닌 결혼 생활 속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새로운 감정.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분명 나한테 뭐라 뭐라 하겠지. 하지만 그런 건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걱정됐구나. 내가 걱정된 거였어.'


기분은 좋았다.


 



[몇 시간 후]


"아니.. 솔직히 말해봐. 뭐 했어? 뭐 하는데 전화를 그렇게 안 받냐고오오오오오오옥! 이야아아아아악!"

"집에 있었다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뭘?"

"오늘 독거하는 사람 나오는 영상 보고 있었는데 다쳐서 혼자 끙끙 대는 모습 보며 안타깝다고 생각했었거든. 만약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 감정이입도 깊이 해보고. 한숨도 괜히 푹푹 쉬고."


적어도 아내가 있어서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아내에게 그런 존재로 느껴져야 할 텐데. 희망과 달리 아내는 내게 큰 기대는 없어 보이지만.


"우리 앞으로 전화하면 꼭 받도록 하자고. 이게 또 이상해. 괜히 걱정되더라고. 평소에 하도 비실 거리니까 그런 거 아냐. 신뢰의 문제니까 그렇게 하자고."

"네."


[부부] 남편과 아내를 의미한다. 요즘은 부부의 정의도 많아져서 꼭 남녀만을 지칭하지는 않게 되었다. 여하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챙겨준다.


누군가 나를 걱정하고 챙겨준다는 건.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특히 지금처럼 개털인 40대 남자에겐 더욱 그렇다.


"기분이다. 외식하러 갈까⁉️"

"돈도 안 벌면서 외식은 무슨 놈의 외시이이이익!"

"데이트나 가자고. 오랜만에."


미묘하게 표정이 변하더니 마지못해 수긍했다.


"휴.. 그래. 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거지. 그렇게 저축도 없고 거지 꼴을 면치 못하겠지만 일단 가자고."

"BTS.. 봉준호우.. 손흥민 우리 함께 레츠-"

"그런 거 하지 말랬지? 언제 정신 차릴 거야. 50되도 그럴 생각이야? 커뮤니티 좀 그만 들어가."


뭐 어떤가. 겸사겸사 데이트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얼마나 좋아. 40대여도 충분히 즐거운 부부 사이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그래도 고마워. 내 안부를 걱정해 줘서. 사.. 사..'


직접적인 표현은 글보다는 말로 표현해야겠다.


"준비 다했어? 가자!"

"아니 맨날 지 몸만 다 꾸미면 끝이지?"


오늘따라 모든 말이 아름다운 새소리처럼 느껴지니 괜찮다.


"기다리라고오오오옥! 재촉 좀 하지 말고 오오오오!"


괜찮다. 괜찮다.. 정말 괜찮다. 외식이 기다리니까 좀만 참자. 잠시만 기다리면 주린 배를 맛있는 음식으로 채울 수 있다. 물론 사진과 영상은 좀 찍고 난 뒤여야겠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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