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체계적으로 일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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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아내에게 전화를 걸자 잠시 후 받는다.




“어? 무슨 일이야?”


“저번에 말한 청소 해볼 생각 있어?”


“당연하지! 언제부터 하면 되는데?”




‘너무 적극적인데?’




“혹시 내일 시간 괜찮아? 스캇이 청소하는 법 교육 한번 시켜주겠대.”


“응. 그래. 뭐 어차피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잘됐네. 일은 좀 어때?”


“뭐 적응 중이지. 밥은?”


“이제 먹으려고. 바쁜 거 아니야? 뭐 할 말 더 있어?”




문득 아내 친구 중에 미용실 운영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얼마 전 안양 미용실 중 No.1 매출을 찍었다고 했던가.




“혹시. 자기 친구 기선 씨.”


“기선이? 왜?”


“미용실 운영 잘된다고 했지?”


“어. 엄청 잘된대. 걔 요즘 마케팅 수업도 다니고 이것저것 챌린지 영상도 올리고 장난 아니야.”


“그래. 그거.”


“뭐?”


“아니.. 스캇이 나보고 고시텔 SNS 계정 운영을 좀 해달라고 그러네. 근데 뭐 해봤어야지. 감도 없고. 내가 뭐 영상을 찍어본 적이 있나.”


“음.. 그러니까 지금 기선이 보고 대행해 달라고 부탁해 보자고?”


“대행 부탁은 아니고 혹시 자기가 SNS 해보면 안 될까?”


“내가? 나도 그런 거 안 해봤는데..”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지. 그래도 나보다는 아내의 감각이 더 낫지 않겠나.




“지은아. 나 진짜 감성 없는 거 알잖아. 이런 거 홍보는 감성의 영역이란 말이지. 내가 지원할 테니까 콘텐츠 제작은 자기가 기선 씨 도움 받아서 몇 개만 만들어주라.”


“생각 좀 해보고.”


“그냥 하자. 스캇이 투자 관련해서도 도움줄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얘기가 길어지니까 그건 이따 얘기하자. 암튼 기선 씨한테 한번 얘기나 해봐. 팁이라도 좀 알아놔 줘.”


“알았어. 또 부탁할 거 있어?”


“아니야. 이따 봐.”


“응.”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위기라고 생각하자 여기저기 끌어 쓸 인맥이 자원처럼 생겨난다. 사업에 관심이 없을 때는 그냥 사업한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가 끝이었는데. 지금은 왜 좀 더 진지하게 물어보지 못했을까에 대해 아쉬운 것들이 생겨났다.







고시텔에서의 시간도 참 빨리 지나간다. 특별히 바쁠 게 없다 보니 잘만 활용하면 개인 시간도 많이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적응이 어느 정도 되면 출근할 때 노트북이라도 챙겨서 개인 작업도 좀 해야겠다. 오늘도 크게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아 정시에 퇴근했다. 퇴근길에 큰 숙부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숙부님.”


“그래. 잘 지내지? 일은 좀 진행돼 가?”


“아. 네네. 디자인 맡겼던 거 시안이 좀 걸려서 아직 받아보지 못했는데 한번 확인해 보려고 하던 참이에요.”


“그래? 생각보다 좀 걸리네. 빨리될 줄 알았는데.”




늑장 부리다 아직 못했다고 차마 말하진 못하겠다.




“품목보고번호 신고한 거 승인 났다고 알려주려고 전화했어.”


“와.. 정말요? 생각보다 엄청 빨리 승인됐네요?”


“내가 힘 좀 썼지. 으하하.”


“대단하세요.”


“그려. 재촉하는 거 같지만 포장할 거랑 나머지 결과물 준비되면 얼른 보내줘. 우리도 돈 좀 벌자고.”


“예 그럼요!”


“그럼 김서방만 믿는다. 나중에 봐.”


“네 들어가세요.”







