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왕이겠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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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아참.. 여기 제프. 아니 선호님도 개발자였어요.”


“오! 그러셨군요. 혹시 앱도 개발하시나요?”




갑작스럽게 관심이 쏠리자 당황스러웠다.




“아니요. 전 앱 개발은 아니었어요.”


“아.. 아쉽네요. 안 그래도 회사용 앱을 하나 만들어 볼까 고민이 있었는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피했다. 회사를 벗어나 만나는 대다수의 사람은 개발자라고 하면 뭐든 다 만들 수 있는 줄 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일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요즘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이런 부분을 세세하게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 약간은 단호하게 얘기하는 게 서로를 위해 편하다. 그 뒤로도 둘은 잠시 더 얘기를 나눴다.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다음에 또 봬요. 그때 선호 씨도 또 오세요.”


“하하. 네 감사합니다.”




관심 없는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사실 대화의 내용이 10%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하나 느낀 건 스캇은 심대표와 사업 파트너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오늘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았죠? 미안해요. 갑자기 심대표가 나타나서.”


“아니에요. 뭐 잘 모르는 얘기였지만 그래도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저분이 허술해 보여도 굉장한 자산가예요. 그리고 지금 하는 일 외에도 회사를 하나 설립하고 싶어 하는데 그것 때문에 몇 번 만나다 친해졌어요.”


“그러고 보니 무슨 앱을 만들고 싶어 하시는 거 같던데.”


“아. 맞아요. 뭔가 물류업이던가 비슷한 거였는데. 암튼 중개할 수 있는 앱을 만들고 싶어 하더라고요. 혹시 관심 있어요?”


“에이. 아니요. 어차피 전 백엔드 개발이었잖아요.”


“무슨 상관이에요. 필요하면 사람 써서 프런트 개발하면 되죠. 나중에라도 관심 있으면 얘기 주세요. 생각보다 개발자 필요로 하는 대표님들 많으니까요.”




‘개발을 안 한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구나..’




생각해 보면 혼자서 프리랜서처럼 일해 본 적이 없었다. 머리로는 언제든 시켜만 주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두려웠던 거다. 여러 명의 사람과 작업분량을 나눠서 처리할 때의 안정감을 포기할 수가 없었고 혼자 책임지는 상황이 두려웠다.




“점심 요 근처에 게장 잘하는 집 있는데 어떻게 좋아해요?”


“게장이요? 비싸잖아요. 암거나 먹어도 괜찮아요.”


“환영회니까요 하하. 그리고 이제 저도 게장 정도는 충분히 사드릴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렇다면 뭐 가시죠.”




근처라고 했지만 다시 또 차로 30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딱 보기에도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식당이다. 다시 한번 스캇이 성공했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맛있는 식사 후 고시텔로 다시 돌아왔다. 스캇은 급한 일이 있다며 떠났다.




“오늘은 매뉴얼 보면서 돌아가는 상황 파악을 해보면 좋을 거 같아요. 내일은 고시텔 운영과 관련해서 전반적으로 오전 시간에 설명할게요. 그럼 내일 봐요.”


“네 조심히 가세요.”




사무실은 고시텔 입구에 위치한 작은 공간이었는데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어 입출입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에는 8 등분된 CCTV 화면이 있어 고시텔의 주요 부분을 살펴볼 수 있다. 아무래도 낮시간이라 그런가 딱히 입출입이 많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노션에 접속해 스캇이 작성한 매뉴얼을 읽어 보기로 했다. 아까는 대충 훑어봐서 구성만 볼 수 있었는데 하나하나 클릭해서 페이지로 들어가니 좀 더 상세하게 적힌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객실은 15개이고 여성전용이다.




매일 루틴 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많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은 잡일에 가까울 정도로 소소한 일이 많아 보이는데 오히려 공실률을 낮추기 위한 마케팅에 좀 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투숙객들의 현황을 적어 놓은 것으로 보이는 액셀 파일을 발견해 열어보려고 했으나 비밀번호가 걸려 있다.




‘음.. 세부적인 업무 사항은 내일 알려준다고 했으니. 이쯤 할까.’




일단 마지막으로 CCTV를 휴대폰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앱을 깔고 승인요청을 보내놨다.




[제프! 어떻게 찾았어요? 역시 대단하네요. CCTV 볼 수 있게 승인했어요. 사실 고시텔업의 주된 일 중 하나가 주기적으로 CCTV 살펴보는 거예요. 차차 하다 보면 제가 왜 이런 말 했는지 아시게 될 거예요.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ㅎㅎ]


[매뉴얼 보다 보니 쓰여 있더라고요 ㅎㅎ 그리고 투숙객 현황 문서가 있던데 이건 잠가져 있어서 볼 수가 없더라고요. 혹시 대외비거나 제가 알면 안 되는 것들도 나중에 알려주세요. 오늘 식사 맛있게 먹었어요 감사해요.]




메시지를 보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방을 멨다. 얼마 만에 퇴근을 느껴보는지. 나오면서 사무실 문을 잠갔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웃으며 마중 나왔다.




“웬일이야?”


“우리 집 가장님이잖아. 고생하셨습니다.”


“으.. 하던 대로 해.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네?”


“눈치챘어? 내 친구 영주 알지?”


“카페 한다던?”


“응. 맞아. 걔가 나보고 오전에 일 좀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친구 가게에서 알바를 하려는 거 같다. 하지만 아직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데다 일을 시작하면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아직 덜 회복되었잖아. 그리고 그것도 끊길 텐데.”


“아. 알지. 뭐야 실업급여 때문이었어?”


“아니 뭐. 그렇지. 그래도 나오던 건데 좀 더 쉬면서 건강 챙기는 게 낫지 싶어서.”


