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조율하기 나름!

27

by 고성프리맨

오늘은 아내와 함께 출근을 했다. 같이 살면서 이 시간에 함께 이동해 본 적이 없었던 거 같은데 기분이 이상하다.




“일하러 가는 건데도 설렌다. 난 집에 있을 체질이 아닌가 봐.”


“걱정 안 돼?”


“걱정.. 해야 해? 난 그냥 좋은데. 집에만 있기 좀 갑갑하기도 했고. 우리 희수가 빨리 컸으면 좋겠다. 나도 하고 싶은 것 좀 하고 살게.”




아내의 성향은 확실히 나랑 반대다.




‘난 오히려 집에만 있고 싶은데.’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 부부여도 아직 알지 못하는 부분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평생을 같이 산다고 해도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평생이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 아침부터 또 생각의 늪에 빠지려고 할 때 아내가 정신 차리라며 팔을 홱 잡아끌었다.




“오빠는 너무 진지해. 조금만 힘을 빼라고. 매사에 그렇게 무겁게만 살면 뭐 좋은 일이 생겨? 덜렁거리는 것도 좀 그렇지만 신중한 것도 별로거든!”


“내가 그렇게 별로야?”


“아니.. 오빠가 별로라는 게 아니라 흠. 그냥 좀 더 가벼워지라고. 요즘 너무 가장이라는 틀에 박혀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나도 어떻게든 일하려는 거야. 우린 가족이잖아. 오빠 혼자만 책임질 필요 없어. 힘들면 힘들다고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달라고 하라고. 그렇게 한다고 죄짓는 거 아니야. 다 도우며 사는 거지. 우리도 언젠가 또 누군가를 돕게 될 수도 있는 거고 아니야?”




이럴 때 보면 아내가 나보다는 몇 수 위인 거 같다. 오늘도 아내의 현실 발언에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았다.







“다 왔어.”


“생각보다 엄청 크진 않네?”


“응. 그래도 15개나 있어 객실이.”


“많긴 하다. 나 고시텔에서 살아본 적 없어서 궁금했었는데 빨리 보고 싶다.”


“으이그.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사람들이 욕한다. 누가 고시텔 살고 싶어서 사나. 다 형편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뭔 말을 못 하게 해. 그냥 그랬다고. 고시텔 경험이 없으니 궁금할 수는 있잖아.”




냉탕과 열탕을 오가듯 우리는 이 시기의 여느 부부처럼 싸우고 풀기를 반복한다.




“여기가 사무실.”


“음.. 좁긴 하다.”


“뭐 계속 상주하는 형태가 아니니까 컴퓨터 놓고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래도.. 출근하면 여기서 계속 있어야 될 거 아냐.”


“돌아다니기도 하고 해야겠지. 일이 익숙해지면 노트북 가져와서 다른 일도 같이 하려고.”


“그래 그건 잘 생각했어. 빈방 있지?”


“응. 현재 3개 공실이야.”


“구경시켜 주라.”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내를 보고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살짝 한숨을 내쉬고 방으로 데려갔다. 문이 열리자 비좁은 방과 창문 없이 붙어 있는 욕실이 보인다.




“와.. 진짜 좁다. 그래도 있을 건 있네. 저건 모니터야 TV야?”


“겸용이야.”


“화장실.. 구조가 별로네. 세상에 창문도 없어?”


“그래도 이 방은 좀 더 비싼 방이야. 화장실 없으면 10만 원 더 싸거든.”




호기심에 가득 차 구경하던 아내의 눈빛은 좁은 고시텔을 마주한 순간 표정이 좋지 않아 졌다. 아무래도 생각의 동요가 있는 걸까?




“그래 보고 나니까 이해가 되네. 아까 내가 너무 경솔하게 말하긴 했다.”


“쉽게 좀 말해주라.”


“고시텔 구경하고 싶다고 했던 거 말이야. 재미 삼아할 얘기가 아니었다고. 그냥 살짝 눈물 날 뻔했어. 우리가 대출이 있긴 해도 그래도 서울에 집이 있잖아. 그것도 감사할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너무 배부른 생각에 절여져 있었나 봐. 물론 우리 사정이 현재 안 좋긴 하지. 근데 여기를 보고 나니까 우리한테 희망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아내는 정말 감동을 받은 듯 잠시 멈춰 서더니 손을 들어 살짝 눈을 닦는다.