[며칠 전]




“오랜만이에요 제프. 그러게요 결혼식 이후 이게 얼마만이에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같이 일했던 제시카하고 안부를 주고받다가 프리랜서로 디자인 작업을 하는지 물어봤다.




“그럼요. 많이는 못하는데 틈틈이 하고 있죠.”


“그러면 제가 부탁하나 드려도 될까요?”


“사업하시게요 제프?”


“하하. 사업..이라고 해야 하나. 규모는 작은데 어떻게 하다 보니 비슷하게 돼가고 있네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필요한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음. 그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물론 제가 식품 쪽을 전문적으로 디자인해 본 적은 없는데 참고할만한 이미지 컷 같은 거 몇 개 주시면 비슷한 스타일로 작업해 드릴게요. 어떠세요?”


“저야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결과물은 언제까지 필요하세요?”


“빠르면 좋은데 그거야 제시카에게 맞춰야죠.”


“크. 부담인데요? 그럼 제가 작업 기간 산정이 필요하니 참고 이미지랑 필요한 내용 조금 더 정리해서 알려주시겠어요?”


“네! 아.. 혹시 금액은 얼마 정도 드려야.. 할까요?”




비용 얘기를 꺼내며 목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작아지자 제시카가 수화기 너머로 크게 웃었다.




“푸핫. 왜 목소리가 점점 조그맣게 되는 거죠? 지인이 아니라면 저도 뭐 그냥 받던 대로 받겠지만 최대한 도움드리고 싶어요. 100만 원 괜찮으세요?”




헉. 생각보다 비싼데. 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갑자기 100만 원이라는 숫자가 크게 다가왔다.




“설마.. 지금 비싸다고 생각해서 대답이 없으신 거 맞나요?”


“아.. 아니에요. 사실 제가 뭐 디자인을 잘 모르니.”


“으흠. 비싸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럼 에이! 80만 원에 해요. 까짓 거. 저도 돈 얘기 꺼내는 거 민망하단 말이에요.”


“네. 미안해요. 제가 너무 시세도 모르고 그래서. 괜히 마음 불편하게 만드는 거 아니죠?”


“뭐 약간은 그렇긴 하죠? 농담이고요. 사실 저도 식품 쪽은 처음 해보는 거라 살짝 기대도 되네요. 아참! 나중에 작업 끝나고 제품 출시되면 이미지 제가 좀 가져다 써도 돼요? 저도 작업 결과물 인스타그램에 올려놓고 있다 보니. 다른 의도는 아니고요.”


“당연하죠. 제시카도 인스타그램 해요?”


“고마워요. 네 인스타그램 당연히 하죠. 저 종류별로 계정도 엄청 많아요. 제가 관리하는 디자인 계정에 올린 결과물 보고 작업 요청하는 사람도 꽤나 있거든요. 아까 부탁도 그래서 한 거예요.”




요즘은 정말 인스타그램이 필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디자인 작업 요청도 마무리되었다.







큰 숙부님과 전화 후 생각난 김에 제시카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하이요 제프.”


“안녕하세요 제시카. 잘 지내죠?”


“덕분에요. 호호. 아참 작업 때문에 연락했죠?”


“눈치가 백 단이시네요.”


“거의 됐어요. 제가 일단 시안은 2가지 타입으로 뽑았는데 내일 저녁까지 작업해서 메일로 보내드려도 괜찮을까요?”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제품 관련해서 품목보고번호도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그 번호도 보내드리면 디자인에 넣어주실 수 있으세요?”


“네 그런 건 뭐 별거 아니에요. 내일 제가 로고, 라벨, 패키지 이렇게 3개 작업한 거 보내드릴 예정이고요. 각각 2개 타입으로 만들어 놨으니 그중에 선택해 주시면 되세요. 혹시나 디자인이 너무 별로다 싶으면 얘기 주세요. 계속 수정은 힘들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변경해 드릴게요.”


“고마워요 제시카. 그러 좋은 저녁 시간 되시고요.”