“나도 하루종일 일하라고 하면 당연히 못하지.”




영주의 가게는 테이크아웃 위주의 소형카페다. 아침과 점심시간에 바쁘다 보니 그 시간에 혼자 일하기가 많이 버겁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파트타이머를 고용해서 해봤는데 책임감 없이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보니 구하는 걸 포기했다고 한다. 아내에게 제안한 건 오전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3시간 일해주는 것인데 이렇게 맡아주길 바라고 있다.




“근데 오전 시간이 엄청 바쁜 거 아니야?”


“그렇긴 하겠지만. 대신 일반 파트타이머에게 지급하는 시급 두 배를 주기로 했거든. 그리고 하루 3시간씩 주 5일 일하면 되는 거라 우리한테 딱이지 않아? 한 달에 그래도 120만 원 정도 벌게 되는 거니까. 덤으로 시간도 너무 좋고. 그리고 영주가 4대 보험도 들어주겠대. 그러면 우리 건강보험 걱정도 없잖아.”




퇴사하고 나서 가장 큰 부담 중 하나가 된 건강보험. 회사 다닐 땐 절반의 부담을 해주고 있어서 몰랐다. 그리고 지역보험으로 전환되자 대출로 산 집 때문에 요율 구간도 높아져서 가만히 숨만 쉬어도 내야 할 금액이 커졌다. 고시텔 일은 스캇과 얘기를 좀 정해봐야겠지만 한동안은 정식 계약 없이 진행하기로 상호 합의를 한 상태다.




“좋긴 하지. 근데 건강이 걱정이야.”


“근데 뭐 내가 사고를 당했던 거지. 다른 환자처럼 암이나 안 좋은 질병이 생긴 건 아니잖아. 적당한 사회생활은 건강에도 좋을 거라고. 그리고 해보고 도저히 못할 거 같으면 그때 생각해 봐도 되고. 그리고 영주가 내 친군데 내 건강 상태를 아예 생각 안 하고 말 꺼냈겠어? 그래서 하루 3시간 얘기한 거고.”




나만큼이나 아내도 걱정이 많았나 보다. 좀 더 쉬면서 있어도 되는데 아내는 굳이 일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아내가 일을 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속에서는 약간의 희열이 느껴졌다. 그런 내 모습이 속물 같이 느껴져 살짝 한심하게 생각되었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집에는 돈이 필요한 상황이다.




“알겠어. 그럼 해봐. 언제부터 하려고?”


“정말? 그럼 내일부터 할까? 영주가 빠를수록 좋다고 해서.”


“뭐야 다 정해놨던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럼 나 전화한다?”




아내는 신나서 방으로 들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뭔가 상황이 좋아져 가는 거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구매대행 상품을 등록한다. 아까 고시텔에서 매뉴얼 보다 틈틈이 상품 검색을 해놔서 찾는 시간은 줄었다. 상품 등록 후 문의사항으로 올라와 있는 5건에 답변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리뷰를 남겨 준 감사한 고객님이 3분 계셔서 기쁜 마음으로 답글을 달려고 클릭했다. 2건은 별점 5점인 반면 1건이 별점 1점이다.




‘1점짜리 별점은 처음 받아보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상세내용을 읽어보는데 장문의 욕이 써져 있었다. 내용을 다 읽고 나니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전부터 모르는 번호로 몇 통의 전화가 왔던 게 떠올랐다.




‘설마..’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보니 같은 전화번호가 맞다. 관리자 페이지에서 참혹한 리뷰를 남긴 고객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비교해 본다. 뒷자리가 3082. 동일한 번호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하필이면 마지막으로 팔았던 엄청난 무게의 헬스장 운동 기구였다. 순간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근데 왜 반품처리를 하지 않으신 거지?’




시간을 살펴보니 저녁 9시였다.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죄송하게도 남겨주신 리뷰를 지금 확인했습니다. 오늘 전화도 많이 주셨었는데 제가 바쁜 일정이 있어서 미처 확인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구매하신 상품에 문제가 있으실까요?]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안 있어 전화가 걸려왔다.




‘휴.. 받아야겠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전화를 조심스럽게 받았다.




“여보세요.”


“아.. 네 지희스토어 운영자입니다.”


“당신. 내가 남긴 글 봤지?”


“네? 혹시 상품에 하자가 생기셨나요?”




고객은 화가 주체가 안되는지 한참 동안 고성을 내지르며 얘기를 했다. 일단 들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어떤 말을 하는지 귀 기울였다. 쭉 듣다 보니 고객이 구매확정을 했을 시점에는 멀쩡했던 상품이었는데 최근 기계에서 알 수 없는 굉음 같은 게 주기적으로 생긴다고 했다. 솔직히 중간에서 대행만 하다 보니 상품에 어떤 이상이 있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고쳐줄 수 있습니까? 제가 사설업체 한번 연락해 봤더니 50만 원을 요구하더군요. 제가 150만 원을 주고 산지 얼마나 됐다고 50만 원씩이나 주고 고쳐야 합니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구매대행이라고 해도 일단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드려야겠다.




“혹시 지금 문제 생긴 제품의 상태를 영상으로 좀 남겨서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희가 구매대행업체다 보니 판매처에 확인해서 최대한 조치를 취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칠 수 있다는 얘기죠?”


“확답을 드리기엔 제가 기술적인 지식이 없어서..”


“아니 팔은 사람이 그런 것도 몰라요!”


“제가 판매자와 어떻게든 방향을 찾아볼 테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휴.. 알겠어요. 기다려보죠.”




판매자가 제발 좋은 해결방안을 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고객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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