“방 크기 보니까 청소는 별로 어렵지 않을 거 같은데? 나 무조건 할래.”


“섣부르게 결정하진 말고. 이따 스캇한테 한 번 들어는 봐야지.”


“에효 아저씨. 청소를 해보셨어야 알겠죠? 이 정도면 우리 집 청소보다 훨씬 편해. 안 봐도 알아. 화장실 있는 방은 좀 더 신경 써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방이 넓지 않고 침구류도 단순해서 엄청 손이 많이 가진 않을 거 같아. 근데 혹시 여기 세탁기는 있어?”


“응. 공용 거실에 있긴 해. 코인 넣고 해야 해.”


“한번 가보자. 사이즈를 좀 봐야겠어.”




공용 거실에 도착해 한쪽에 마련된 세탁기와 건조기를 보여줬다.




“생각보다 크기가 작네. 빨랫감이 많아지면 한 번에 돌릴 수가 없겠는데?”




부끄럽지만 아내 말대로 그동안 청소나 빨래를 아내가 해줘서 사이즈가 작다는 게 잘 가늠이 되진 않았다. 그래도 살림 경력이 있어서 그런가 한번 보자마자 아내는 견적이 나오는 듯 머릿속으로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한다.




“건당 얼마 준다고 했지?”


“그전에는 2만 원씩 지급했다고 하던데.”


“2만 원이라. 가격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네. 근데 좀 억울하다?”


“또 뭐가?”


“내가 그동안 집에서 했던 청소, 빨래를 돈으로 환산하면 이게 다 얼마인 거야? 어서 돈 내놔.”




짓궂게 말하며 아내가 살짝 미소를 띠고 있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라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난 빨래가 걱정이네. 그동안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대량으로 빨랫감이 몰리면 분명 문제가 생길 텐데. 혹시 여분이 있으려나?”


“여분? 글쎄. 그건 이따 물어봐야 될듯한데.”


“오빠 아는 게 없네. 허허. 좀 더 열심히 하시오.”


“아휴 알았어. 이제 다시 사무실로 갈까?”




갈 곳이 따로 없으니 결국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내는 멀뚱히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CCTV를 살펴본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스캇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제프. 엇. 안녕하세요 형수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안녕하세요. 스.. 스캇? 하하. 영어 이름 부르려니까 어색하네요.”


“그러시면 그냥 제 이름 부르셔도 되긴 해요. 양범수예요.”


“훨씬 나은데요? 전 그럼 양대표님이라고 부를게요. 송지은이라고 해요.”


“양대표님은 너무 부담스러워요. 그냥 범수님으로 불러주세요. 전 형수님이라고 부를게요. 괜찮죠?”




딱히 교통정리를 해주지 않아도 둘이 알아서 호칭 정리를 끝마쳤다.




‘나설 필요도 없겠네.’




“범수님. 고시텔 좋네요.”




아내의 아부 멘트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입발린 소리하고 담쌓은 나보다는 역시 여자인 아내가 훨씬 사회성이 좋구나.




“푸핫. 형수님 성격 너무 좋은데요. 뭔가 대화가 잘 통할 거 같아요.”




밝은 성격의 아내와 스캇은 첫 대면부터 서로 기분이 좋아 보인다. 다행이다.




“제가 방을 좀 살펴봤어요. 청소할 게 엄청 많지는 않겠더라고요.”


“벌써 다 보셨어요? 네 여기가 공간 자체는 협소해서 청소할 게 엄청 많이 나오지는 않아요.”


“근데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 하나 걸리는 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침구류 여분이 있을까요? 음.. 하루에 청소가 몇 건씩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몰리는 때가 있을 거 같거든요. 그러면 빨래를 한 번에 끝마쳐야 할 텐데. 공용 거실에 있는 세탁기랑 건조기 사이즈가 빨래양을 못 감당할 거 같더라고요.”


“오.. 거기까지 생각하셨군요. 아 너무 만나자마자 정 없게 일얘기부터 하는 거 같지만. 그래도 얘기 나온 김에 일 얘기 끝마치고 대화 나눌까요?”


“네 좋아요.”




스캇은 우리를 데리고 고시텔 입구 쪽으로 나가 잠겨 있던 문을 열었다. 평상시 출퇴근할 때 다른 사람이 쓰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알고 보니 저기가 비품실이었다.




