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에는 뭘 하면 좋을까?

88 걸음

by 고성프리맨

언제부터였더라..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게 된 거 같다. 딱히 선물을 주고받는다거나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서로에게 무뎌진 것일까?


그건 아닌 거 같다. 편해진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심도가 떨어졌거나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건 아니다.


10년. 짧아보일 수도, 혹은 길 수도 있는 기간이다. (지나고 나면 사실 다 짧아 보이는 듯.)


결혼기념일이라고 해도 특별한 뭔가를 해본 적도 없었던 거 같다. 평소보다 조금 더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거나 과거회상을 해보는 정도였던 거 같다.


선물이라는 걸 해본 적은 있었다. 물론 내 안목이 별로 좋지 않아 사 온 선물이 그녀의 맘에 쏙 들지는 않았었다.


"^^ 다신 사 오지 마?"

"넹."


10년 동안 우리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뭘까?


가족 구성원이 둘에서 넷으로 바뀌었다는 것. 지난 10년 동안 우리에게 혹은 적어도 내게 동기부여를 하게 만들었던 이유.


첫 시작할 때만 해도 녹물이 나오는 40년 가까웠던 아파트(형태가 아파트는 맞으니..) 전세에서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금보다 젊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린 시작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보다 월등히 높은 용기를 낸 아내 덕에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당시의 난 자신감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얼마를 더 모아야겠다는 목표도 없었는데, 결혼을 미루고 싶었었다. 주변에서 결혼한 사람들이 꽤 괜찮은 금액의 지원을 받으며 시작하는 걸 보며, 그러지 못하는 내 상황을 탓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결혼에 대한 생각을 후순위로 미루고 싶었다.


"오빠‼️ 어차피 돈 모은다고 모아봤자 내후년 되면 똑같은 생각 들걸? 모을 수 있는 금액은 한정적인데, 꿈꾸는 생활을 어떻게 시작하겠어? 그냥 결혼하자."


감사하게도 그녀의 이해와 포용 덕에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씩 그때를 추억한다.


"푸핫. 그때 집이 너무 추워서 패딩이랑 슬리퍼 신고 지내던 거 기억나? 집들이 왔던 친구들도 놀랬었잖아.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라고 했었나."


그보다 더 최악인 일은 오래된 아파트답게 벌레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치를 떨던 바퀴벌레는 원 없이 봤었다. 한두 마리 수준이 아니라 무더기로 천장에서 후두두두-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도 했고, 넣어 놓은 냄비 속에 알을 까놓아서 아내가 기겁하기도 했다.


너무나 많은 바퀴벌레의 공습 속에 버틸 재량이 없어 결국 모기장을 치고 살았는데, 자다가 눈을 뜨면 모기장 위를 수십 마리가 기어 다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는데, 웃기게도 너무 피곤하니 그대로 잠이 들긴 들더라.


그러다 큰 아이가 태어났다. 차마 이런 환경에 아이를 둘 수는 없었기에, 아내와 아이는 처가에서 잠시 지내게 했다. 나 혼자 바퀴벌레 소굴 속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이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무리다.'


아마 우리 둘 뿐이었다면 녹물과 바퀴벌레의 콜라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탄생을 바라는 수많은 부모를 뒤로하고 굳이 우리 부부에게 찾아와 준 아이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우리의 환경은 지금보다는 덜 쾌적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작정했다.


그 후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10주년이 되어가고 있네.


"오빠?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해. 육아를 언제 신경 썼다고 그러지? ^^"

"..."




우리는 그대로인가?


사전적 의미대로의 [그대로]에 부합하는 부분보다는 변한 부분이 더 많은 거 같다. 외모적으로는 좀 변한 거 같다. 흰머리도 제법 생겼고, 제철 생선처럼 살도 좀 오른 거 같고..


마음은 어떠할까?


완전히 그대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하다고 자평해 본다. 아내의 마음까지 100% 알 수는 없으니 확신은 차마 못하겠다.


사람은 기념하는 걸 좋아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게라도 흘러간 세월을 추억해 보며 잊지 않고 기억해 보는 행위. 좋은 일이었든, 나쁜 일이었든 상관은 없다. 이미 흘러서 과거가 되어 버린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근간이다.


희망하는 바가 있다면 같이 살아온 날보다, 같이 지낼 날이 더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이 아니기에 내 맘대로 할 수는 없는 부분일 테지.


예전 고등학교 시절 100일 되었다며 100원 내놓으라던 친구가 떠올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달라고 하니까 줬었다.


결혼 생활이 30-40년 정도 지난 부부가 10주년을 기념해 글을 쓰는 내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는 모르겠다. 귀여워 보일 수도 있고, "으이그.. 좀 더 살아봐라."라고 할 수도 있으려나.


하나 확실한 건 어쨌건 다가오는 10주년도 결국 지나버리면 과거가 될 것이라는 거다. 지나고 나서 11주년이 되었을 때 문득 그런 대화를 나눌지도 모르겠다.


"오빠.. 우리 작년 결기에 뭐 했더라?"

"글쎄.."

"매년 이런 식이지 않아? 그래도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작년엔 10주년이기도 했는데 아무것도 해준 것도 없고‼️ @#$@#$@#$"


아.. 안돼.


올해 기념일은 반드시 챙겨야겠다. 뭐 특별한 걸 꿈꾼다기보다, 둘이서 조촐히 기념할 수 있는 그 어떤 거라도 꼭 해봐야겠다.


"기대해도 되는 거야?"

"음.. 그 질문엔 확답을 못하겠는걸?"


비록 이번 10주년 기념일이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더라도 부디 아내가 날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같이 살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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