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민
‘전화를 해볼까 말까.’
시간은 아침 8시.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 봐야 마음이 편해질 거 같다. 신호음이 울린다.
’없는 번호는 아닌가 보네.’
꽤 많은 신호음이 울리지만 받지 않는다. 이대로 끊어지면 나중에 다시 걸어봐야겠다. 그때 수화기를 받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네. 누구시죠?”
목소리는 나이가 좀 있는 남성의 느낌이다. 뭐라고 설명해야겠다란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전화부터 걸었더니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 저기..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는데. 제가 절대 이상한 사람은 아닌데요.”
”장난 전화 아니죠? 저도 이제 회사 갈 시간이라. 짧게 부탁합니다.”
”네. 빨리 얘기드리겠습니다.”
대학생이라는 소개를 시작으로 최근 있었던 꿈 내용을 함축적으로 전했다. 상대방은 아무 반응은 보이질 않지만 듣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그리고 어제 꿈에서 받은 전화번호를 기억했다가 바로 걸게 된 상황을 얘기드렸다.
”학생. 혹시 오늘 시간 괜찮아요? 나누고 싶은 말이 좀 있는데.”
”네 괜찮습니다. 전 오늘 오후 4시부터는 쭉 학교에 있을 예정이라서요.”
”그럼 내가 4시 10분까지 학교로 갈게요. 혹시 주변에 만날 만한 장소 있나요?”
”학교 앞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어떠세요?”
”좋네요. 이따 만나요. 제 이름은 박창민이라고 합니다.”
”전 강승호라고 합니다.”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생각을 해보니 기이하고 신기하다. 꿈속에서 낯선 전화번호를 전해 받고 현실에서 만남까지 이뤄지다니. 처음 겪어보는 일인데 일단 흘러가는 상황에 몸을 맡겨 보기로 한다.
수업이 끝났다.
”승호야 혹시 오늘 이어서 얘기 좀 할 수 있어?”
”미안. 오늘 선약이 갑자기 생겼는데 혹시 내일 나누면 어때?”
창훈이의 얼굴에서 약간의 실망감이 보인다.
”어쩔 수 없지. 혹시 약속 늦게까지 잡혀 있어?”
”언제까지라고 정해진 건 없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길어질 수도 있을 거 같은 기분이라.”
”그래 내일 얘기하자. 약속 잘 가고.”
”응. 잘 가.”
카페에 들어섰다. 커피 향이 좋게 다가온다.
’어디 계시려나.’
안쪽 테이블에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이 보인다. 안경을 쓰고 있고 상당히 마른 체형이다. 예민해 보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 느껴져 괜히 긴장이 된다.
”저.. 혹시 오늘 아침에 전화 나눴던 분 맞으실까요?”
잠시 멍하니 있던 남자는 나를 유심히 살펴본다.
”맞습니다. 갑자기 약속 잡아서 미안해요. 얘기를 좀 나눠보고 싶은데 너무 제멋대로 했죠?”
”아닙니다. 사실 저도 전화를 받으실 거라고 생각을 못 해서. 아무튼 무슨 얘기가 있을지 저도 궁금해서 나왔습니다.”
”일단 커피 한 잔 시켜요. 뭐 마실래요? 혹시 배고프면 빵도 같이 먹어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셔도 될까요?”
주문한 커피를 가져오기 전까지 간략하게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오늘 이 자리에 나오려고 반차를 쓰셨다고 한다. 내 소개도 해드려야겠다 싶을 때 진동벨이 울린다.
”커피 좀 가져오겠습니다.”
가져온 커피를 자리에 놓고 한 모금을 마신다. 머릿속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다 보니 입으로 마신 커피의 맛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승호 학생. 괜찮으면 꿈에 대한 얘기를 좀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전화번호를 주고 간 사람이 여자였던 거죠?”
”네.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옷 스타일과 풍기는 느낌은 젊은 여자였습니다.”
”알겠어요. 아 그리고 미처 얘기를 못 꺼냈는데 우리 아들도 승호 학생하고 나이가 같아요. 사실 여기 신학대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알지도 모르겠네요.”
”정말요?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요?”
”박창훈이라고 해요.”
”아! 창훈이 아버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저 창훈이 친구예요.”
아버님은 전화로 내가 다니는 대학을 얘기했을 때부터 우연한 만남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좀 더 확실하게 확인을 해보고 싶으셨고 일부러 만나서 얘기를 듣고 싶어 하셨다. 최근에 나를 괴롭게 만든 꿈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해드렸다. 아버님은 여자의 인상이나 외모적인 특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어보셨다. 질답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이 지나버렸다.
”승호 학생의 꿈에 나온 아이가 우리 딸이 맞는 거 같아요. 창훈이를 통해서 가족사를 일부 전해 들었다고 했지만 창훈이가 모든 걸 알고 있진 않아요. 가엾은 그 아이는 내 딸 혜리인 거 같네요.”
”창훈이한테 누나가 셋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설마 셋째 누나도 돌아가셨나요?”
”아니요. 하지만 죽은 거나 다름 없어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진 않았어요.”
말을 이어가려다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치신다. 잠시의 소강상태. 아버님께 휴지를 전해드렸다.
”고맙네요. 내가 무슨 죄를 짓고 살았기에 우리 가족이 죽어가는 건지. 이젠 창훈이하고 둘만 남았네요. 창훈이까지 잘못되면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혜리까지 다치면서 부터는 창훈이하고 대화를 나눠보지도 못한 거 같아요. 서로 마주하고 할 얘기가 없기도 하고.”
”제 일이라고 생각해도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거 같아요. 창훈이 얘기를 들으면서도 마음이 많이 아팠거든요. 원래 오늘 창훈이하고 대화를 나누려던 차에 아버님 하고 약속을 잡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그나저나 내가 승호 학생 시간을 이렇게 뺐어도 되나?”
”오늘은 시간이 아무리 길어지더라도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제 친구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신학대생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것만 같아요.”
창훈이 아버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나서 이야기를 꺼내신다.
”너무 길지 않게 잘 얘기해 볼게요. 혹시 궁금한 거 있으면 중간에 물어봐요.”
아버님은 돌아가신 창훈이 어머니의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