“제가 아직 제프한테도 안 보여드렸는데 여기가 비품실이에요. 뭐 엄청 많은 건 아닌데 그냥 창고 겸해서 쓰고 있어요. 숙박업 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잘하게 필요로 하는 게 많거든요. 제가 다른 고시텔도 운영하는 데 그렇게 비품 돌려쓰기도 하게 되고 보관도 해야 해서.”




비품실 안에는 정말 갖가지 물건이 잔뜩 쌓여 있었다. 객실에서 봤던 의자도 여분으로 있었고 1회용 칫솔을 비롯해 뭉텅이로 있는 수건과 침대 커버, 베개 커버, 세제, 공구류, 그 외 기타 물품 등이었다.




“아.. 이렇게 다 준비돼 있군요. 그래도 새 거는 한번 빨아서 보관해야 할 텐데.”


“맞습니다. 청결은 기본 중의 기본이죠. 특히 여기는 여성전용이라 청결하지 않으면 콤플레인이 진짜 바로바로 들어와요. 솔직히 청소하는 분도 남자를 쓰기가 좀 그래요. 남자가 들락거리는 걸 여성분들이 그다지 좋아하진 않거든요. 그래서 내심 형수님께서 맡아서 해주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청소는 하루에 평균내기가 좀 애매하지만 대중없는 편이긴 해요. 장기 숙박 손님이 많을 때는 청소거리가 없고 단기로 빨리빨리 입퇴실이 생겨날 때는 청소가 갑자기 많은 날도 있거든요. 물론 그런 날은 이모님을 미리 좀 더 충원할 거고요.”


“그렇군요. 그럼 침구류 준비는 사전에 미리 좀 해놔야 되겠네요?”


“네 지금까지는 그렇게 했는데 그게 문제가 되기 시작했어요.”




스캇의 설명은 이랬다. 청소 이모님들은 정해진 시간만큼만 일을 하고 일당 받는 형태를 선호하는데 이전처럼 계속 지속적으로 빨래를 하고 준비하고 이런 과정까지 요구하다 보니 거기서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그렇다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일당을 쳐서 줄 수는 없는 일. 청소 이모님들의 요구사항은 정해진 시간 내에서 빨래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형태를 요구했다. 빨래에 대한 처리를 세탁소에 맡기자는 얘기였는데 스캇 입장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여분의 침구류를 사놓고 그걸로 대체하기로 했던 거였다. 하지만 이것도 새로 사놓은 여분을 잘 보관해야 했기에 직접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해됐어요. 빨래가 골칫거리긴 하네요. 그렇다고 하루종일 메여서 빨래만 관리하게 할 수도 없었을 테고. 범수님 마음이 이해되네요. 세탁소 이용하는 건 혹시 견적 받아보셨어요?”


“네. 다들 앓는 소리를 하니까. 저도 알아봤는데 수지 타산이 전혀 안 맞더라고요. 그리고 빨래를 공용 거실에서 계속 돌리는 것도 좀 문제가 되긴 하는 데.. 투숙 중인 손님들도 빨래를 해야 하는데 계속 돌리고 있을 수는 없으니.. 그래서 눈치 보면서 돌리고 있었어요.”


“진퇴양난이네요.. 저도 빨래가 걱정이긴 한데.”


“그래서 생각 좀 해봤는데 건물 2층에 무인 빨래방이 있거든요. 혹시 거기랑 제휴를 맺으면 어떨까 싶어요. 최근에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건데 혹시 두 분 생각은 어떠세요?”




무인빨래방! 동전을 넣고 빨래를 하는 곳인데 대용량으로 빨랫감 처리가 가능하다. 물론 양이 많으면 그만큼 돌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들어가는 돈이 많아지긴 하겠지만 제휴를 맺을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물리적인 거리도 가깝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빨래를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아내와 내가 업무 분담을 하기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스캇! 빨래방 좋은데요? 제휴 맺으면 가격적인 부분도 괜찮아지겠죠?”


“제프 생각도 그래요? 형수님은요?”


“저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그래도 일단 해봐야 알겠죠. 그럼 청소 과정에 대해서 한번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일단 전 청소해보고 싶어 졌어요.”


“헛! 감사합니다 형수님. 그럼 한번 설명 시작해 볼게요!”




이렇게 대청소시대가 열리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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