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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n 19. 2024

먹는 것에 예민한 영포티 아저씨의 삶

46 걸음

"취미 있어요?"

"네. 맛집 다니기요."


내가 이렇게 음식점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소비에 특화된 닝겐. 그리고 먹기 전에 꼭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다.


"아빠.. 제발. 그만 찍으면 안 돼요? 배고파 죽겠어요."

"어허!"


찰칵-


"그만하고 이제 좀 먹자.. 난 음식의 온도가 중요한 사람인데. 제때 맛 좀 느끼고 싶어."

"다 됐어. 오케이~"


그리고 또 다른 은밀한 취미는.. 인스타그램 꾸미기. 하하하.


그렇다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삶. 그걸 추구하는 게 바로 나다.


나도 정말 이럴 줄 몰랐다. 인스타그램에 릴스 만들어 올리고 혼자 흡족해하고 좋아요 달리면 행복해할 줄은. 그래도 뭐 딱히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가끔 하긴 하지만 게임 중독도 아니니.


그런 것에 비하면 [맛집 탐방 + 릴스 제작]은 나름 건전한 취미 아닐까?


"응 아님. 오빠 돈 쓰러 다니는 거 한 달 비용 계산해 봄?"

"뭐 음식 사 먹는 게 얼마나 나온다고. 고작 하루 한 끼 정도 먹을까 말까인데."

"장난해? 봐봐."

"어엉??? 정말로 이만큼이나 썼다고?"


가정 경제를 책임지기는커녕 파탄내고 있는 게 나였다니. 역시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그래놓고 맨날 먹고살기 힘들다고 돈 필요하다고 징징거렸다.




본격적으로 맛집? (그냥 음식점이라고 하자.)을 다니게 된 계기는 뭘까?


그건 바로 뒤늦게 운전하게 된 차가 생기면 서다. 아이가 둘이나 있으면서 40전까지 차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차를 왜 사나 싶었다.


'버스도 잘돼있고, 지하철도 편하고, 급하면 택시 타면 되는 거 아님?'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걱정했다.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데 차가 없다고? 어디 놀러는 다녀? 급할 땐 어쩌려고 그래."

"네네 알아서 할게요."라고는 차마 못했지만 그냥 내 쪼대로 살았다.


애초에 운전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차는 위험요소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내가 운전하다 다른 사람을 치면 어쩌지 싶어 무서웠다.




공교롭게도 고성으로 이사 오면서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버스가 20 - 30분에 한 대씩 오기도 하고 차가 없이는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 이젠 정말 차가 필요하긴 해."


운전은 신세계였다. 여전히 두렵고 무서울 때가 있지만 차가 있으니 너무너무 편하다. 가까운 거리도 걷지 않고 차로만 다니고 싶다.


그리하여 [대맛집 탐험의 맛]을 알게 되었다. 기름값도 들고 운전의 피로도 쌓이지만 맛있는 음식과 함께라면 너무 즐거웠다. 게다가 먹는 즐거움을 넘어선 찍는 즐거움까지 더해지니 행복 그 자체.


'돈까지 여유로웠다면 엄청나게 다녔을 텐데‼'




맛집탐방과 기록은 정말 재밌다. 여행객이 아니다 보니 일단 평일을 주로 활용하고 점심시간 같은 바쁜 시간은 되도록 피한다. 덤으로 놀러 온 가족이나 연인을 보면 그 사람의 행복함이 전달되는 거 같아 나까지 기뻐진다.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긴데 찍다 보면 다 똑같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찍으면서 알게 된 건 같은 음식을 먹어도 찍고 나면 결과물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느꼈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다.


기분에 따라, 빛에 따라, 날씨에 따라 그리고 편집(이라고 해야 하나?)을 거쳐 만들어진 영상에 따라 각기 다른 느낌. 마지막으로 배경음악 선택까지 하고 나면 비로소 그날 경험한 느낌이 담아진다.


"별 거 아닌 걸 거창하게 쓰시긴."


그리고 글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쓰다 보면 반복적인 소재를 활용하거나 같은 내용을 다른 시각으로 보며 재구성할 때도 생긴다. 그렇게 탄생한 글은 이전의 글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게 비슷하지 않을까?'


직장생활을 할 때도 반복되는 일상이 있었다. 매번 변하지 않는 것처럼 똑같이 느껴지는 일과도 포함되어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런 일을 하면서도 매번 똑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었다.


모두가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 어딘가엔 나처럼 별거 아닌 반복되는 일상, 습관, 취미, 기록을 통해서도 날마다 다른 기분을 느끼며 성장하고 있다고 여기는 이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기야. 봐 봐. 내가 결코 맛집에 돈 쓰는 걸 합리화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라. 이런 심오한 일상의 배움을 체득하기 위한 나만의 노력이라고 봐주면 좋겠는데?"

"조금만 더 말하면 험한 꼴 당할지 모르니까 조용히 하고 밥이나 먹어."


그렇다. 오늘도 이렇게 새로 배우고 깨우친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에겐 나의 일상 철학 같은 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도 맛집은 포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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