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걸음
40대.
내가 속해 있는 나이대라서 관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40대가 되기 전부터도 고민이었지만 특히 건강에 관한 노파심이 늘었다.
'어라.. 평소랑 다르게 변에 이게 뭐지?'
조금 더티한 얘기지만 건강에 관한 일이니 조금 설명을 해보겠다.
늘어가는 회사 일 그리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몸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운동과 식습관 개선등을 통해 건강관리도 잘한다고 들었는데 원체 게으른 편인 난 그런 것과는 담쌓고 지냈다.
나이 먹어가는 것과 별개로 내 행동은 여전히 10-20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항상 건강할 거 같고 어제도 그랬듯 오늘도 당연히 멀쩡한 하루가 주어질 거라고만 여겼다.
하. 지. 만! 알게 모르게 내 몸도 녹슬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변에 끈끈한 하얀 것들이 잔뜩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당황했는데 확실한 건 무슨 문제가 생겼을 거 같다는 느낌.
무서웠다. 아버지를 암으로 여읜 상태였어서 더욱 두려웠다. 그래도 일단 귀찮기도 하고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까 싶어 두고 봤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 이상이 지나버렸는데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네.. 병원 가야 할 거 같은데. 혹시 큰 문제 생겼으면 어떡해?'
예전에 아버지도 그랬다. 암이라는 확진을 받기 전에 분명 몸에 큰 문제가 생긴 거 같다는 생각은 들었었다고. 그런데 병원 가서 진단을 받는 게 너무 무서워서 미뤘다고 했다.
'안돼! 설령 암이 생기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눈앞에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내가 잘못된다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한번 시작된 생각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커졌다. 공포심의 크기와 달리 나는 점점 작아졌다. 정말로 그냥 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 묻어놓고 괜찮아 지기를 바라보는 건 어때? 혼자 오답을 찍으며 자꾸 움츠러들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생길 수 있는 질환이죠. 점액질 변이라고 합니다. 이게 심해지면 걱정하신 대로 암까지도 갈 수 있는데 일단 지금으로 봐서는 괜찮으니 관리를 잘하는 게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시경을 찍고 검사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 건강관리를 등한시해 온 게 결국 이렇게 터져버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빠.. 지금부터 건강관리 못하는 건 전부 게으른 오빠 탓이다. 알지? 먼저 떠나서 애들이랑 나랑 생이별하려면 계속 그렇게 살아 ^^"
"아니야. 관리해야지. 꼭 할게!"
라며 여전히 건강관리는 잘 못하는 중이다.
모든 병에 해당하는 건 아니겠지만 일단 유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병은 정말 무섭게 느껴진다. 특히 가족력과 관련된 건 피할 수 없는 인과처럼 느껴지기에 약간만 이상 증세가 느껴져도 그 두려움은 배가된다.
검사를 받은 후에도 점액질 변은 한동안 이어졌다. 정확하게는 퇴사하고 지금 살고 있는 강원도 고성에 정착하기 전까지다.
"지금 뭐 고성 자랑하는 건가요?"
공기 좋고~ 바다도 좋고~ 산도 좋은~ 흠흠. 살기 정말 좋긴 하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자 가족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떠나더라도 아내와 아이가 나를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떤 수단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다양한 후보군이 있긴 했는데 그중엔 영상도 있고 추억 쌓기 그리고 글이 있었다.
'아니 하나만 할 게 아니라 한꺼번에 다해도 되는 거잖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좀 더 집중해서 기록을 남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달까.
[그래. 글이다! 꼭 진지하게 메시지를 남기지 않더라도 가볍게 읽으며 나에 대해 추억하고 우리가 함께했음을 떠올리게 해 줄 수 있는 걸 남기자.]
40대에 들어선 난 그런 의미를 담아 더 글을 쓰고 있다. 비록 주제는 한 없이 가벼워 보이는 것들 일지 몰라도 언젠가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을 위해 마음을 담아 써보는 중이다.
우리가 가족으로 만나 함께했음을 추억하고 싶다.
영원할 거 같은 이 순간도 언젠가는 끝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해 온 힘을 다 써서 생의 순간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의 글은 참 소중하고 값진 것 같다. 그러니 오늘도 힘내서 주어진 이 시간을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