“네 제프도요.”




일을 하고는 있는 거 같은데 정신이 없다. 이대로라면 놓치는 게 너무 많이 생길 거 같다. 따지고 보면 별로 집중해서 할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오늘은 할 일에 대한 관리 방안을 꼭 만들어 봐야겠다. 앞으로 아내하고 업무 분담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 서로가 서로의 일감을 놓치지 않고 스케줄도 잘 체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서 와. 배고프지?”


“조금 고프긴 하네. 혹시 기선 씨하고는 통화해 봤어?”


“기선이 바쁘잖아. 퇴근하면 그때 해볼까 했는데. 급해?”




마음이 조급하긴 하다.




“조금 그렇긴 해. 알았어. 이따 통화해 보고 알려줘.”


“인스타그램은 나도 좀 알아보긴 했는데. 혹시 고시텔 계정이 어떤 거 써?”


“인스타그램이랑 네이버 블로그 계정 두 개 있더라고.”


“숙소는 보통 네이버 블로그로 많이 홍보하는 거 같던데. 둘다해야한데?”


“음.. 나도 뭐 사실 자세히는 모르겠어. 내일 청소 때문에 어차피 스캇 만날 거니까 그때 한번 같이 물어볼까?”


“오케이.”




갑자기 의자에 앉자마자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별거 아닌 일인 거 같은데 이상하게 감정 통제가 잘되지 않는다. 걷잡을 수 없이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던 화가 결국에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야 만다.




“지은아! 내 노트북 어디 갔어?”


“아이 깜짝이야. 왜 소리를 버럭 질러. 노트북 오빠가 쓰잖아.”


“근데 왜 맨날 두던 자리에 없는 거야? 내가 맨날 물건 두던 데다 놓는 거 알잖아.”


“아 정말 왜 이래. 오빠가 알겠지! 어?”




아무리 찾아봐도 노트북은 보이지 않는 데다 아내까지 고분고분하게 나오지 않아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아.. 내가 청소하느라고 잠깐 장롱 속에 넣어놨다.”


“뭐야! 치워놨었네! 근데 왜 모른 척했어? 왜?”


“사이코처럼 왜 이래 갑자기?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왜 갑자기 나한테 화는 내는 건데?”


“휴.. 나 잠깐만 밖에 나갔다가 올게. 머리가 아프네.”


“그러시던가.”




조금만 더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싸움이 크게 생길 거 같아 일단 밖으로 나왔다. 별일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뭔지 모를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건 아닐까? 하아. 별 거 아닌데 아내한테 화는 또 왜 냈을까? 바보 같은 짓이었다며 자책을 해봤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잘해보고 싶어서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지만 스트레스도 그만큼 쌓이는 중이었다.




오늘처럼 스트레스가 갑자기 튀어나와 아내와 사이가 나빠지면 나만 손해다. 밖에 나와 잠시 동네를 걷다 보니 복잡했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한다. 끓어오를 것처럼 치밀어 오르던 분노도 사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들어가면 아내에게 사과부터 꼭 하자..’




일단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계속 감에 의존해 주어진 대로 일을 막 하다 보니 진행도 진행대로 잘 안되고 바쁘기만 하다. 차근차근 조금 느리더라도 해낼 수 있는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회사 다닐 때 남아 있던 수동적인 모습이다. 그때 돈 받는 것에 맞춰 주어진 대로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 이상을 해볼 생각도 의욕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메모장을 켜서 필요한 것을 하기 위해 뭘 준비해야 할지를 간략히 적어봤다.




1. 스케줄 공유 방안

2. 할 일 관리

3. 진척 상황 관리

4. 했던 일 기록하기

5. 학습 계획

6. 협업 관리




쓰다 보니 점점 늘어났지만 일단 6가지 정도로 1차 정리를 했다. 지금부터 하는 일은 최대한 기록을 남기고 체계적이 될 수 있게 해 봐야겠다고 두 손을 꽉 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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