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걸음
09:30분. 평소보다는 조금 늦게 하루를 시작했다. 일어나기는 진작에 일어났지만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가 괜히 늑장을 부리고 싶었다.
주중과 주말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지금의 삶에서도 일요일을 찾는 거 보면, 과거의 습관과 기억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큰 거 같다. 여전히 주말이라는 느낌이 전해주는 설렘이란 게 존재한다.
첫 회사는 주 6일제를 적용한 회사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토요일은 오후 1시면 퇴근할 수 있었다. 주 5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처음 접해본 사회생활이라 주 6일을 떠나 마냥 신기했다.
하지만 토요일 퇴근 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주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뻤다.
다음으로 다녔던 회사는 격주 토요 휴무제를 적용했다. 신세계였다. 온전히 2일이라는 주말을 쉴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물론 주어진 주말을 특별하게 보낸 기억은 별로 없다. 단지 토, 일요일을 연달아 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었다.
새로 다니기 시작한 회사의 근무형태는 조금 신선했다. 일단 파견이라는 형태로 고객사에 나가 있어야 했기에, 근무시간에 대한 지정은 전적으로 갑 측 의견에 따르게 되었다.
데이터센터라는 특수한 환경이다 보니 밤을 새우며 장애대응을 할 인력이 필요했고, 그것이 나의 일이었다. 저녁 6시에 출근해서 아침 9시면 퇴근을 했다. 그리고 당일 남은 시간을 쉬고, 그다음 날 하루의 휴일이 주어졌으며, 다다음날이 되면 똑같은 패턴으로 출근했다.
그렇게 다니고 그만두기를 반복한 끝에 내 이력엔 20번이 넘는 이직에 대한 기록이 남았다. 짧게 다닌 곳과, 나름 길게 다닌 곳이 혼재된 형태. 이력서에 다녔던 모든 곳을 기록할 수는 없었기에 어느 정도 기간과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만 기재하게 되었다. 그렇게 추려서 정리했건만, 면접 때마다 항상 단골처럼 듣는 질문이 생겼다.
"이직 횟수가 꽤 많네요?"
양날의 검. 누군가에겐 상당한 마이너스 요인으로 보일만한 이력서였다. 이력 관리가 엉망이라는 말도 면전에서 들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모든 이력이 한 지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업종이나 업태가 다르더라도 내가 했던 일의 유사성이 존재했기에 경력으로서 인정받기는 수월했다.
수많은 이직의 반복 끝에 다다른 결론이 하나 생겼다.
'더 이상 근무 형태가 내게 주는 의미가 크게 없구나..'
그때부터는 일을 보고 이직하려 했었다. 물론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도 중요했기에, 주 5일은 표면적으로 지켜지는 곳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글은 이렇게 썼지만 주말 안 쉬는 회사는 오래 못 다니고 퇴사했던 거 같다.)
그래도 위에 쓴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다. 정말로 면접 때마다 해당 회사의 특정 비전이나 내가 맡은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지원해 줄 수 있는지 여부를 제일 많이 따졌으니까. 그리고 그런 선택이 분명 나와 같은 떠돌이 직장인에게 경쟁력이 되어주리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주어진 백수의 삶. 수많은 이직의 끝은 백수던가.
- 진작부터 그렇게 갈 곳 없어질 줄 알았다니깐. 깔깔.
- 그러게 진득하니 잘 붙어 있었어야지‼️
-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출근하시오.
망상 속에서 살고 있는 환영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듯하다.
회사원의 삶을 벗어난 지 3년 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때의 삶이 떠오를 때가 많다. 내 삶의 많은 모습이 그때의 모습에 머물러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미련일까? 후회일까? 아니면 단순한 그리움?
자유인이 되었다며 즐겁다가도, 문득 과거의 모습이 생각날 때가 있다. 한때 함께 땀을 흘리고 대화를 나누던 옛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 여전히 그때의 기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발견할 때면 쓴웃음이 지어진다.
10:06분. 글을 쓴 지도 30분이 넘었다. 그리고 일요일은 진행 중이다. 아침에 느낀 주말에 대한 감상은 사라졌다. 30분 정도가 지나니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지금의 삶은, 한때의 현재였던 것들을 과거로 만들어 버리고 선택한 삶이다.
'혹시 후회하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돌이켜보면 과거 속 후회되는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만약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내 선택은 달라졌을까?'.
'지나고 나서야 드는 감정에 너무 과몰입하지 말자.'
10:16분. 곧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오늘의 할 일, 내게 주어진 일이 있다.
비록 주 5일제가 주던 달콤했던 주말은 사라져 버렸지만, 지금의 삶도 행복하다. 이제 과거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과거의 망령을 무의식 한편에 다시 밀어 넣고, 현재만 생각하자.
오늘의 일을 시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